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5월, 드디어 개인 총기 소지가 합법화됐다. 정부를 향한 여론의 거센 비판과 함께 총기 소지 합법화에 반대하는 몇몇 단체들은 거리시위를 진행했다.
조간신문은 연일 총기 소지 합법화로 인한 부작용의 예로 몇 가지 사례를 기사화했다.
그중 다음 두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9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중동. 자신을 작가라고 떠벌리고 다니던 서른세 살 강 모 씨는 악취에 의한 이웃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뒤늦게 죽은 채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강 모 씨는 책상에 엎드린 상태로 부패가 진행 중이었으며 오른손에는 권총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아직 정확한 사건 경위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발견 일로부터 일주일 전 총소리를 들었다는 몇몇 이웃주민들의 일관적인 진술과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강 모 씨의 지인들의 진술을 종합해볼 때 사건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곧 결론이 날 것 같았다.
이상한 점은 오랜 기간 스스로를 작가라 칭했던 강 모 씨의 복원된 노트북에서는 짧은 이야기 하나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강 씨가 유일하게 썼다고 추정되는 이야기의 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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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도 해보았지.
-La Tranquilidad del aburrimiento (이건 몇 해 전 루카의 입에서 우연히 나온 말인데, 멋지다고 칭찬 좀 해줬더니 우쭐해서는 갖다 쓰라고 했지. 귀여운 새끼.)
지겨움에 평온이 깃드는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근데 그게 무슨 말이지?
지겨움과 평온의 관계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표제와는 상관없이 써야 할까? 그냥 지겹게 쓰면 되는 거 아냐? 제목에 충실하게. 일단 제목은 멋있어야지. 그래야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까뮈가 ‘이방인’을 ‘우발적 살인’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면 어땠을까. 사는 게 지겹기도 하고 평온하기도 한데. 이것들에 대해 쓸 말이 없다는 게 웃기지 않아? 아니면 그냥 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볼까? 그거야말로 지겨움의 끝인데. 그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종의 평온함이 찾아올지도 몰라.
아니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능력 밖의 일이야.
이건 어때? 들어봐.
지겨운 기분 속에 평점심이 들어오는 순간 너무 권태로워서 자살을 하는 거야. 총으로.
근데 난 이 위의 문장 뜻을 전혀 모르겠어. 말도 안 되는 문장이야.
그럼 이건 어때?
권총을 손에 든 어떤 남자. 음…
그것보다는 권총을 손에 든 여자가 낫겠다.
곱슬머리 단발에 목이 좀 짧고 동그란 얼굴에 이목구비가 귀엽게 배분되어 있는 여자야.
치마를 입지는 않았을 거야. 치마를 입어도 괜찮겠다. 치마를 입고 가슴이 클까? 뛸 때 아래 위로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려면 가슴은 적당한 게 좋겠다. 그리고 엉덩이는? 남자보다는 여자의 그것이 크니까. 그래, 엉덩이도 적당히 큰 여자.
브래지어를 했을까? 권총을 손에 든 여잔데 브래지어쯤은 안 해도 상관없잖아. 그래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어. 근데 큰 치마를 입었으면 엉덩이가 큰지 작은지 알 수가 없잖아. 약간 낡고 물 빠진 청바지를 입었다고 하자. 몸매가 잘 드러나는 적당히 달라붙는 그런 청바지. 하얀 양말과 단화가 권총을 든 여자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줄 거야. 신발은 검은색보다 밝은 쪽이 좋지 않을까? 빨간색? 아니면 노란색? 아니면 보라색도 좋겠다. 나는 보라색이 좋으니까.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뭐.
보라색 아디다스 단화를 신은 여자가 손에 권총을 들고뛰고 있다.
반팔티셔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고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했어-를 입었어. 적당히 달라붙는. 청바지에 잘 어울리는 색이 뭐가 있을까? 빨간색? 아니, 단순한 색이 좋을 거 같아. 그럼 노란색? 뭐 다른 것 좀 없어? 빨간색 아니면 노란색 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잖아.
그냥 흰색 면티셔츠인데. 아주 하얀색 말고 살짝 누런색이 가미된 허연색. 천이 얇아서 나풀거리지만 동시에 타이트한 그런 면티셔츠. 아메리칸 어패럴에서 싸게 살 수 있는 티셔츠들. 하지만 너무 싼 면은 안돼.
그러면 그냥 브래지어를 하는 편이 좋겠다. 하얀색 면티를 입었으면 젖꼭지가 너무 도드라져 보일텐데니까.
여자는 계속 뛰고 있어. 골목에서 권총을 들고뛰고 있는 거야. 권총을 들고뛰는 여자를 우리나라 골목에서 본 적이 있어?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을 쉽게 볼 수는 없을 거야.
영화에서는?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어.
조금 이상한가? 생각해봐. 이상하잖아. 맞아.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여자가 에코백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뛰는 거야. 그래, 이게 더 자연스럽다.
