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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Jul 18. 2021

잿밥의 매력에 더... 푹 빠져 버렸다.

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갈에는 해변이 있다.

동루이스1세 다리와 도우루 강이 있는 포르투에도 해변이 있다.


내가 이렇게 물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포르투에는 도우루 강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척에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멋진 해변이 있었다. 사실 행정구역상으로 포르투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가까이에 해변이 있다.

라고스, 파로 같은 포르투갈의 남부 해변은 서핑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가는 걸로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해변을 찾아가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알바로 시자의 첫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일 게다.

나도 그랬으니까...


도심에 있는 미술관과 음악당은 마지막 날 가보기로 하고 먼 거리에 있는 이 지역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Matosinhos

마토지뉴스(=이렇게 읽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는 법 : 지하철 A라인(블루라인)을 타고 <Mercado역>에 내리면 알바로 시자의 초기 작품인  레카 수영장에 가깝고 <Brito Capelo역>에 내리면 여객선터미널과 <Matosinhos 해변>에 가깝다. 나는 이 동선 전부를 걸어서 다녔지만 지하철역에 내려서 반쯤 타고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었고 참고로 당시 정류장에서 찍은 노선도를 같이 올리지만 현지에서 검색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왼편에 크게 동그라미 쳐 놓은 지역이 오늘 가는 지역


zone C3이고 A라인을 타면 갈 수 있다.



번호 순서대로 걸어서 다녔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포르투갈 태생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가 알바로 시자의 고향이라는 것은 이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초기작이 이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고 그중에 보러 간 일명 레카 수영장 Piscina das Marés 이 유명했던 것이다. 지하철역에 내려서 구글로 길찾기를 시도해보았으나 당시에는 포르투에서 경로 검색이 되질 않아서 나는 무작정 걸어갔다.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도개교인 다리도 건너고 바다 쪽으로 쭉쭉~ 걸어갔더니 모퉁이에 안내센터가 하나 보였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가 보았더니 세상에 이런 팜플렛을 주네!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과 더불어 이 지역에 가 볼 만한 건축물의 목록과 위치까지 표시되어 있던 팜플렛.

오! 세계적인 건축가의 고향은 다르긴 다르구나!!! 직원분은 할머니셨는데 너무나 섬세하고 친절하셨다.

뜻밖의 노다지를 캔 것 같아 열심히 들여다보았는데 시간상 더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았고 예정대로 수영장과 크루즈터미널만 보기로 했다.




먼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 수영장으로 가보자.

알바로 시자의 작품은 포르투에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설계해서 지어진 건물이 여럿 있다.

최근에도 하나가 지어졌으니 진짜 노년까지 왕성한 활동력인 것 같다.




Piscina das Marés

레카 수영장


해변이 굉장히 길었는데 해변가 쪽으로 보행로와 도로가 이어져 있었고 이 건물은 바다 쪽으로 한 단 내려가 있는 형태이다. 지붕과 보행로의 레벨이 같고 건물에는 샤워실, 탈의실, 화장실, 창고, 카페 정도가 있으며 수영장은 그 앞에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보행자 도로에서 내려오면서 진입하게 되는 경사로.

이 날 같은 시간에 어떤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사진 찍는데 자꾸 그 친구가 사진에 걸렸다.

서로 걸렸으니 신경 쓰였을 것.

서로 목례를 하고 잠깐 인사를 나누었는데 본인은 볼리비아에서 온 건축과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사진도 엄청 열심히 찍고 스케치도 중간중간 열심히 하고 진짜 어느 한 군데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을 보고 나는 자리를 피해 주었다.

내가 사진 찍을 때도 자꾸 걸리는데 그 친구 사진에 내가 얼마나 걸리겠어.

나야 이 나이에 건물 좀 더 본다고 설계가 갑자기 잘해지는 것고 아니고 없던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런 욕심도 없으니 미래의 건축가인 그 친구를 위해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이 사진에 살짝 걸려있는 친구가 그 친구... 이 친구는 내가 얼마나 거슬렸을까!^^


커피 한 잔 먼저 마시고 얼른 재료 위주로만 좀 둘러보았다. 아 참! 저 밑에 보이는 콘크리트 부분이 수영장 부분인데 이때가 10월인 관계로 물이 차 있질 않았다. 일부분만 콘크리트이고 나머지는 지형과 바위를 이용해서 물을 채워서 사용하는 말 그대로 바다에 인접한 수영장이다.




