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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9. 2022

추운 겨울 늦게 일어난 아가 새

19.9세라는 건 2

 방구석에서 퍼즐만 맞춘 지 2주 정도 흘렀을까, 선생님께서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하신다. 아직 12월 초인데 벌써 방학이 시작된 거다. 


 친구들에게 방학에 뭐할 건지 물었다. 누구는 재수학원에 다닐 거라 했다. 누구는 진즉에 알바를 시작했다. 누구는 쌍꺼풀 수술을 하러 병원에 간다고 했다. 나는 재수도 쌍수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남은 선택지인 알바를 해보기로 했다.


 알바를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당장 다음 주부터 일하고 싶진 않았다. 1월 1일이 되면 최저시급도 오를 거니 알바는 깔끔하게 내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남은 연말 동안은 정시로 지원할 대학교들의 전형을 분석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3군데의 대학교에 지원했고, 정신 차려보니 10대가 끝나 있었다.


 2015년이 되었다. 이제 20살이다. 

애초에 스무 살에 대한 설렘이나 별다른 로망은 없었기에 새해라고 달라진 건 없었다. 술과 담배에도 딱히 흥미는 없었다. 부모님의 동의 없이 알바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성인이 되었음을 체감하게 했다.



디지몬 말고 알바몬


 새해를 맞이하여 나의 인생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를 정주행 했다. 태일이는 아구몬을 만났고, 수많은 적들을 함께 무찔렀다. 그렇게 모든 전투가 끝난 후 둘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선택받은 아이들이 디지털 세계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제는 나도 나의 미성년 시절과 작별해야 함을 깨달았다.

 

 나에게 성년이란 경제력을 의미했다. 때문에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알바몬 어플을 설치했다. 이제는 디지몬이 아닌 알바몬 세계에 들어갈 때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려면 이력서가 필요한데 쓸 경력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잡월드'에서 해본 직업체험이라도 적고 싶었다. 경력이 없으니 자기소개서라도 열심히 썼다. 뭐든 열심히 배우고 성실하게 일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어필했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만들어낸 카페 알바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을까, 집 근처에 있는 카페 10곳에 지원했다. 이렇게 많이 지원했는데 한 군데에는 뽑힐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알바몬을 껐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사장님들이 내 이력서를 열람했는지 확인했다. 10군데 중 7군데의 카페에서 나의 이력서를 읽었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이력서에 사진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주민등록증 만들 때 찍어뒀던 증명사진을 업로드했다. 이제 나의 성실한 얼굴을 보고 연락이 올 거라 굳게 믿으며, 내 마음속 2순위였던 카페들에도 지원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 어떤 카페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카페는 무경력자가 들어가기엔 어려운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카페 말고 다른 요식업에도 지원했다. 그 후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까지 봤지만 모두 탈락했다. 서류 탈락보다 면접 탈락이 더 직접적이라 그런지 심리적인 타격이 컸다. 동네 알바 면접도 떨어지는 주제에 나중에 뭐가 될런지 내 미래가 심히 걱정스러워졌다.




추운 겨울 늦게 일어난 아가 새


내가 안 뽑히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봤다. 

'외모가 문제인가?'

'아니다.' 

 무기가 될 만큼 수려한 외모는 아닐지라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호감형 외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력이 없는 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데서도 뽑아주지 않으니 경력을 쌓을 수도 없었다. 


 바닥에 수렴하는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에 대한 분석은 그만하고 알바시장을 분석하기로 했다. 지금 알바를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수능이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일을 구한 녀석들이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먹는다 했던가. 조금 늦게 일어났을 뿐인데 벌레가 박멸된 것 같다.


 더구나 12월 말부터는 알바시장에 종강한 대학생들이라는 '경력직 공급폭탄'이 쏟아졌다. 벌레도 처음 잡아보는 아기새 주제에 늦게 일어나기까지 하다니. 얼마 없는 벌레마저 경력직 새들에게 빼앗기는 중이었다.


 직종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지원하려는 서비스업 알바는 22살~25살을 가장 선호했다. 20살은 처음부터 지원자격이 안 되는 가게도 많았다. 내가 생각해도 무경력 아가새는 사장 입장에서 피곤한 존재일 것 같다.


 그리고 문제는 인력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계절이 문제였다. 하절기에 비해 동절기에는 소비자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요식업 시장에서의 지출 안 하기 때문이었다. 즉 지금 시장은 인력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한 상황인 거다.


 실로 완벽한 시장분석이다. 결론은 내 잘못이 아닌 거다. 나는 얼어붙은 인력시장에서 경력직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밀려 취업이 안 되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래서 이후로는 탈락에 연연하지 않고 합격할 때까지 지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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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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