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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9. 2022

첫 퇴사의 기억

고로케 2

점심시간


 같이 일하는 언니가 먼저 쉬고 오라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노동법상 8시간 일하면 주어지는 1시간의 휴게시간이 점심시간이었다. 교대로 쉬기 때문에 각자 혼밥을 한 후, 백화점 구석에서 짱 박혀 쉬다가 복귀하면 되었다.


 점심으로는 쌀국수, 짬뽕, 짜장면, 순두부찌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푸드코트 알바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옆에 있는 한식코너에서 명찰을 보여주면 음식을 뚝딱 만들어 주셨는데, 순두부찌개가 내 최애 메뉴였다. 직장인들이 왜 그토록 점심시간을 기다리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인생 처음으로 혼밥이란 걸 해봤는데,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이질 않았다. 내가 앉아서 쉴 수 있다는 사실과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설거지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점심시간 1시간이 30분처럼 짧게 느껴졌다. 주방에 있는 언니와 교대를 하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 나는 그녀가 쉬는 동안 식재료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이제 좀 편안하게 일을 하나 싶었던 찰나, 한식매장에서 설거지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방금 전 순두부찌개를 먹었던 매장에 설거지가 너무 많아서 업무에 로드가 걸린 것이다. 매니저님은 나를 한식매장으로 보냈다.


 한식매장은 전쟁터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 매장은 평화 그 자체였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그릇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나는 식기세척기에서 금방 나온 뜨끈한 그릇과 쟁반들을 포개어 정리했다. 그릇에게 사람이 잡아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전술의 공포감과 압박감을 이해하게 되었다.


 설거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다시 우리 매장으로 돌아와 고로케 반죽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타임 아르바이트생이 출근을 했다. 나는 그와 교대를 한 후 빠르게 집으로 도망 왔다.



퇴근 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누웠다.

'분명 아침 일찍 출근했는데 왜 벌써 저녁인 걸까?'  

잠만 자고 몇 시간 뒤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마치 현대판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 에너지가 고갈돼버려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기름에 손목이 노예의 증표처럼 보였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때 엄마가 방문을 열고 첫 출근은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공부 열심히 해서 과외할 걸... 기름에도 데어버리고, 하루 종일 서있기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 기름 화상 안 지워지면 어쩌지? (훌쩍) 그래도 1주일은 그만둔다고 하려고..”


엄마는 기름 화상으로 생긴 상처는 물보다 잘 없어진다고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1주일만 참고 그만둬도 된다고 위로해준 채 방을 나가셨다.



그만두겠습니다


 그렇게 난 첫 출근을 한 지 3일 만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매니저의 면전에 대고 그만둔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먼저 메모장을 열어 연습 문자를 작성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처음에 홀 알바를 보고 지원한 건데, 다른 매장 설거지도 그렇고, 기름에 화상 입은 것도 힘들다' 라며 구구절절 그만두겠다는 이유를 적었다. 내가 봐도 글이 너무 긴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내 친구들 중 가장 이성적인 녀석이 말했다.

"어차피 그만둔다는 내용이잖아? 매니저도 다 알 거야 구구절절 이유 다 설명할 필요 없어. 홀 알바 아니고 주방 알바를 한다는 게 힘들다 정도만 말해도 될 것 같아"

 친구의 조언에 따라 조금 간추린 채 매니저님께 그만두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내 인생, 첫 퇴사 문자였다. 어떤 답장이 올지 너무 두근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로부터 답이 왔다. 매니저는 지금 일하고 있는 홀 알바생이 그만두는 다음 주부터 나를 매대에 배치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번 주는 쉬고 다음 주부터 출근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다른 알바를 구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서 홀 알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 첫 퇴사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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