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찬밥신세라고 느껴진 적은 없다. 어쩌면 눈치가 장착된 내 성격상 알아서 찬밥 덩어리가 될 것 같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 상황에서 탈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러 누군가를 찬밥신세로 만든 적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이건 확신은 할 수 없다. 내가 의도치 않게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도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리게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난 나름 필요 이상으로 주변을 살피며 사는 성격이다. 나의 삶은 주목받고 기다려줄 수 있는 메인 요리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냉대받는 혹은 찬밥 된, 잔반 처리 대상은 아니었다.
특히나 우리 집에서 난 찬밥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차별을 하시지 않는 편이었고 특히나 엄마는 모성애가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때론 부담스러울 정도로 늘 나에게 따뜻한 갓 새로 한 밥을 주시곤 했다. 그래서 난 남아있는 찬밥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고 삼십여 년을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었고 내가 받는 온기에 별다른 감흥도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남겨진 찬밥을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꽤 오래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갑작스레 홀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찬밥이 내 앞에 놓여졌다. 처음에 나에게 남겨진 찬밥, 남은 밥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씹어 삼키기 어려운 존재였다. 내가 온전히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기 전 단계에 있을 때, 엄마는 병원에 자주 입원하시곤 했다. 예약된 일정의 치료를 받으실 때는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찬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더 철부지 아이처럼 긴 시간을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급작스레 병원에 입원하실 땐 잊혀져 있던 찬밥을 발견하는 건 내 몫이었고 처리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점점 그 횟수는 늘어났고 결국엔 담당자는 나 혼자가 되었다.
아직도 처음 발견한 창가에 놓여있던 쉬려고 하던 랩에 씌워진 밥 덩어리를 잊을 수 없다.
너무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부엌을 정리하는데 창가에 덩그러니 밥 한 공기가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쉬기 직전의 상태였다. 평소의 나라면 당연히 가차 없이 그 밥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니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병원에 있는 엄마가 떠오르면서 이 남겨진 찬밥은 어떨지 알고 싶어 졌고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았지만 손으로 밥 알갱이들을 집어 입에 넣어봤다. 맛이 없다고 표현하기도 힘든 그런 상태였다. 이제껏 내가 마주해보지 못한 그런 덩어리였다. 말라비틀어져 생기 없고 까끌까끌한 누렇게 색 바랜 엄마의 손마디 피부 같았다. 엄마, 엄마 나의 엄마는 이 찬밥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밥을 매번 마주하고 당연스레 먹고 아니, 처리하고 있었던 걸까? 내가, 가족들이 아주 당연하게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찬밥신세로 만들어 버렸던 것일까? 애써 의문형으로 남겨두고 싶지만 아닌 걸 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수많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갑작스레 취소한 저녁밥, 엄마를 기다리고 홀로 남겨지게 했던 기억해낼 수 없는 수많은 밥상이 생각났다. 너무나 소중한 나의 엄마는 쓸쓸히 남겨지고 무시당한 잊혀진 찬밥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몫이라고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오셨겠지. 나름 배려심 있다고 잘난 척 해대던 내가 그녀를 찬밥신세로 만들었다. 아주 긴 시간을. 그 순간도 그녀는 홀로 병원에 남겨져 있었다.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땐 그래도 언제든 차갑고 굳어진 딱딱한 그녀의 손마디를 꺼칠꺼칠한 얼굴을 만질 수 있었다. 눈물이 났지만 나의 감상적인 눈물에도 이미 굳어버린 찬밥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찬밥은 영영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주고 남겨진 찬밥의 새로운 담당은 내가 되었지만 난 결심했다. 난 최대한 찬밥을 만들지도 내가 홀로 담당하지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남겨주지도 않겠다. 그건 그녀로 족하다. 그리고 희망한다. 이젠 내가 무의식 중에서라도 누군가를 찬밥으로 만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