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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8. 2022

수능이 끝나고 난 뒤

19.9세라는 건 1

수능이 끝났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2015학년도 수능도 벌써 일주일 전 일이다. 

이번 주부터는 밤 10시가 아니라 오전 11시 30분에 하교를 할 수 있다. 

무려 10시간 30분이라는 자유가 더해진 셈이다. 


해가 떠있는 상태에서 교문을 나서는 게 몇 년 만인가. 

10년 만에 누려보는 자유에 얼떨떨해진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아"


집안은 고요했다. 

평일 오후 12시는 가족들 모두 각자의 일터나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딘가에 얽매여 있는 시간에 나 혼자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고3이라는 핑계로 중식, 석식, 그리고 간식까지 매우 잘 챙겨 먹었더니, 안 그래도 불편했던 교복이 더 갑갑해져 있었다. 빠르게 손발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포근한 이불 속에 들어가니 불편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버킷리스트란 건


 이제는 수능을 핑계로 시청을 미뤄뒀던 예능들을 행복하게 몰아볼 시간이다. 

그 해에는 내 취향을 저격한 예능들이 유독 많았다. 

사실 수험생이라서 모든 예능이 재밌었던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수능 전, 야금야금 훔쳐볼 때는 그렇게 재밌던 예능들이 수능이 끝나니 시시하게만 느껴진다. 

예능도 수능 버프가 끝났나 보다.


 금방 싫증나 버린 예능을 정주행 하는 대신에 버킷리스트를 써보기로 했다. 

꽃보다 청춘 시리즈를 인상적으로 봐왔던 터라 ‘해외여행 가기’는 무조건 리스트에 넣었다. 

비정상회담을 보니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져 교환학생도 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생이 한 번쯤 꿈꾼다는 '장학금 받기'도 적었다.


 내 버킷리스트에서 유일하게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은 1000피스 퍼즐 맞추기 뿐이었다. 

그래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며칠 동안 방구석에서 퍼즐만 맞췄다. 

인생을 건 버킷리스트가 1000피스짜리 명화 퍼즐 맞추기라니 이 얼마나 순수한 청소년인가. 

눈물이 다 난다.




쌀밥이 없다는 건

10년 동안 나에게 공부는 매일 먹는 쌀밥이었다. 

그것은 나의 주식임과 동시에 지겨운 존재이기도 했다. 


이런 쌀밥도 자세히 보면 장점이 있다. 

첫 번째, 쌀밥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준다. 

쌀밥이 있기 때문에 간장게장이 도둑이 될 수 있었던 이치와 같다. 시험기간만 되면 방 정리와 독서가 재밌어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는가? 아쉽게도 이 모든 건 시험이란 존재가 사라지면 시시해져 버리고 만다.


 두 번째, '쌀밥을 먹는다'는 단순한 공통점 하나만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몇 년 뒤 사회에서 만났다면 과연 친해졌을까 싶은 인연들까지도 쌀밥을 함께 먹은 덕분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방학에는 딴짓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쌀밥이 없다. 

쌀밥이 없어진 지금, 더 이상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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