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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2. 2023

나는 루이비통이다


나는 루이비통이다. 

“환자분 성함이?”

“김지영이요.”

“아. 루이비통이시네요.”

“네?!  ~~~ 네~~~.”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의 손이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평상시 같으면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면 미안한 마음에 급히 용건만 보고 지나친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궁금하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내 성정이 오늘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왜 루이비통이에요?”

“아~~  흔하다고요. 이름이. 루이비통도 흔하잖아요. 3초 백이라고 불리고.”

“아~”

별 시덥지 않은 이유에 ‘피식’ 웃었다.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있지도 않는데 루이비통이라니... 한편으로는 분주하고 바빠 유머조차 잃었을 그녀의 삶에 그렇게라도 생기를 불어넣은 듯해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흔한 이름이 참 싫기도 했는데 나름 명품백이라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 마음이란 참..

그렇다. 내 이름은 참 흔하다. 그녀가 콕 집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이름이 흔하다는 걸 잘 안다. 길을 걷다가도 “지영아.” 하고 누군가 부르면 길가던 몇 사람이 뒤를 돌아본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1학년 입학식 날에는 “김지영” 어린이가 많았기에 한참을 돌고 돌아 나의 진짜 반을 찾기도 했다. 

흔한 이름에 나름의 고초(?)도 많이 겪었다. 나만의 고유함을 알리기 위해 굉장히! 애써! 나를 소개해야했다. 심지어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지영이가 많았다. 아니, 학생이 많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아니고 대학원에 와서 조차 내 이름과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다니. 교수님은 여러 명의 “지영”이가 헷갈리다며 각자 호(號)를 지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편의 하나밖에 없는 전 여자 친구도 이름도 지영이라는 사실. 잠꼬대로 “지영” 이를 부른다면 꿈속의 그녀가 나일지, 과거 추억 속의 그녀일지 알게 모람. 어떤 이유였든간에 같은 이름을 지닌 존재가 이 세상에  많은 게 너무 싫었고 피곤했다.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왜 이렇게 흔하디 흔하게 지었던 말인가. 

뭐. 그렇다고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나쁜 일만 있겠는가. 살다 보니 흔한 이름 덕분에 덕을 본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아주 유명했던 베스트셀러 책 제목. 나중에는 영화까지 나왔던 ‘82년생 김지영’ 속의 주인공도 ‘김지영’이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를, 같은 세대를 살아온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개봉하는 첫날, 영화관에 갔다. 큰 스크린 화면 속에 제일 좋아하던 배우, 공유가 나와  “지영아~”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니 얼마나 좋았던지. 영화가 나온 이후에는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 나를 소개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제 이름은 몇 년 전 아주 유명했던 영화 제목입니다. 뭘까요?”

다들 온갖 추측을 난무하며 대답하다 피식 웃는다. 그러면 첫 만남인데도불구하고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단, 덧붙여야 할 게 있다. 앞에 82년은 절대 아니라고.

지하철을 탔다. 그녀의 말처럼 수많은 루이비통이 자리를 한데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3초 백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백.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명품 가방인 루이비통. 그 속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 모양만 같다면 짝퉁도 괜찮을 텐데.... 웬만한 직장인들의 한 달 월급보다 훨씬 비싼 가방이지만 다들 ‘진퉁’을 갖고 싶어 한다. 이미테이션이 아닌 진품은 장인이 손수 한 땀 한 땀 빚어가며 힘들게 만든 가방이니까 그 빛도, 생김새도 엄연히 다르리라. 그래서 명품 루이비통은 같은 모델이어도 땀의 크기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같은 “지영”이어도 이름만 같은 “지영”일 뿐 무늬, 모양, 살아온 삶, 인생.. 모든 것이 다 다를테다.  루이비통 가방마다 부여되는 TC코드처럼,  같은 지영이어도 주민번호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이제는 예전처럼 애써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가 없어져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굳이 애써 나를 알리지 않아도 진짜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지영’이가 많을지라도 "나"를 떠올렸을 땐, 내가 지닌 고유한 빛과 색을, 그리고 기억들도 함께 떠올리겠지.

흔한 내 이름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왔다. 이 이름과 함께 산 나의 세월은 루이비통이 명품 가방으로 누군가의 삶에 오래도록 함께 한 세월과 이제는 비슷할 듯싶다.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네임을 인정받은 고급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나 또한 명품처럼 나를 아는 사람들과 오랜 기간 동안 지고지순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명품백의 중후한 맛때문에 중년층들이 주로 사용하듯, 중년을 지나는 나의 시절또한 중후하게 멋들여가면 좋겠다.  내 이름 루이비통 답게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하고 고급스러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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