<세랄베스 미술관>에서도 느꼈지만 범상치 않았던 선과 선의 만남.

내 생각에 알바로 시자 건물의 매력은 이 부분인 것 같다. 선과 선,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 절대 아무 생각 없이 만나지 않는 접점. 전공자가 아니어도 어느 공간이 좋아 보인다면 이런 접점이 되는 부분들을 주의 깊게 보면 좋을 듯하다. 그런 만남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입체감도 한 번 느껴보고. 

그리고 그 면과 면위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함께 본다면 보는 눈이 계속 늘어날 것 같다.




매우 거친 콘크리트 표면이 눈에 띄었다. 너무 거칠어서 아니 처음부터 그런 건지 바닷바람에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으나 철근과 자갈이 그대로 드러난 표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자갈은 의도된 듯하고 철근의 노출은 설마 의도된 게 아니었겠지.




건물은 그렇게 설렁설렁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은 바로 옆에 있던 아주 조그만 해변이었다.

건물을 떠나려고 하는데 그 조그만 해변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천 하나 깔고 누워서 책을 보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발 한번 담가 보자 하고 바닷물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살랑살랑 잔잔한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 내 발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진짜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서서 시간을 보냈다. 저 멀리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덕분에 바지도 다 젖고!

그야말로 이게 힐링이 아닌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서 얼른 정신을 차리고 유람선 터미널로 향했다.




유람선 터미널은 음..... 거리가 꽤 멀었는데 버스가 있는 것 같아 기다려 보았다가 오질 않아서 다시 걸어갔다. 왔던 길을 다시 가서 거기서부터 또 걸어갔다. 이 지역의 번화가를 혼자 걸어가는데 여기는 레알 현지 마을이다. 관광객은 하나도 안 보이고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이런 지역을 건물 사진 한 장 보고 찾아가는 내 모습이 너무 무모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혼자 헛웃음이 나왔다. 엄청 걸어서 드디어 유람선 터미널쪽으로 갔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 터미널에서 멀리에 있는 철창이 굳게 닫혀 있다. 이렇게 힘들게 찾아왔는데 못 보고 가는 것인가. 할 수 없이 해변 쪽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안내센터가 있더라.

이 날따라 영어가 왜 그리 잘 되었는지 터미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까 일요일에만 오픈을 한다고 하네...ㅠ.ㅠ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이 정보는 당시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거든! 내가 거기까지는 운이 없었나 보다. 가봤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나중에 사진들을 찾아보고 더 아쉬웠다.

실망감을 안은 채 안내센터에서 주는 팜플렛을 받고 일단 최대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려고 해변가로 향했다.

 



Terminal de Cruzeiros do Porto de Leixões

포르투 유람선 터미널


이렇게 생긴 터미널인데 사진으로 보면 멋진 공간들이 정말 많다. 게다가 외장재가 콘크리트인 줄 알았는데 아주 작은 타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가까이서 봤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아쉬운 대로 아키데일리 주소 링크

https://www.archdaily.com/779868/porto-cruise-terminal-luis-pedro-silva-arquitecto


저기 보이네... 너무 아쉬우니까 최대한 가까이 가본다. 내가 갈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발이 잠기는 정도로만!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음...... 그런데 이 해변 심상치가 않다. 사람들도 많고 엄청나게 넓고 길다. 10월인데도 서핑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찾아봤더니 서핑하기 좋은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랜다. 나는 이왕 온 김에 일몰 모습을 담고 가고 싶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을 보내려고 엄청나게 긴 해변을 본격적으로 신발을 벗고 걷기 시작했다.

발등 위의 찰랑찰랑 물이 닿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내가 이렇게 바다를 좋아했던가?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지.

내가 걸어본 바닷가 중에 단연 최고였다.



Rotunda da Anémona 요런 유명한 작품도 있다.





해변의 풍경이 점점 더 멋스러워지고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노는 애기들, 파도 타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친구끼리 연인끼리 걷고 있는 사람들. 혼자 조금은 쓸쓸했다. 모래사장에 누워도 보고 다시 걷다가 점점 지는 해을 맞이한다. 생각보다 별다른 풍경은 아니었지만 일몰을 기다리느라 이곳에 있었던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염불보다 잿밥의 매력에 더 푹 빠져 버린 것이다.

보고 싶던 건물 하나 보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 어떤 날보다 충만하게 하루를 보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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