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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기자 Oct 24. 2021

느리게 살아도 괜찮아

부암동 산책길을 걸으며 찾은 나의 삶의 의미들...

 부암동 산책길은 나에게 있어 치유의 길이다. 원래도 걷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부암동에 자리 잡고 자주 걸었다. 신혼 때는 일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걷는 산책길이 좋았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자리에는 아기 자기한 갤러리와 커피숍들이 채우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골목길로 접어들 때는 저마다 각각 다르게 지어진 집들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담벼락 사이에 구불구불 펼쳐진 골목길이며, 돌 틈 사이에 핀 작은 꽃들도 저마다 예뻤다. 그렇게 걷다 보면 업무에 사람에 시달렸던 마음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걷는 산책길도 좋았다. 주로 산을 넘어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무무대로 올랐다. 무무대에 서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면 육아를 하며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뾰족한 마음이 올라올 때면 걷고 또 걸으며 그 마음들을 지켜보며 게워낸다. 마음을 떠나보내고 자유를 준다. 그러다 보면 또 하루를 이어갈 에너지가 생기고 평안에 이르고는 했다. 아마,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길과 서울을 내려다볼 탁 트인 전망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본 서울 전경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걷는 산책길도 좋았다. 아이가 잘 있으려나 걱정 한편에 한낮에 이런 자유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얼떨떨하고, 신기해서 마음껏 걷기도 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여름이면 푸른 나무들이 청량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가을이면 떨어지면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즐길 수 있었고, 겨울이면 눈 덮인 산에 차가운 공기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매일매일 걸어도 이상하게 지겹지가 않았다.  


 아이가 커서는 아이와 함께 걷는 산책길도 좋았다. 아이는 어떤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나가는 꽃들, 강아지풀, 돌멩이 등등...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고, 주워서는 엄마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남편에게 저녁 시간이 생기면서 우리 가족이 함께 걷는 산책길은 하루를 마감하는 일과 같은 거였다. 성곽길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것은 잠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을 주기도 했다.   


성곽길에서 내려다본 노을


 매일 그렇게 걷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단단함이 생긴 것 같다. 아등바등 세상의 시선들에 맞춰보려 애쓰며 살던 나를 좀 놓을 수도 있었고, 나와 내 주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좀 주체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주변의 분위기나 평판에 쉽게 흔들리던 내가 신경을 끄고 내 중심만을 볼 수 있는 힘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일상도 자연스러워졌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구나. 내가 나이어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구나 했던 시간이었다.


 아마 부암동이라서 그런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신도시에 사람이 많은 공간이었으면 스스로에게도 아이를 키우는 것에도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사는 공간의 에너지가 개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경험을 몸소 체험하면서 부암동이란 동네가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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