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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Feb 11. 2021

얕은 관계


  인간관계에는 다양한 깊이가 있다. 오며가며 인사만 하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서로의 밑바닥까지 다 보여준 사이도 있다. 얕은 관계와 깊은 관계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계의 깊이와 무게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관계가 얕을수록 가볍다. 즉 피상적인 관계일수록 형성하기 쉽고 끊기 쉽다는 뜻이다.


  나는 얕은 관계를 두 가지로 정의한다. 접점이 한 개 이하인 관계 또는 반년 내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의 관계. 첫번째는 그 특정한 접점이 아니면 상대방을 만날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두번째는 그만큼 상대방의 근황이 궁금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 기준에 따르면 내가 형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관계는 피상적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나와 정확히 얼마나 친밀한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몇명 없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매번 마주하기는 싫기 때문이다.


  얕은 관계에서 앞으로 가면 더 친해지고 뒤로 가면 그대로 서서히 멀어진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거기서 앞으로 나아가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붙잡지 않으니 모래가 손틈으로 빠져나가듯이 모두 서서히 멀어져갔다. SNS를 하지 않던 시절에 형성한 관계들은 중학교, 고등학교가 달라지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SNS를 꽤나 활발히 하는 지금은 그런 관계들이 몇달에 한 번씩 디엠창에서 한두 마디를 나누는 사이로 전락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씁쓸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쉬워할 거면서 왜 붙잡지 않았느냐고? 자존심의 탈을 쓴 걱정 때문이었다. 붙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내 속마음이 "나랑 더 친해지고 싶으면 자기가 먼저 다가와야지"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쟤는 나랑 친해질 생각이 없으면 어떡하지?"였다는 뜻이다. 나와 멀어진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친구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용기와 끈기의 문제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걸 꺼리지 않는 용기와 귀찮아하지 않는 끈기.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 지금이라도 한번쯤 연락해보세요, 같은 상투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충분히 민망한 일이고, 나라도 그러지 않을 것이며, 붙잡기 귀찮은 사람을 붙잡는 것도 고역이니까. 결론은 꽤나 간단하다. 용기와 끈기가 있다면 그 사람을 붙잡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라는 것. 자존심이든 걱정이든 일단 접어두기로 결정하는 것도, 그걸 접지 않아서 나중에 겪게 될 씁쓸함을 감내하는 것도 모두 자기 몫이다. 우리 인생이 으레 그렇듯이 인간관계 또한 선택의 연속이고 나는 후자를 택해온 것뿐이다. 내가 누군가와 얕은 관계임을 실감할 때마다 마음 한켠이 시리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게 견딜 만한가보다. 지인은 많지만 친구는 적은 게 현대인의 숙명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갈 수밖에.


https://youtu.be/8d20q_dl6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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