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오공사 #3
이번 겨울에 들어 가장 많은 눈이 왔다. 자고 일어나니 불투명한 창밖을 뚫고 하얀빛이 쏟아졌다. 아니 그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깬 것도 같다. 온 세상에 함박눈이 쏟아졌고, 춥고 포근한 모순적인 세상이 만들어진다. 눈이 싫어지면 어른이 된 거라던데, 아직은 아이와 어른 그 사이를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은 반갑고 차가운 결정 덩어리들이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어느 날은 저 놈들이 만들어낼 까맣고 축축한 세상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린날에는 눈이 오면 입에서 자그만 혀를 내밀어 꼭 내리는 눈의 시원함을 맛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비위생적이지만 아무튼 그랬다. 벚꽃나무의 떨어지는 꽃잎을 잡는 것, 처마에서 미끄러지는 빗방울에 손을 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곰곰이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무언가를 잡고 싶은 건 본능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작고 크게 자주 무너지는 존재이기에, 비슷한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붙잡고 싶은 걸까? 천재지변처럼 우리는 가끔은 일에 무너지고, 인간관계에 무너지고, 또 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언가에 무너진다. 그리고 우릴 무너트리는 무언가는 눈처럼 소리 없이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모든 날들은 결국 영원하지 않다. 분명 어느 날엔가 사라져 있다. 마치 하얀 눈이 검은 도로를 만들었다가, 어느 날 보니 언제 눈이 왔냐는 듯 사라지듯이. 다시 깨끗해지 듯이. 세상은 견딜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 중 워스트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무뎌지는 아픔을 보면 맞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견디려 해 본 적도 없고 온전히 아파했고, 무던하지 못했다. 까맣고 질펀한 도로에 온 발이 시리고 축축하게 걷던 날들처럼.
눈송이 하나에, 소나기 한 번에 우리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망할 시절은 눈송이의 가벼운 춤 선, 소나기가 만든 멜로디가 되기도 한다. 마치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처럼. 친구와 다투던 기억도, 선생님께 혼나던 순간도 다 괜찮았던 것만 같다. 아픔도 그리움이 될 수 있고, 사랑도 잊힐 수 있는 게 삶이란 걸 배워간다.
세상은 가끔 장대비처럼 거세게 쏟아지기도 하고, 눈처럼 느리고 고요하게 내려앉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