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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여자 Oct 18. 2023

갑상선 항진, 그레이브스 병을 진단받다.

임신 계획을 미뤄야 했던 이유

이유 없이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부터였다.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뻘뻘 나고 숨이 찼다. 지난겨울 내내 춥다는 핑계로 너무 몸을 안 움직였더니 체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침 운동으로 테니스를 등록하고 뚜벅이가 되어 하루 1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식욕이 돌아 하루에 6~7끼를 걸신이라도 들린 듯 비워냈는데 이상하게도 살은 계속해서 빠졌다. 처음 느껴보는 피곤함이었지만, "살이 빠져서 그런가? 운동을 한 보람이 있네."라고 생각하고 곧 체력도 올라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기력조차 사라지고 계단 하나를 오르는 일도 100층을 오르는 일처럼 엄청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맘때쯤 건강검진이 잡혀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었다. 검진이 끝나고 병원을 나선 지 1시간 정도 되었을까. 병원에서 온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너무 좋지 않으니 당장 가까운 병원으로 내원해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연꽃


당장 임신은 어렵습니다.


 회사 근처 내과를 우선 찾았다. 선생님께선 수치를 보시더니 상급 병원으로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빠르게 예약 일정까지 잡아주셨다. 당시 T4 호르몬 수치가 4.91이었는데 정상범위(0.35~1.7)를 한참 벗어나 있어 긴박한 상황이라 판단하셨던 것 같다. 갑상선 초음파도 보았는데 초음파상으로 갑상선 염 등의 이상 소견이 따로 보이지 않아 나의 병명은 '그레이브스 병'으로 진단이 내려졌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였고, 약물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먼저 시도하고, 차도가 없으면 수술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결혼 유무와 자녀 유무를 물으셨는데, 결혼은 했고 자녀는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표정이 안 좋아지셨다. 다음 질문으로 임신을 계획 중에 있는지를 물으셨고 그렇다고 말씀드리니 당장은 임신 시도를 멈추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다. 갑상선 기능의 항진 또는 저하는 임신 시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한 병이라고 하셨다. "올해는 꼭 임신에 성공해서 토끼띠 아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좌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겠지만 지금까지 내 몸을 잘 못 돌보았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카페인도 끊고, 더 좋은 질의 잠을 자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끊임없는 채혈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



복용 약을 메티마졸에서 안티로이드로 바꾸며,


 흔히 갑상선 항진에 복용하는 약인 메티마졸은 임신 초기 태아의 선천성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갑상선 수치가 점차 안정되어 가며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통해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문제가 없는 안티로이드(PTU)로 복용 약을 변경했다. 약을 바꾸고 치료가 시작된 지 6개월이 넘어가며 수치는 정상 범위로 들어왔다. 약을 끊고 완치가 되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지속적으로 약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수치가 평균보다 낮아지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아마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감기나 눈에 난 다래끼처럼 가볍게 지나가는 일상의 질병이 아닌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을 앓게 되며 건강의 중요성을 뼛속깊이 새기게 되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과 행복하게 늙어가려면 우선 우리 부부가 서로 건강을 잘 살펴줘야겠다 다짐했다. 올해 초 갑상선 진료를 봐주시는 내분비내과 선생님께서는 이제 임신 준비를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의견을 주셨고, 1년 만에 다시 난임 병원을 찾았다. 임신 준비를 잠시 쉬는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더욱 단단해져 있었고 아이도 금방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함께했다.


행복은 자신의 속도로 걷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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