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그림이야기
이번 장에서는 중국의 인물화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더 구체적으로 범주를 나누자면 중국인물화 중에서도 여성인물화로 좁혀보려고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중국인물화의 양이 상당히 방대하다는 것이다. 중국회화의 시작은 인물화와 함께한다. 더불어 각시대마다 수많은 인물화 대가들이 등장을 했다. 각 왕조의 공통된 시대정신과 미적취향이 인물속에 반영되어 나타나기도했지만 동시에 화가 개인적인 사상과 기법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차이성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모 든것들을 이 글안에 온전히 담아내기가 버겁기도하고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작가들의 간략한 설명의 열거로 끝이 날것 같았다. 두번째이유는 여성인물화 즉 사녀화仕女画라고 불리는 중국전통여성인물화는 이미 많은 작품들이 전해져내려오고 있고, 그 작자들이 분명하며 시대의 미녀의 상을 옅볼수있다. 사녀화는 각 왕조의 미적취향의 집결체이자 미의 화신化身이라고 할 만큼 시각적 아름다움 또한 지니고 있다. 이렇듯 사녀화가 각 시대 마다 지니고 있는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어느정도는 중국인물화의 역사를 개괄할수있다고 판단했다.
화가가 분명한 중국 최초의 여성인물화는 위진남북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는 여러 왕조들이 단기간에 흥성하고 멸망하는 과정이 빈번했던 혼란스런 시기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문학과 예술방면에 있어서는 더없는 호황과 이론의 체계적인 성립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문학이론의 발달과 더불어 중국미학의 골자를 이루는 사혁의 ‘육법’이 이 시기에 탄생을 하고, 고개지,육탐미,장승요,조불흥등의 전설의 화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고개지顾恺之는 인물화의 대부로 지금까지도 전해내려오는 ‘전신사조转神写照’라는 미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전신이라함은 인물묘사를 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외형모사에는 그치는 것이아니라 대상의 정신과 내면세계까지도 그림안에 담아내는 경지를 전신사조라 일컫는다. 그리고 더불어 그가 생각하기에 인물의 정신이 담기는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눈’이었다. 눈은 한 인물의 완성의 지점이자, 인격을 대표하는 중요한 지점인것이다.고개지의 그림속의 여성들은 얇은 선묘로 묘사되었다. 희미하지만 형상들은 온전히 형태를 갖추고있다. 색채는 적게 사용되었으며 (아마 시간이 많이 흘러 바랜것으로 보인다) 중앙인물의 치마끝단, 왼쪽 여성들 옷주름등에 살짝 옅보임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보인다. 뒤쪽에 느슨하게 묶어 커다랗고 무게감을 주는 머리모양과, 바닥에 끌릴 정도 길게 늘어진 복장등이 눈에 띈다. 희미한 선묘이지만 그림속 여성들의 표정은 비교적 생동감이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화면속 인물들간의 시선의 교환과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통해 화면 전체에 활기가 돈다.
당나라는 봉건왕조중 가장 번영했던 왕조다. 이 시기에 사녀화 또한 큰 번성을 이루었는데, 대표적인 화가로는 장훤张萱과 주방周防이 있다. 이 시기의 사녀화의 특징은 당시 궁중의 여성들을 주로 그렸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녀화에는 당시대의 미인상들이 반영되어있다. 장훤의 도련도를 살펴보자《捣练图》.이 시기의 여성들은 앞선 위진남북조시대에 비하여 많이 풍만하고 건강미가 넘친다. 여성들의 얼굴은 동그랗고 눈에는 활기가 돈다. 몸짓 또한 자연스럽고 작품에는 서사성이 충만하다.당시 화가들은 어린아이를 그릴때 얼굴은 성인여성과 같이 그리고 몸만 작게 그림으로써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묘사했다. 하지만 장훤에 이르면 신체크기뿐 아니라 얼굴의 묘사또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완전하게 담아냄을 옅볼수있다. 얇으면서도 또렷한 선조로 인물의 윤곽선을 묘사했고, 다양하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림의 질을 높였다. 얼굴에는 백분과 홍조의 뚜렷한 경계가 보이며 이는 얼굴의 입체감을 돋보이게끔한다. 청록,주황,빨강,파랑,갈색,흰색 많은 색채들이 조화롭게 사용되었으며, 각기 선명하게 고유의 색을 발휘하고 있다. 장훤과 주방은 사제관계로 둘다 비슷한 화풍으로 사녀화를 그렸으나, 장훤의 그림속의 인물들은 훨씬 더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로권으로 펼쳐진 구도이지만 그 안의 인물들은 앞뒤,좌우의 거리를 각자 확보함으로써 보이지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공간감을 보여준다.
