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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공일일공 Jan 14. 2021

9. 누구에게 꽃을 주었는가

100KYULI 작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매일 답변을 공유하고,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100KYULI님의 글입니다. 규리님의 소개를 전하며 저는 이만 총총.


100KYULI


평소 순간순간의 일상을 기록하곤 했는데 이렇게 저를 돌아보는 글을 쓰는 건 처음이에요. 가장 사적인 다이어리조차 누군가가 볼 것을 의식해서 쓴 적이 있는데 이 101개의 질문에는 오로지 저에게 집중하며 글을 써보려합니다.


꽃 선물은 뭔가 애매하다. 받을 때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마냥 기분이 좋지만, 줄 때는 뭔가 의미가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또 받고나서 좋은 기분은 잠시, 몇일 뒤 말라비틀어진 꽃을 약간의 서운함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릴 때면 '꽃은 기분내기 용 선물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꽃선물은 잘 하지 않았다. 지금은 또 다른 이유로 잘 안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써 보려 한다


3 년 전, 처음으로 선물을 하기 위해 꽃을 사보았다. 내가 꽃을 선물한 사람은 나의 엄마.


엄마는 50세가 되며 갱년기를 겪었다. 몸이 더웠다 추웠다, 예민했다가 즐거웠다가. 나야 직접 겪는게 아니니 '엄마가 갱년기구나. 조금 더 신경써야지' 정도였지만 엄마 스스로는 그 변화가 매우 우울했던 것 같다. 항상 자타공인 젊다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늙었다는 생각에 더 큰 상심이 오지 않았을까 싶다.


초등학생 때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하면 친구들이 항상 하던 말이 "너희 엄마 왜케 젊어?" 였다. 엄마는 24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25살에 나를 낳았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엄마 나이가 33살이었다니. 애들이 놀랄만도 하다. 워낙 외모도 동안이라 초등학생이던 나와 같이 시장에 가면 이모냐, 사촌이냐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왜 내가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좋아보여서 어릴 때는 '나도 일찍 결혼해서 젊은 엄마가 되어야지!'하는 다짐을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24살이 되어보니 엄마가 얼마나 어린 나이에 개인의 삶을 포기한지 알게 되었다.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집의 가정사를 생각하면 엄마는 포기가 맞다. 내 나이가 점점 들수록 엄마의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절대 포기 못 할 것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갱년기가 오기 직전, 엄마는 자궁에 혹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도 하였다. 워낙 월경통이 심하던 엄마는 "생리 안하니까 너무 좋네!"라고 했고 그 말을 나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물론 진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개인의 삶이 멈춰버리고, 그 후에는 주변의 칭찬(?)으로 아직 난 젊다고 위안이 되던 날들이었지만 자궁적출 수술과 갱년기로 인해 몸이 엄마에게 '응 그거 아니야 무언가 도전하기에 늦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을까.


다행인 건, 내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에 엄마가 갱년기였다는 것이다. 만약 더 어렸다면 머리로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아 왜 나한테 짜증내!"하며 나도 같이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K-장녀 (Korean 장녀) 의 특징은 좋은 곳, 맛있는 것을 경험하면 엄마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가사일만 하다 하루가, 1년이 다 가버리는 엄마도 이런 걸 알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에 그렇지 않을까. 또 그런 우리의 모습이 엄마들의 과거엔 없다는 것과 그런 엄마들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가 그런 삶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고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래서 일부러 갱년기에 좋다는 화애락, 영양제 등 여러가지를 선물하기도 하고 엄마와 해외여행도 종종 다녀왔다. 주로 내가 먼저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곳들이었다. 가 보니 너무 좋아서 다음에 엄마랑도 와야지 하는 생각에 엄마랑도 다녀온 여행. 사실 나는 갔던 곳을 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전에는 보지 못 한 것을 보기도 하고 장소란 시시때때로 변하니까 돈이 아깝지 않다. 그래서 엄마랑 가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먼저 가 보았기에 길도 대략 알고 큰 틀은 머릿속에 넣고 갈 수 있어 더 편하게 가기도 했다. 그래서 아직도 좋은 공간에 가면 머릿속 한 켠에는 엄마랑도 와야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 직접적인 행복이나 기분전환은 되지 않는 것 같아 괜히 사명감을 갖고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목화의 꽃말을 알게 됐는데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뭐든 흔한 걸 싫어하는 엄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미꽃을 제일 싫어할 정도인데 목화라면 색다르면서 의미있는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집에 들어가는 길에 목화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했는데 그걸 받은 엄마는 꽃말을 듣기도 전에 감동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원래 감동 받으면 잘 우시는 편ㅋㅋㅋ) 감동을 진정시킨 후에는 오랜만에 보는 찐웃음으로 목화를 프리저브드 처리해서 벽에 걸어두었다. 그 목화는 아직까지 안방 화병에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한다면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을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나도 벅차고 행복했었던 이 감정을 흐리고 싶지 않아서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꽃을 선물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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