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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9. 2022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대한 이야기



어릴 때 청소년 성장 드라마를 보면 슬프기도 했지만 울컥! 화가 솟구쳤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왜 죄다 한부모 가정인지. 그 아이들은 왜 다 가출하고 방황하고 문제아인지.     


게다가 중학교 때 친구 중 가출을 일삼던 동네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찾을 때면 나를 호출했던 친구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우리 집 사정을 다 고자질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단다.

“00 이는 아빠도 없이 집안 환경도 안 좋은데 공부도 잘하고 착한데 우리 애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드라마를 보면, 친구 엄마의 말을 들으면, 마치 한부모 가족인 나는 문제아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공부도 잘하면 안 되고, 일탈을 일삼는 아이. 불운한 아이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가정환경처럼.

(실은 티 안 나게 놀긴 했다. 정말 공부만 잘하고 모범생은 전혀 아니었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이상하리만큼 웃음이 나왔다.

이를 악물었다.

내가 저 고정관념, 편견을 깨리라.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잘 자랄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만큼 잘 자라고 싶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아빠의 죽음. 가난. 그리고 수도 없는 어려움.

첩첩산중 어려움에 갇혀 있어도 이를 어떻게 뚫고 나왔을까?

그 해답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찾을 수 있었다.   

  

‘회복탄력성’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환경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잘 적응하는 것이다(Werner, 1995). 아무래도 가정의 위기, 부모의 죽음, 질병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삶의 역경과 시련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삶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고 적응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짱짱한 고무줄처럼 탄성력이 뛰어나 위기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른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뛰어난 사회적 기술과 의사소통 기술.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창의적 배출구. 낙관적인 미래 기대. 신앙(종교적 믿음). 사회적 지지. 지능 등........”     


 비록 아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소중한 유전을 물려주셨던 모양이다.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았고 세상이 반가웠고 신기했다. 오묘한 것 투성이인 삶이 궁금했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친구들도 많았고, 학교 선생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등학교 때는 가르치지 않았던 선생님도 나를 기억할 정도로 발랄(?)했다.). 아빠 없이 쪼그라든 나도 있었던 반면, 빛날 수 있었던 작은 순간들이 나를 낙관하게 하였다. 나에 대한 믿음. 언젠가 더 나아질 거란 희망. 놀랍게도 시멘트에서도 꽃을 움트는 민들레를 보는 눈. 삶에 세밀한 아름다운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앙(종교적 믿음).

내 삶에 의미를 준 믿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나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언젠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리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과 슬픔이 때가 되어 열매 맺게 되리라는 믿음 가운데 세상에 뿌리를 내렸다.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던. 내가 결단코 선택하지 않았지만 내게 주어졌던 그 불행은.....

비록 내 삶에 생채기, 상처, 슬픔 등을 남겼지만...

그 영향 속에 작게나마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 받게 되었다.

나의 불행은 결국, 영....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간절한 바람만큼

찬란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p.s

삶에 운이 다한 것 같은 고난과 역경이 있다면, 한부모 가족은 건강하고 단단하게 살 수 없을 거라는 편견이 하나, 둘 깨져서 감사하다.

회복탄력성, 외상 후 성장.


심리학에서 긍정적인 개념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 좋겠다.

인생 속에는 누구나 때는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고난이 찾아오지 않는가.

우리는 고난 속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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