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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생활자 Apr 02. 2023

나는 벚꽃보다 목련이 좋다

세상에 이렇게 추하게 지는 꽃이 또 있으려나...

이맘때가 되면 다들 벚꽃벚꽃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벚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이 좋다는 건 살짝 시큰둥하게 보는 약간의 홍대병인지도 모르겠다. 벚꽃 하면 너무 당연한 클리셰들만 떠올라서 그런 건지 피기도 전에 지겨워지는 느낌도 있다.


대신 나는 목련이 더 좋다. 우리 집 옆에 작은 목련나무가 하나 있는데, 목련나무가 있어 좋다던지 혹은 서울에 오래 살다가 고향집(?)으로 돌아왔을 때 목련 나무가 맞아줬다던지 하는 문학적인 표현은 좀 느끼하고, 서울에 십여 년간 살다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쟤 아직 있네?” 하는 생각은 했었다.


벚꽃을 그릴 때는 그냥 면을 쓱쓱 칠하고 중간중간 점을 찍어서 꽃을 표현한다. 반면 목련은 더 우아하고 유려해서 선을 쓱쓱 그으면서 그려야 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


벚꽃 한송이(송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사실 매우 작다)는 별 볼 일 없이 그저 그래도, 뭉쳐야 아름다운 특이한 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벚꽃이란 나무에 만개한 그 정경이지, 벚꽃 한송이는 아닐 것이다. 반면 목련 한송이는 쓸쓸한 듯 고고하고, 나무에 여러 송이가 달려있어도 벚꽃처럼 전체로 인식되지 않고 한송이 한송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좋다. 왜 내가 목련을 볼 때마다 고고하다고 생각하나 고민해 봤는데, 꽃받침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짙은 갈색의 가지에서 바로 꽃이 피는 듯한 형상이라 그냥 왠지 그래 보였던 것 같다.


다만 목련은 단점(?)이자, 벚꽃에 비해 목련의 매력을 반감을 넘어 절감시키는 점도 있긴 하다. 유희경의 산문에 쓰인 대로, 벚꽃은 벚꽃비가 내리면서 어떤 꽃보다도 헤어질 때 아름다우며, 만발하여 작별을 예비하는데 반해 목련은 헤어질 때 갈색빛으로 변하면서 다른 어떤 꽃보다도 유달리 추하다.


근데 이건 사실 벚꽃이 이상한 꽃인 거다. 국어시간에 엄청 배우지 않았나 반어법. "소리 없는 아우성" "아름다운 이별" 아름다운 이별이 어딨나. 원래 이별할 때는 행태던 외관이던, 마음이던 살짝 추한 법이다. 찌질하게 차단당했는데 카톡도 해보고, 울어서 화장도 번져보고, '망해라' 하고 저주도 하고 말이지... 그렇게 때문에, 목련처럼 우아하고, 고고한 꽃도 헤어질 때 저렇게 추한데! 살다 보면 다 사는 게 다 비슷하고 그런 거다... 하면서 목련이 빛을 잃다 못해 변색되가며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위로라기보다 공감이랄까, 너도 그러는구나 나도 그렇다 하는 공감.

 

여하튼 나중에 혹시라도 자유인으로 마당이 크게 딸린 전원주택에 살게 된다면(아파트를 사랑해서 그럴 일은 없음) 정원 한편에 목련나무를 많이 심고, 꽃이 필 때는 우리 고고한 목련이를 감상하다가, 목련이가 떨어질 때면 그 추한 꼴을 보지 않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싶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리 아파트 옆 목련꽃의 추하게 지는 꼴을 봐야 하는데, 좋아하는 것의 추한 꼴은 딱히 보고 싶지가 않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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