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파리 Jul 22. 2021

세상에 이런 건축주 또 없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드러내지 않는다.

2~3년 전부터 나도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며 집을 비워 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평소에 물건을 잘 안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비워도 비워도 계속 나오는 짐들을 보며 반성을 했고

그렇게 '버리기'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보기 시작했더니 계속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영상들이 알고리즘으로 떴다. 처음엔 흥미로웠으나 보면 볼수록 많은 영상들이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침구를 정리하며 시작하는 아침...

나풀거리는 커튼을 열어젖히면 따스한 햇빛이 거실을 비추고

하얗고 이쁜 청소기를 밀면서 청소를 하고

또 하얗고 이쁜 물조리개로 화분에 물을 주고 나면

화병에 꽃이 한 송이 꽂혀 있는 깔끔한 테이블에서 직접 갈아 만든 원두커피나 캡슐커피를 내려서

예쁘게 세팅된 소량의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친환경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고 상부장이 없는 깔끔한 주방의 모습으로 끝나는 영상들"


메모를 한다.

일단 저런 집이 있어야겠고

그리고 저렇게 하얗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주방이 있어야겠고

또 저렇게 하얗고 이쁜 가전제품들이 있어야겠고

대품 정도 되는 화분도 하나 있어야겠고

...

솔직히 부러웠다. 미니멀 라이프보다 저런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억눌린 질투심으로 미니멀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들을 자꾸 찾아내는 못된 심보가 발동했다.

자꾸만 본질보다 다른 것들이 눈에 보였다.


(물론 도움을 받았던 영상들도 많다. 사족으로 하나만 소개하자면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어떤 60대 유튜버의 이야기였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이가 들면 더 비워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주셨다.

자기에게 소중한 물건은 자기가 버리라고...!

나의 물건들이 자식에게 짐이 되고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나씩 꺼내 보며 추억도 함께 정리하고 나이가 들수록 내 주변과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자는 의미였다.

나는 이 말에 그만 펑펑 울어 버리고 말았다.

엄마를 보내 드리고 나서 부모님의 오랜 살림집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기도 했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알겠으니 말이다.)


앞의 못된 심보가 발동했던 그 비슷한 미니멀 라이프 영상들을 볼 때면 나는 자주 그분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비움과 환경문제에 있어서 단연코 길잡이가 되시는 한 분이 계시다.

정말 집에 물건이란 게 없는 분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그분의 집에는 없다.

예를 들면 '발매트' '주방장갑' 같은 것들이다.

물건 구입을 자제하는 게 아니라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고 본인은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으신 것이다.

한 번은 그분의 집에 놀러 갔는데 좋은 미역을 챙겨주신다며 손수건으로 미역을 싸 주신다.

그렇다. 그 집에는 비닐이 한 장도 없다. 휴지도 없다.

옷은 계절별로 두 벌씩만 남겨 두어서 옷장이 텅 비어 있고

(물론 본인의 옷은 손빨래를 하신다.)

책은 정확히 3권만 남겨 두고 다 기부하셨다.

농담으로 요즘에 전기는 핸드폰을 충전할 때만 쓰시겠어요! 했더니

안 그래도 그 전기를 쓰는 게 싫어서 아침에 태양광으로 충전이 되는 전지를 햇빛에 놔두고 나갔다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 전지로 핸드폰을 충전하신단다.

그리고, 주방에서 해 먹을 게 있으면 최대한 해가 떠 있을 때 하신다고...


농담을 던졌다가 농구공으로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놀랄만한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지만 더 이상 이야기하면 너무 기인으로 보일까 봐 그만 멈춰야겠다.


그런데 이런 분이 지리산 북사면 앞자락에 본인의 집을 짓겠다고 찾아오셨다.

우리가 처음에 인연을 맺었던 그 동네. 나는 한달음에 같이 현장을 다녀왔다.


지금 살고 있는 중소도시의 아주 작은 아파트를 팔아 원룸에서 지내시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넉넉지 않은 금액의 공사비였다.

그래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집의 설계를 맡기는데 원하시는 건 딱 두 가지였다.

방은 3개 그리고 평수는 20평이면 된다고! 원하는 건 정말 딱 이 두 가지였다.


건축사이기는 하지만 내 설계라고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는 나는 바로 열심히 영혼을 갈아 넣어서 설계를 했다. 아이디어는 다행히 금세 나왔다.


그분의 가치관과 가족의 삶을 알기에 아이디어를 내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바깥 활동이 많은 시골집의 생활상도 고려하고

모든 공간에서 맞통풍이 가능하게 하고

공사비가 저렴하도록 직사각형의 아주 타이트한 방 3개가 있는 20평짜리 남향집을 설계했다. 

다음번 만났을 때 설계안을 보여드렸더니 굉장히 흡족해하셨다.

