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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30. 2022

다시 출근한 기억

고로케 3

  출근날부터 퇴사를 결심했던 나는 매니저의 설득으로 인해 다시 고로케가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주방이 아니라 매대로 출근했다.


 홀 알바는 주방 알바보다 늦게 출근하고 비슷한 시간에 퇴근했기 때문에 하루 동안 벌 수 있는 돈이 적었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해 몸이 힘들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주방처럼 무거운 반죽을 들거나 뜨거운 기름 앞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홀 알바의 주 업무는 매대에서 고로케와 닭강정을 판매하는 것이다. 손님이 주문하는 개수만큼 포장을 해서 백화점 이동식 단말기로 계산하면 되는 간단한 업무였다. 참고로 우리 고로케매장에서는 닭강정도 함께 만들어 팔았다.



고로케 먹고 가세요!


 고로케 매대는 지하 식품매장 입구 바로 앞에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았다. 더구나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백화점이라서 동창이나 지인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다. 보통 지인을 마주치면 넉살 좋게 고로케 하나 사가라고 했는데, 가끔 정말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숨기도 했다.


 홀 알바의 업무는 단순 포장과 계산이 다가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모객 행위도 해야 했다. 특히 매출이 잘 안 나오는 날에는 담당 매니저들의 모객 압박이 심해졌다. 매니저들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직접 소리치며 시범을 보였다.

 "닭강정이랑 고로케 먹고 가세요!!" 

라고 외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니저님처럼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안 올 것 같았다. 낯을 가리거나 내성적인 사람에겐 정말 극악 난이도의 업무였다. 고로케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단순 모객 행위는 나에게도 고난도였다.

소리지르기 정말 민망하고 싫었지만, 갈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나도 소리쳤다.

 "닭강정이랑 고로케 먹고 가세요오오오호"

 닭강정 먹고 가라고 소리치는 게 처음 한두 번만 어려울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어려웠다. 다음날에도 어려웠다. 3일 차가 되었을 때쯤 할만했다. 아무래도 이때 이후로 발표 공포증이나 무대 공포증 같은 게 희미해진 것 같다. 결론적으로 고로케 덕분에 성장했다.


 내가 모객 행위를 하면 몇몇 아주머니들은 관심을 갖고 다가왔다. 하지만 대부분 시식에만 그치고 그냥 지나가셨다. 아무래도 문제는 모객 행위가 아니라 맛에 있던 것 같다. 자고로 닭강정이란 차가워도 맛있어야 하는데, 이건 막 튀겼을 때만 맛있고 식으면 너무 딱딱하고 비렸다. 고로케도 마찬가지였다. 닭강정보다는 양반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튀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손 이 가지 않았다. 마감전에는 3+1 행사를 해야만 다 팔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일한 고로케 매장은 내가 그만둔 지 몇 개월 가지 않아서 사라졌다.



알바 친구


 마감이나 오픈처럼 사람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일하고 보통은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일했다. 특히 주말 오후에는 둘이서 일해도 너무 바빴다. 군중심리 때문인지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줄을 섰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고로케가 다 나갔어요'라고 말할 걸 '다 털렸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처음으로 같이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은 나랑 동갑이었는데, 중학교 동창과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 그녀는 손님이 없을 때 고로케를 미리 잘라두고 몰래몰래 먹는 법을 알려주고 쿨하게 떠났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한가할 때마다 한입씩 먹는 고로케가 정말 맛있었다.

 그 친구가 그만두고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도 나랑 동갑이었다. 성격도 좋고 대학 진학을 앞둔 상황이 나와 같아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손님이 없을 때는 새로 들어갈 대학의 오티이야기, 동기들 단톡방 이야기 등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걱정과 수다를 나누었다. 일을 그만두고도 꽤 오래 연락을 주고받은 기억이 있는 좋은 친구였다.


 그렇게 홀 업무에 나름 잘 적응해서 개강 후에도 주말 알바로 일하다가 3월 말에 그만뒀다. 대학교를 통학하는데 왕복 4시간이 걸렸고 과제가 심각하게 많아 도저히 알바를 병행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회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의 첫 알바가 생각보다 짧게 끝났지만 생각보다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첫 알바로 최저 시급 5,580원을 받아서 그런지 목돈을 모으기 너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스스로 돈을 모아보니 함부로 지출을 하지 않게 되고 가계부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닌 매니저, 점장들한테 뭐가 두렵다고 기름 화상에 대한 산재처리나, 출퇴근 준비시간 15분 '꺾기' 등 부당한 것들에 대해 말하지 못했는지 후회된다. 다행히 15분 '꺾기'와 같은 부당한 임금체불은 누군가가 노동부에 신고했는지 1년 뒤에 이랜드 푸드 측에서 돌려받을 수 있었다. 몇만 원 안 되는 돈이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주휴수당이든 초과수당이든 최소한의 노동권리는 챙기기 위해 공부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여러 손님들과 대화하고 모객도 해보면서 성격이 더 외향적으로 변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이제는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 아르바이트 경력이 생겨서 그다음 일을 구할 때는 자신감이 생겼고,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성장했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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