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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9. 2022

회피성 결정장애

Prologue 2

 며칠 전 출근길에 결정장애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패널이 현세대가 겪는 결정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완벽주의’ 꼽았다. 해당 패널의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나는 우리 세대가 겪는 결정장애의 본질적인 이유는 '방대한 선택지'에 비해 '부족한 경험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하이틴을 보낸 대부분의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잘 없었다. 매일 같은 교복을 입으면 되었고, 점심과 저녁에는 급식을 먹으면 되었다. 대다수의 우리가 10대에 내린 가장 큰 선택은 대학을 갈지 말지, 그리고 어떠한 대학을 갈지 였다. 그 마저도 수능 성적과 내신에 따라 어느 정도의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내린 선택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부분이 있다.


 이랬던 뽀시래기 녀석들이 몇 개월 만에 성인이 되었다고 얼마나 멋 들어진 선택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사회에 나와보니 예상보다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잦았으며, 너무 많은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무거웠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정장애를 습득했다.



 나의 결정장애는 회피라는 특성을 띄었다. 이러한 행동의 기저에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나는 항상 탓할 대상을 찾았다.

‘내가 수학 성적이 안 나오는 건 저 선생님 때문이야’ 또는 ‘이번에 성적이 하락한 건 부모님이 과외를 안 시켜줘서야’ 등 나의 이유에는 항상 그럴듯한 핑계가 있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오니 이런 식의 자기기만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 것들은 나를 우물 속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이것들이 잘못된 자기 방어기제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22년 현재의 나는 과거만큼 눈에 띄게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어느 순간 인지하지 못한 채 흐리해져 있었다. 추측컨데, RPG 게임 속 캐릭터처럼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이것들을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나의 회피성 결정장애가 서서히 흐려진 것 같다.



 나는 20살 고로케집을 시작으로 15군데가 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느 90년대생의 소소한 성장 이야기다. 나는 이러한 아르바이트 경험담들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나의 의식의 흐름을 풀어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90년대 생'이나, 비슷한 경험을 할 '00년대 생'들에게 이 책이 공감과 재미,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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