송나라는 회화 장르의 다양화와 체계화가 이루어진 시기다.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시기였고, 정부의 든든한 지원아래 예술이 체계를 갖춘시기다. 이 시기의 사녀화는 당나라의 화풍을 많은 부분 계승했으나, 제재나 세부묘사에 있어서는 진일보했다. 제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당나라는 주로 궁중의 여성인물들을 위주로 묘사하는 제재의 협소함이 드러났던 반면, 송나라에 이르면 궁중여성들뿐만아니라 여염집 부녀자들 또한 사녀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왕거정의 <방차도>다. 이 작품속 여성은 보통의 농촌여성이다. 작품속 여성들은 비교적 추레한 복장으로 노동에 임하고 있다. 앞선 시기에 비해 더 선명하고 뚜렷한 선묘가 눈에 띈다. 색채는 당나라에 비해 단조롭다. 주목할만한 점은 두 여성의 신체비례가 상당히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무게중심이 살짝 뒤로쏠리는 엉거주춤한 자세도, 작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은 자세 모두 상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해냈다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한다.
명대는 봉건사회정권의 안정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사녀화는 문인화가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발전을 이룬다. 명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은 당인唐寅과 구영仇英을 들 수 있다. 명대에 여성상은 이전 당대 송대에 비하여 유약하고 힘이없게 묘사된다. 당인의 <피리부는사녀도>그림을 살펴보자. 선조는 강약 조절이 조화롭게 잘 나타났다. 담채색으로 화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안정적이다. 비교적 복잡한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의습선의 처리나 전체 형상을 자연스럽게 묘사했다. 명대 사녀 안면묘사의 특징은 이마와 코에 흰색으로 강조를 하여 입체감을 살린 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하얗게 묘사된 이마와 코로 인해 다른 부분들이 오히려 어두워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눈은 작고 입술은 앵두같이 도톰하고 아담하게 표현했다. 달걀형 얼굴에 턱은 지나치게 뾰족하다. 목,손목, 허리, 발목 모두 가늘게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가녀리고 유약하게 묘사되어있다.
청대는 봉건왕조의 마지막 시기다. 이 시기에는 초병정焦秉贞을 대표로하는 궁정화가 집단 외에도, 비단욱 费丹旭같은 문인화가들 또한 사녀화를 많이 그렸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르면 여성은 명대의 사녀화 형상보다 더 무기력하고 연약한 가녀린 여성으로 묘사된다. 더불어 서양화법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인해 원근법과 명암법의 사용이 등장한다. 초병정의 작품을 보면, 르네상스 회화의 뚜렷한 선 원근법이 나타난다. 화가는 대각선 구도를 취했다. 또 건물의 안과 밖에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뚜렷한 공간감을 확보했다. 화면속의 여성들은 모두 가늘고 여리여리하다. 피부는 하얗고 안면 중앙부가 붉으스름한 청나라 전형적인 미인상들로 묘사되어있다.
위진남북조 고개지의 ‘전신사조’를 중시한 사녀화를 시작으로 당나라의 풍만하고 건강한 장훤과 주방의 사녀화 작품, 송나라에 이르면 주제가 더 광범위해지고 회화기법 또한 더 상세해지는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원대에 이르면 사녀화는 잠시 주춤하는 시기를 겪지만 명대에 이르러 다시 문인화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새로운 미인상을 얻게 된다. 유약하고 여리여리한 여인이 당대의 미인상으로 떠올랐다. 청시기에 이르면 이런 미인형이 정형화 되고, 많은 이들이 이를 모본으로 사녀화를 제작한다. 마치 병에 걸린듯한 연약함이 이 시기의 미인의 특징이다. 여기에 서양화법까지 도입되어 기존과는 다른 입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미인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제까지 중국 인물화 중 여인상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여성인물화는 각 시기 마다 뚜렷한 특징들이 반영되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시대의 미인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어 흥미있는 주제로써 부족함이없다고 생각했다. 중국 인물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되고자 하는 마음에 필자가 임의로 고른 주제였기에, 다소 부족한 부분과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樊波 《中国画艺术专史人物卷》江西美术出版社,2008
张良 <浅谈中国仕女画风格的演变> ,石家庄理工职业学院学术研究, 2007
杨苗蕾 <浅谈中国画中仕女形象的演变> 《文艺生活·文艺理论》,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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