에코백에 권총이 들어있어. 권총이 들어있는 에코백을 본 적이 있어? 근데 뭐 그것까지 생각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미국에서 구입한 총을 한국에 들어올 때 분해해서 부품을 가방 여기저기에 숨겨서 가지고 들어온 거야. 그리고 집에서 혼자 다시 조립할 수도 있잖아. 아니야 이제 한국에서도 권총 소지가 합법화됐으니 총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아예 다르게 생각해볼까? 그 여자. 어쩌면 여자가 아닐지도 몰라. 외계인?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한 외계인. 아니다. 이건 정말.
아무튼, 그 여자가 뭘 입었던 가슴이 얼마나 크던 엉덩이가 얼마큼 끝내주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자가 지금 달리고 있다는 거야. (곧 일이 벌어질 테니까. 일이 있었으니까 일이 벌어질 거야.)
골목을 달리면서 여자는 하늘을 잠깐 바라볼 거야. 날이 참 좋지. 미세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
좁은 골목에서는 개똥 냄새(아니야. 요즘엔 똥개들이 사라져서 골목에서 개똥 냄새가 나질 않아.)인지 오줌 냄새인지 모를 역한 냄새가 풍기고 있어. 점심시간이라 열린 창문으로 기름에 볶은 양파 냄새도 풍겨 나오지. 여자는 뛰면서 코를 벌름거렸어. 고개를 돌려 창문을 봤지만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아.
소리 지르며 교미에 열중하던 한쌍의 고양이가 여자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좌우로 흩어져 버려. 애석하지.
이상하게도 골목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상하지. 참 이상해.
여자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히고 두 볼은 붉어졌어. 여자의 왼손이 오른쪽 어깨에 걸린 에코백 안으로 들어가. 에코백에서 꺼내 든 건 아까부터 말했던 권총이야.
왼손에 권총을 쥐고 관자놀이를 겨냥할 때도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어.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지. 그리고 관자놀이를 겨냥하고 있는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지고. 탕!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오른쪽 관자놀이와 맞은편 옆머리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여자는 그대로 꼬꾸라질 거야. 하!
스피드 한 죽음이야.
제목을 뭘로 하면 좋을까.’
다음 이야기다.
스무 살 대학생 방모 군은 18일 오후 서울시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과 몸싸움 끝에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이미 주민들에게 권총을 빼앗긴 방 군은 경찰에게 거세게 저항하며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당일 정오께,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던 방 군을 목격한 세탁소 주인은 그가 불안한 모습으로 아파트 건물 어딘가를 올려다보며 수차례 전화통화를 했다고 진술했다. 오후 두 시 무렵 방모 군은 매고 있던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불발이 되었고 그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경비원과 뒤에 합세한 몇몇 주민들에 의해 제압되었다. 이 몸싸움으로 경비원과 주민 한 명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고 한다.
방 군이 매고 있던 가방 안에서 유서로 보이는 글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방 군은 애초부터 권총 자살을 도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방 군의 가방에서 발견된 유서의 원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사랑은 죽음도 이겨내지 못했고 아무것도 견뎌내지 못했다.
나 방 xx는 너 김 xx를 사랑했다.
죽도록 사랑했고 너만 있으면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난 네가 원하는 뭐든 걸 이루어 주려 했다. 네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네가 날 배신할 줄은 난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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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 상관없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추스를 단 며칠도 너는 끝내 거절해버렸구나. 이제 확실히 알았다.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 이제 상관없다.
나는 이 역겨운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하다. 거짓과 기만.
나를 발견할 사람들에게 우선 죄송하단 말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아무런 희망도 빛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더는 살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 김 xx에게 고한다.
이것만 알아줘라. 난 널 정말 죽도록 사랑했다….’
개인 총기 소지 합법화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인간을 죽이는 건 권총이 아닐 수도 있다. 권총은 죽음을 용이하게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 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자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첫 번째 경우 작가는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당장 우울증의 원인을 밝혀낼 수는 없다. 좌절이 그를 오랜 시간 갉아먹었을 수도, 불우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 인간의 절망의 깊이를 단 몇 줄로 이야기하는 건 이미 고인이 된 존재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의 글이 죽음을 이겨냈다면 어쩌면 많은 독자에게 더 좋은 형식으로 읽혔을지도 모르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 경우는 실연에 의한 자살시도로 보인다. 실연은 죽음을 뛰어넘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의 자살시도에 어떤 타당성 혹은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는 것 아니지만 실존이 본질에 앞서게 된 지 한 세기가 가까워가는 지금 ‘어찌 되었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덮어두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본격적인 권총 시대가 도래했다.
다시 말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자문해봐야 할 시기가 우리의 앞에 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오늘 권총 한 자루를 구입하였다. 반짝이는 총구가 내 옆에서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