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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사 May 26. 2022

비효율적인 변덕

주간 오공사 #15

휴일이면 미루던 대청소가 퇴근 후 피로가 최대치로 오를 때에 갑자기 하고 싶었다.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행거에 널브러져 있던 옷 정리를 하고, 책상 위 먼지를 털어내고, 새벽에 청소기는 돌릴 수 없으니 바닥 물걸레질을 하고, 화장실 물때까지 없애니 녹초가 되었다. 나는 이렇듯 상황에 맞지 않게, 효율적이지 않게 몸을 움직일 때가 있다.


무언가 현실을 도피하고 싶나 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서부터, 오늘의 할당량에서부터. 어느 순간 블랙아웃이 되고 장면이 전환되듯. 내 행동과 사고의 주체가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나 보다. 그냥 누워서 널브러지고 싶지만, 그러면 생각이 많아지니까. 또 해야 할 일이 생각나니까 아예 다른 행동을 하라고 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너무 바쁘게 달려왔는데, 내 주변 환경이 엉망이 되었음을 느껴버릴 때. 누가 뺏어갈까 모든 일에 전전긍긍, 꽉쥔 손에 힘이 빠지지 않아 어깨를 타고 전두엽까지 뻐근할 때, 솟아오르는 내 예민함을 모른척하려 할 때 나는 비효율적인 변덕을 부린다. 집을 청소하고, 밥을 잘 차려먹고, 미뤄둔 글을 쓴다. 그것들이 나의 마음을 편안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몸은 움직이고, 손은 팬을 잡는다.


글을 쓰는 일이 후위로 밀린 지 꽤 되었다가, 오랜만에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숨을 못 쉴 듯한 뻑뻑함을 해소하기 위해. 열이 오르게 돌아가는 내 세상의 컨베이어 벨트에 잠깐 점검 시간을 주기 위해. 누군가는 이해 못 할 비효율적인 시간을 쓴다. 한바탕 시간을 낭비하고 나면 머릿속이 비워진다. 그리고 무언가 뚜렷해진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나를 포기하는 . 그만하면 되었다고 나를 내려놓는 . 노력만 하고 아무것도 남은  없는 . 아직  두려움은  심연 깊이 아귀가 되어 똬리를 틀고 있다.  무엇도 내가 해내지 못할 때에 받는 스트레스에 비할  없다. 번지르한 삶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오기와 열등감에게 위협을 느껴 악착같이 따라잡고 있는 .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고  이상을 낮추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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