그 집은 그렇게 단 한 번의 설계와 미팅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것은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설계과정이다.

보통은 처음에 설계를 맡기실 때 저희는 소박하게 30평으로 짓고 싶어요! 라고 시작을 해도 결국에는 45평짜리 집이 되어 있거든.

"보조주방이 있어야 하고요 다용도실도 좀 커야 하고요 게스트룸은 별채로 있으면 좋겠어요.

화장실은 건식으로 구분되면 좋겠고 이건 드레스룸이 너무 작네요... 수납공간도 더 많아야 하는데!"

원하는 것을 계속 구체화하다 보면 30평은 늘 45평이 되곤 한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게다가 평생 모은 돈으로 처음으로 짓는 집인데 여러 번 바뀌고 확장되고 하는 것이 절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집은 정말 20평으로 시작해서 20평으로 끝났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된 날 한 가지 더 신신당부 부탁을 하셨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본인한테 제발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고...!


네???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고요? 앞으로 평생 살 집을 짓는 건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니요?

_사실 이건 긍정적인 의미의 놀람이 아니다. 내가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본인이 평생 살 집을 짓는 건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니... 봐도 봐도 참 이런 분이 있다니 신기함에서 나오는 놀람이었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시키는 대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거의 모든 부분을 현장 사람들과 내가 의논해서 결정했고 마감에 대한 부분도 거의 내가 다 결정해서 시공을 하였다.

마지막에 완공될 즈음 딱 한번 질문을 던졌다.

화장실 타일 파란색으로 해도 되냐고.

역시나 된다고......(괜히 물어봤...)


저 돌담을 쌓을 때는 나도 같이 작업을 했다. 마당 레벨 고르는 작업도 내가 했지^^


그렇게 집이 다 지어졌다.

중간중간 현장과 상의 끝에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었지만 거의 처음 설계한 그대로 지어졌다.

그분은 집이 다 지어졌을 때 설계안을 받았을 때보다 더 흡족해하셨다.


이사를 들어가신 후에 가끔 잘 지내시냐고 물어보면 집이 정말 너무 좋다고 매번 고맙다고 말씀을 하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단열(우리 현장분들이 가장 신경 쓰는)이 잘 되어서 너무 좋고

창문만 열어 놓으면 맞바람이 부는 게 너무 좋고

공간이 부족해서 작게 만들어놓은 제3의 방도 좋고

어디까지 빼야 그늘이 적당한지 고민 고민해서 만든 툇마루도 너무 좋고

뒷집과 주변 시야에 방해 안되도록 만들어놓은 창문 위치도 너무 좋고

정말 모든 게 마음에 드신다고!!!

(음......생각보다 굉장히 디테일하셔!)


그래... 이번엔 내가 쫌 설계를 잘했지!^^ 라고 으쓱하고 싶었으나

그분의 가치관이나 인품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공사 과정 중에 주변인과 생긴 문제도 본인이 손해를 다 감수하며 해결을 하였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초반에 정말 다 내려놓으시고 욕심 없이 결정한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그 결정으로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은 땅을 받았다. 이런 게 바로 착한 사람이 복.받.는.거 아닌가 싶다.)

가구랑 외부공사까지 하느라 조금 초과된 공사비도 어려운 살림에 대출을 더 받아 남은 공사비를 치렀고 어느 누구에게도 잘잘못을 따지지 않으셨다.

내 집같이 집을 잘 지어주신 현장분들에게도 잊지 않고 항상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건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우리 이사님이 이 분의 삶에 감명받아서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집을 지으셨는지! 툇마루에는 진짜 영혼을 갈아 넣으셨고 덩달아 목수님들도 가구로 거의 작품을 만드셨다. 이런 게 공사비 초과에 한몫을 하긴 했지만...ㅠ.ㅠ)

이런 분이니 그냥 모든 게 감사하신 거지. 나에게도!

설계에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절대로 원망이란 걸 하지 않는 분이시지.


이 현장에 참여한 모두가 마치 집주인의 성품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었다. 글을 쓰기 위해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못한 게 많을 만큼 나는 현장에 내려가는 날이 설레었고 내려가 있는 동안 행복해했다.

아마도 나에게는 이 집이 앞으로도 인생 최고의 현장이 될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디자인은 하고 싶은 대로 되지가 않았고 마을에서 튀지 않으려고 소박하고 소담스럽게 지은 시골집이지만 나중에 혹시나 내가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집을 설계하게 되더라도 아마도 이 집이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 될 것만 같다.


ps. 글을 다 적고 나니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좋은 건축주가 되어야 좋은 집이 지어진다는 의미에서 쓴 글이 아니라 살면서 참 본받을 부분이 많은 지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5살 나의 아들은 건설현장 노동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