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어서 와? 자연암은 처음이지? -1
- 자연암(릿지) 교육
장비 구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암으로의 등반 일정이 정해졌다. 두근두근! 왜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상황은 두려움보다 설렘을 안겨 주었다. 평소 나는 내려와야 할 산을 힘들게 뭐 하러 올라가야 하는 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사람이다. 이런 내가 설렘을 느낀다는 건 아마도 내 클라이밍에 대한 사랑 때문이겠지?
일정이 정해 진 후 우리 암장에는 소소한 변화가 생겼다. 평소 볼 수 없었던 자일(로프)이 꺼내졌으며 운동하는 벽에 퀵도르(자일을 통과시키기 위한 장치)가 설치되었다. 퀵도르에 자일을 연결하는 것은 안전한 등반과 직결되기에 실전 전 연습을 위해 설치된 것이다.
퀵도르에 자일을 연결하는 법은 쉽다. 그냥 자일을 빠지지 않게 퀵도르에 걸면 끝! 누구나 방법만 알면 1분 안에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센터장님은 나에게 그 방법을 설명해 주셨고 나는 단번에 이해하고 바로 실전에 돌입하기 위해 자일을 몸에 묶고 벽에 붙었다.
벽에 붙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과연 자연암에 나갈 수 있을까? 제일 쉽다는 퀵도르 연결이 이렇게 어려운데?
방법은 쉽지만 이게 막상 벽에 붙으니 하나도 쉽지 않았다. 퀵도르 연결을 위해 한 손으로 자일을 잡아야 하는데 그럼 벽에는 나머지 한 손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 두 손으로도 간신히 붙어 있는 내가 한 손으로 벽을 잡고 있어야 한다니요? 거기다 분명 나는 이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연결한 자일과 퀵도르는 반대 방향으로 연결되기 일 수였다. 나 도대체 뭐 배운 거니?
우리 암장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S가 첫 자연암 등반에서 무서워서 울었다는 이야기. 그게 벌써 3년 전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S는 놀림받는다. 왜인지 나는 그 두 번째 타자가 내가 될 것 같은 슬픈 예감에 빠졌다. 이제라도 안 간다고 할까? 그럼 내 비상금을 털어서 산 장비는? 이거 환불되나? 부정적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갔다.
좌절한 나를 보고 자연암에 같이 나가는 선배님들과 S는 실전은 이거보다 쉽다며 나를 위로했다. 당신들은 나보다 잘하고 경험도 있잖아요. 이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나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 숨기며 다가오는 자연암 교육날짜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도한 자연암 교육 당일. 나는 두려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가지고 짐을 꾸려 S와 Y와 함께 산으로 출발했다.
나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암벽 등반 코스는 산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걸 하기 위해선 등반을 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등반에 자신은 없었지만 체력 하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등반을 무시했었는데 내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내 등에 이고 지고 온 등반 장비 덕분이었다. 가방에 5~10kg의 무게를 지고 올라가니 일반 등반보다 힘든 것은 당연지사. 나는 왜 이런 당연한 것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거기다 암벽 등반만 생각하고 왔기에 나는 등산화를 신고 오지도 않았다. 운동화로 산을 오르기엔 낙엽이 너무 많아 미끄러졌다. 이거 이거 교육받기 전에 미리 기절하는 거 아니야? 딱 죽기 직전까지 힘든 그 순간 우리는 암벽 코스에 도착하였다. 역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나 보다.
S와 Y는 나와 함께 센터장님께 자연암 교육을 받기 위해 같이 이 코스에 온 거였으나 그녀들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센터장님은 그녀들에게 하드 프리(자유 등반)를 시키고 나에게만 등반 교육을 시키기로 하신 것이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 아하하하.
나도 그녀들과 같이 교육을 받을 생각을 했기에 혼자 교육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긴장을 하긴 하였으나 오히려 혼자 받기에 더 설레었다. 그렇다 나는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관심 종자다.
센터장님과 둘이 하는 교육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내 몸이 단 하나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교육은 내일 있을 릿지 등반(여러 개의 코스를 연속으로 올라가는 등반)을 위한 것이라 이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 나의 안전은 물론 같이 등반하는 다른 사람들의 안전까지 위험하다. 그걸 알고 열심히 따라가려고 해도 이상하게 내 몸은 센터장님의 설명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의 나를 회상해 본다면 구름 위를 걷는 느낌?! 뭔가 붕 떠 있어서 단 하나의 설명도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자일을 몸에 묶는 팔자 매듭법을 배우는데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풀리지 않는 매듭법이라 이 매듭법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데 나는 이 매듭법을 묶지 못해서(묶는 법을 이해하지 못해) 엄청난 욕을 먹었다. 보통 암장에선 센터장님에 욕을 먹으면 정신을 차리는데 나는 이 자연에서 욕을 먹어도 허허실실 거리기만 할 뿐 매듭을 묶지 못했다. 아. 진짜 나 내일 잘할 수 있을까?(이렇게 멍청한 애는 처음 봤다며 센터장님도 날 포기하셨다..)
센터장님은 이런 나를 보며 엄청 답답해하시면서도 친절하게 모든 교육을 하나하나 해 주셨다. 등반에 필요한 모든 매듭 법은 물론이요 빌레이(등반가의 추락을 막기 위해 로프를 사용하는 기술) 보는 법, 하강 법 등을 교육해 주셨다. 그날 내 눈에 센터장님은 성인군자처럼 보였다.
모든 이론 교육을 마치고 들어간 실전 훈련!! 멍청하게 다 이해해지 못했지만 나는 마냥 해맑았다. 엄마! 나 드디어 암벽등반해!!
처음 한 실전 교육은 하강. 높은 바위 위에서 아래 바위로 로프를 연결하고 내려오는 것이다. 항상 TV로만 보던 걸 내가 실제로 하는구나. 그 순간 붕 떠있던 나의 정신은 언제 나갔냐는 듯이 돌아왔다. 처음 느껴보는 몸의 스위치가 ON 되는 느낌!
무서울 줄 알았던 하강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디딜 곳을 쳐다보며 한 발 한 발 내려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너무 짜릿했다. 하지만 그건 암벽이 발에 닿을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내려가야 하니 내 정신은 갑자기 아득해졌다. 센터장님은 그런 나에게 발을 딛지 않고 하는 하강 법을 설명해 주셨고 나는 어찌 저찌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본 내 손에는 빨간 피가 맺혀있었다.
하강 시 무릎을 펴서 줄과 암벽 사이를 띄워야 하는데 발을 디딜 수 없게 되자 내가 벽 쪽으로 붙어 손이 다 쓸린 것이었다. 근데 신기한 것이 단 하나도 아프지 않고 이 모든 행동이 너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난 클라이밍에 미친 자가 분명하다.
암벽 등반도 비슷했다. 몸에 자일을 묶고 암벽을 올라갔는데 눈에 잡을 홀드는 보이지 않고 먼지와 이슬 등으로 바위는 미끄러워 발을 디디기 힘들었으나 한 발 한 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암벽을 정복하는 느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내가 뭔가를 해내는 느낌?! 와 생각보다 나 자연암 등반이 체질에 맞을지도?
그렇게 3~4시간의 교육은 끝이 났다. 마지막까지 센터장님은 나에게 애정을 동반한 수많은 욕을 하셨지만 나에 귀에 와 닫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저 내일에 등반에 대한 설렘만 가득했다.
얼른 와라 내일아! 내가 모든 암벽을 정복해 주겠어!
초보 클라이머는 내일 무슨 일이 눈앞에 펼쳐질지 예상도 못한 체 마냥 해맑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