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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04. 2021

내 인생의 화양연화

아련함 속에 잊고 지냈던 그날의 기억 조각(삶에서 배우는 심리학 이야기)


기세 등등한 산자락 아래 드넓은 논밭이 있던 그곳에는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기와집이 있었다. 시골 산골짜기라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홀로 외롭게 남아 있던 그 집. 그곳은 바로 나의 외갓집이다. 마당에는 감나무, 재래식 우물 펌프가 있었고, 개, 오리, 닭.. 동물들이 뛰어다녀 늘 북적거렸다. 화장실을 가려면 잘 열리지 않는 창호지 문을 열어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곤 했다.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변기는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기우뚱 거리며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시원하게 똥을 싸도 개운함보다 똥통에 빠질까 무서워하던 마음이 더 컸다. 게다가 똥냄새는 어찌나 나던지... 흔들리는 나무판자 위에 쪼그려 앉아 균형 잡는 동작이 꽤나 어려웠지만 손으로 코를 막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밤에 화장실을 가는 건 본능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벌여야 하는 사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화장실이 외양간과 맞붙어 있기에 덜 무서웠다. ‘음메 음메’ 소의 울음소리, ‘귀뚤귀뚤’, ‘찌르르르’.. 나지막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여서 참 다행이었다.



8살 겨울, 그렇게 외갓집에 보내졌다.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아빠 몫까지 다해 혼자서 두 딸을 키워야 했던 엄마는 지치실 때가 되었나 보다. 어떤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언니와 나는 갑작스레 외갓집에서 살게 되었다. 경기도에서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도시에 살았는데.. 그래도 나름 이런 푸세식 화장실은 아니었는데...


이미 생채기 난 마음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계절마다 변해가는 자연을 벗 삼아 마음껏 뛰놀 수 있다는 것,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처럼 깜깜한 밤하늘에 콕 박혀있던 별들을 마음껏 볼 수 있던 것이었다. 반짝반짝,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기만 해도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별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떠올리는데 엄마 없이 낯선 곳에서 자랐던 그때가 왜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분명 일주일 전만 해도 가장 아프고 슬펐던 기억으로 그날을 떠올리며 눈시울 붉혔는데 말이다. 일주일 전과 다르게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 나는 왜 또다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떠올리기만 해도 아련하고 어린 내가 너무나도 애틋해 눈물이 먼저 났는데 말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외갓집에서 지냈던 날들이 서러움에 눈물 흘렸던 순간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빛나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나의 내면은 엄마 없는 서러움, 외로움, 그리움에 범벅된 초라한 아이였지만, 학교에서는 전학 온 날부터 존재 자체로 빛났다. 떠나는 학생만 있었지 새로 오는 학생이 없었던 작은 시골 학교에서는 나란 존재가 그저 신기했으리라...


도시녀였던 나는 서울에서 공수된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엄마 나름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뜨개질했을 핑크색 재킷과 치마로 시골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았다. 도시에서 살 때, 남들 다 다녔던 웅변학원 근처조차 가보지 못했던 내가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웅변대회에도 나갔었다. 그러다 보니 시골 학교에서는 목소리가 크고, 당찼기에 그곳에서 지내는 내내 학급 반장을 도맡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외갓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굽이굽이 산길을 30분 이상 걸어야 했다. 그날따라 오래도록 가야 하는 그 길이 심심하고 지루했다. 그때, 길 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지저분한 쓰레기가 내 눈에 띄었다. 재밌는 일이 생각나서 사촌동생들에게 일명 “독수리 오 형제”의 지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우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독수리 오 남매야.

슈파 슈파 슈파 슈파 쳐부수자 쓰레기

태양이 빛나는 지구를 지켜라”

우리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쓰레기를 주웠다. 우연찮게 교장 선생님께서 출근길에 쓰레기를 주어 든 우리를 보셨다. 등교하자마자 아침 조회 시간에 구령대 위에 올라서서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그저 재미 삼아했던 일들이 우연에 휩싸여 나의 존재감이 뿜 뿜 빛나는 순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초라한 아이가 아닌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안쓰러운 아이였겠지만 살면서 어느 순간이건, 어느 자리에서건 조금이나마 빛났던 순간이 나에게 있다. 화려한 스포라이트를 받는 그런 삶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았던 그런 순간이 나에게 있다.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순간마다 삶의 어려움이 찾아오고, 순간마다 예상치 못한 고난이 찾아오지만 조금이나마 빛나는 순간이 있는 것. 조금이나마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는 것. 누군가의 따뜻한 애정으로 자라날 수 있는 순간이 어느 누구에게든 존재한다. 이런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외롭고 추웠던 날들을 견딜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만약 엄마가 키울 수 없어 외갓집에 보내졌단 사실에만 빠져 내 인생에 선물같이 주어졌던 이 날의 기억들을 잊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엄마를 향한 증오만 가득하지 않았을까?


대상관계 심리학에서는 ‘통합’을 중요한 성숙의 기제로 본다. 통합이란 두 개의 기억, 두 개의 생각, 두 개의 지각을 의미 있게 합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을 적절히 버무리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분열이 주를 이룬다. 배고플 때 젖을 물려주고, 찝찝한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는 아기에게 있어 전적으로 좋은 대상이다. 하지만 잠을 자다가 일어났는데 아무리 울어도 오지 않고, 엄마랑 놀고 싶어 칭얼거리는데 젖을 물리는 엄마는 아기에게 있어 전적으로 나쁜 대상이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아직 아기는 나를 만족시키고, 나를 실망시키기도 한 대상이 같은 대상인지 모른다. 하지만 아기가 자라나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사랑해주는 엄마가, 때로는 나를 좌절시키는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기는 자라면서 엄마가 너무 미운 순간에도 엄마의 따스했던 부분들을 기억해낼 수 있다.


삶이란 그렇다. 전적으로 다 좋을 수도(All Good), 전적으로 다 나쁠 수도(All Bad) 없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꺼내본 나의 화양연화는 그런 의미가 아녔을까? 참혹하고 슬픔이 가득 찼던 그 순간에도, 빛나는 순간이 아름드리 버무려져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삶의 힘든 순간에도 잠잠히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당신에게도 좋았기도 하고 슬펐기도 했던 그날의 기억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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