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오공사 #1
세상엔 충전해야 할게 너무 많다.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무선 이어폰, 노트북 심지어 그것들을 위한 보조배터리까지. 21세기와 맞지 않게 나는 충전을 끝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다. 핸드폰도 빨간불이 들어와야 충전을 한다. 무선 이어폰은 한쪽이 안 들려야 충전을 한다. 그럴 땐 그냥 유선 이어폰을 들고나간다. 심지어 보조배터리는 사본적이 없다. 준비성이 떨어지고 부지런하지 못한 나 자신이 웃기다가도 이런 게 성향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나를 충전시키는 일에도 서툴다. 고된 일을 하고 나서 충분히 쉬어주는 일에 서툴고, 온 마음을 쓰며 사랑을 한 후에도 난 스스로 감정을 괴롭힌다. 후회도 많고, 구질구질한 미련 덩어리라 스스로를 잘 돌보는 편이 못된다. 그러다 진짜 방전이 되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편인데 그 시간이 나에게는 충전인 것이다. 온전히 잠을 자고, 휴대폰을 잠시 덮어두고, 가사가 없는 곡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물론 충전을 한다고 해서 온 우주가 내 편이 되지는 않는다. 보통 그 충전의 마지막엔 '될 대로 되라지' 혹은 '그럴 수도 있지'의 감정이 날 뒤덮는다.
다만 충전이 되고 나면 조금 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다시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직장은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굴러가는지, 왜 당신은 우리 사랑의 크기가 어긋난다고 생각하는지. 사실 아무리 생각해본다고 한들, 사랑한다고 한들 나는 내가 더 애틋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웠던 부부들이 조금 더 날것의 형태로 보인다. '상사도 본인이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직장의 수직구조에 따른 문제점이지 저 사람의 문제가 아니야' 또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에도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의 정도로 볼 수 있지.' 등등 옳고 그름을 벗어난 이해를 시작하게 된다.
옳고 그름을 벗어난 이해는 내가 세상을 살만하게 보는 데에 도움을 주는 제일 선한 지표이다. 싫은데 이유가 없듯, 좋은데 이유를 하나만 델 수 없듯. 세상에는 단정 짓지 못할 수많은 선택과 취향이 있고, 그 취향을 이해하면서 나는 세상을 조금은 힘 빠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 초반. 첫 직장 사수를 엄청나게 싫어한 적이 있다. (프리랜서지만 팀 개념의 직장이 있었다.) 초반에 직장에서 몸을 사리던 시절에 만난 그 사람은 소위 말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지각도 빈번하고, 무엇보다 변명식 거짓말을 하던 사람. 결국엔 처음에 친해져 보려던 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일처리가 바로 되지 않을 때에는 뒤에서 비난도 하게 되었다. 다만 그 사람을 옳고 그름을 벗어난 이해로 보았을 때에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였다. 사람 자체가 미웠다기보다는 그 행동들이 답답했던 거니까. 분명 그가 한 행동이 그른 행동일지라도 나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그 사수 때문에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고, 방전이 되고, 충전을 한 후 결국 나는 그 사수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말했다. 그냥 일처리가 안되면 같이 대표님께 한바탕 깨지고 말자고. 그게 마음이 편하다고,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이 과정이 충전의 순기능이라고 본다. 한 템포 쉬면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우리는 각자 다른 충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때론 기존의 충전 방식에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인생이 이렇게 변덕스러운 것을. 우리는 무한 동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아니기에, 다시 새로운 충전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되었던 당신을 다시 일으켜줄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