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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Sep 22. 2023

반 지하, 꿈꾸기 좋은 장소




© heerenaway, 출처 Unsplash



그 집은 감옥같았다. 어두컴컴한 적막함이 딱 그러하였다. 까만 철문을 열고 잿빛 시멘트 바닥을 스물 두 걸음 정도 내딛으면 1층짜리 양옥집이 보였다. 눈 앞에 보이는 집은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이었고, 내가 살았던 집은 지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한쪽 귀퉁이에 딸린 유리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의 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 집이 내 나이 스물 두살, 한창 청춘이었던 시절에 살게된 나의 열 두번째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부엌이 있었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벽을 따라 들어가면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이층 침대, 작은 화장대, 옷장, 책상이 스물 두살의 내가 가진 세간살이의 전부였다.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반지하. 세상 어디에 그런 집이 있을까 싶어 전세계 외신들이 주목하였다던 한국의 반지하 주택. 그런 집에서 내가 살게 될줄이야. 그때 당시 나 또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제주도에서는 아무리 가난하다한들 반지하집은 없었는데 수도권에서 살아야하는 대가가 이러한 것이던가? 그래도 이전 집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옥탑집이었거늘, 이 집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땅 속 깊이 묻힌 집만큼이나 나는 어두웠고, 암울했다. 매일 집으로 내려가는 걸음 수만큼, 자존감도 지하 바닥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수련회를 다녀온 후 장염에 걸려 고생했던 날이 있었다. 여러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였건만 도무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날 새벽, 남자친구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다. 밤새, 그는 나의 생일선물로 노란 종이꽃을 만들며 극진히 간호했다. 이른 새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보슬보슬 비가 내렸고, 자욱한 흙먼지 냄새가 우리를 에워쌌다.


'우산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집으로 들어오게 해서 우산을 들려 보낼까? 아니야. 어떻게 이런 집에 그를 들어오게 할 수 있겠어? 그렇다고 남자친구를 비맞으면서 돌아가게 할 순 없잖아.'


통증도 잊은 채, 내 안의 자존심과 직면하여 사투를 벌였다. 용기가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나는 차마 초라한 쪽방을 그에게 내보일 수가 없었다. 한 걸음도 들어오지 못하게 쌩하니 뒷걸음 쳤던 그날이, 우리의 헤어짐의 이유였을까?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낮이여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고, 두터운 적막이 먼지처럼 달라붙었다던 그곳. 계절이 어찌 흘러가는지, 세상은 어찌 변하는지 알수가 없었던 그 곳. 세상의 소리 조차 고요함 속에 파묻혔던 그 곳. 숨죽인 싸늘한 공기 속에 쪼그라들었던 그 곳. 누구에게도 내어보일 수 없는 쪽방에서 나는 퍽이나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유난히 더 고요했던 늦은 밤을 기다리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빛은 더 잘보이는 법이다. A4 용지 6개 정도나 겨우 됐을까? 바깥 세상과의 연결고리였던 작은 창문 사이로 새어져 나오던 그 빛을 지금껏 잊을 수가 없다. 오도카니 벽에 기대어 앉아 희망을 셈하던 시간. 희망이란 녀석은 번번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살던 날동안 참 많이도 희망을 꿈꾸었다. 이 작은 빛이 너른 빛으로 나에게 다가올 날이 올거라고, 지금은 희미한 듯 보이지만 언젠가 너른 창을 바라보며 웃을 날이 올거라고, 이 어둠을 뚫고 저 세상 밖으로 나가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나를 위로하곤 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나의 쪽방을 떠올리게 된 건, 한 아이의 집에 가정방문을 다녀온 후였다. 그리고 열악한 가정형편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과 상담을 한 후였다. 좁디 좁은 원룸에서 온 식구가 살아가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 한창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가족들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앉아 전화를 할 수 없는 답답함, 좁은 곳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갑갑함을 이야기할 때면 그저 손을 잡아주며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수밖에 …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응원한다.



"OO아. 이 좁은 공간이 너의 행동을 제한하고 자유를 제한할지라도,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해 답답할지라도, 너의 꿈을 제한할 수 없을 거야. 우리의 희망을 제한할 수 없을거야. 네가 꿈꾸는 세상, 앞으로 나아가게 할 깊은 희망은 결코 너의 발목을 잡지 못할거라 믿어."



의미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이 나치의 유대인 탄압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스물 두살의 내가 깜깜한 곳에서 희망을 꿈꾸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나아가면 좋겠다. 가난하여도 희망을 품는 일은 아무런 대가없이도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건 결코 사치가 아니라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일이니까.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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