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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Mar 05. 2024

사춘기 세계) 넌 얼굴도 예쁜데 왜 화장을 안해?



© petertk, 출처 Unsplash


  열 다섯난 딸의 얼굴이 몰라보게 예뻐지고 있었다. 피부는 점점 하얘지고 발그레한 볼이 영락없이 사춘기 소녀였다. '누가 이렇게 예쁜 딸을 낳았을고' 혼자 감탄하며 흐뭇한 웃음을 짓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딸의 두툼한 파우치를 마주하게 되었다. 궁금함에 열어보았더니,


  '세상에. 이렇게 화장품이 많을 줄이야.'


  어른인 나보다도 색조 화장품이 2배는 더 많아 보였다. 볼터치, 아이새도우, 컨실러 등등. 정말 가경할 노릇이었다. 정확히 5초 동안 놀란 후,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아주 넉넉히 허락한 건 "톤업 선크림!" 정도였는데 팩트, 볼터치까지 하고 다녔단 사실에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다니는 학교의 중학생은 화장을 너처럼 이렇게까지 하고 다니지 않아. 엄마가 톤업 선크림까지만 바르고 했잖아."

 "친구들이 그랬단 말이야. 넌 얼굴도 예쁜데 왜 화장을 안하고 다니냐고. 애들 다 하고 다닌다고"

 "얼굴기 예쁘니까 화장을 안하는 거지!"

얼굴이 예쁘니까 다음의 말들이 청소년 아이들과 마흔의 아줌마는 이토록 달랐다.


 기가 막혔다.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고 화장을 한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불과 6개월 전만해도 스킨, 로션,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걱정하던 터라 지금의 이 광경이 믿을 수가 없었다. 화장한 아이 얼굴을 못 알아보고 피부가 점점 좋아졌다느니, 예뻐진다느니 감탄했던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머리도 잘 안 감으려 했던 것보단 낫다며 위안을 삼아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한숨을 쉬며 울분을 토하는 나를 보고 친한 선생님이 한 마디 했다.


  "그러다 말아요. 공부하느라 바빠지고 힘들어지면 하라고 해도 안할 걸요. 고등학교만 가도 덜 해요. 놀러갈 때나 하고....."

  '그럴까요?'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짓고선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화장품은 고가의 물품이었다. 고작, 엄마의 립스틱이나 분을 몰래 발라봤지만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러니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화장은 화장실 뒷 칸에서 담배 피고 맥주로 머리를 감아 염색을 했던 노는 언니들의 일따위였다. 그러니, 평범한 여중생으론 엄마보다 선배나 선생님이 더 무서워 화장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 한 번은 친한 친구가 선팩트를 어디서 가져와서는 나에게 맡긴 적이 있었다. 하필 그날, 조회 시간에 전교생 가방 검사가 있어서 선도부에 끌려가 억울해했었다.


 이건 정말 지금의 아이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요즘엔 시골 방방곡곡에도 올리브영이 있다. 세일은 어찌나 많이 하는지 대기업 사장님이 맘 놓고 풀면 어떤 상품은 90% 세일까지 이른다. 신나서 달려갈 때도 있었지만 이젠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요즘 아이들이 아낀 용돈을 마음껏 풀러 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흔하게 어디서든 화장품을  볼 수 있고,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아이들은 신이 날 것이다. 팬시한 데 적격이니 말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크게 터치하지 않으니 놀던 아이들의 상징이었던 '화장'은 예뻐지고 싶은 사춘기 아이들의 일상으로 깊숙이 스며든 것 같다.


 엄마로선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내 아이는 안 그럴줄 알았는데 속았다 싶다. 뭐 사춘기 아이들에게 속을 일이 어찌 이 일뿐이겠는가 싶지만 말이다. 그러다 한술 더 떠 저 예쁜 피부가 화학 상품에 놀아난다니 속상하다.  보드랗고 뽀얗던 피부가 늙어가는 것 같아 애가 탄다. 늘어가는 몇 번의 잔소리 끝에 타협이 필요함을 실감했다.  


 "엄마는 학생이 화장을 진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어디까지 화장할거야?"

 "아! 쫌! 내가 맨날 하는 것도 아니고, 입학식이나 그런 특별한 날만 할게"

 "그런데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한 거 알지? 제대로 잘 지우고 자."

  결국 화장품 지우는 오일을 하나 건넸다.


 예전에도 학교에서 만나는 사춘기 아이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건만 요즘따라 여자 아이들 얼굴이 현미경을 들이밀 듯 세밀하게도 눈에 들어온다. 복도에서 만난, 유독 화장이 더 짙어진 아이의 어깨를 장난스레 흔들었다.

 "오늘 무슨 일인거야? 그간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화장이 짙어졌는데!!!"

 "에이 쌤. 아니에요. 저 화장 하나도 안한거에요."

 "에이. 아닌데요. 아이라인이 더 짙어지셨는데요."

 서로 웃으며  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장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뻐보이고 싶단다. 혹은 찐따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란다. 한창 이성친구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갈 때니 그럴만하지. 그 마음을 너그러이 알아주고 우아한 잔소리를 내뱉어본다.


 "너희 땐 뭘해도 다 예뻐."

 꼰대의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진심인 걸 어쩌랴. 뭘해도 다 이쁜 너희들인데.

 꼰대가 된 김에 한 마디 더 붙여본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잘 가꿔나가자!"



<아이들 화장 때문에 속상한 사춘기 어머님들! 조선미 선생님 강의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S6FiDYhj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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