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5
흔히 사용하는 단어 의사소통(意思疏通)의 뜻을 풀이해봅시다. '의사(意思)'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견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소통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그나마 원활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오로지 현실에서만 적용되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온라인에서의 의사소통은 순수 해석이 무색할 만큼 막혀 있습니다. 잘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각종 오해와 편견이 가득합니다. 이 때문에 선의를 담은 내용보다 악의적인 게 훨씬 많습니다. 선플보다 악플이 4배 더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우리나라 인터넷 세상에는 날 선 내용이 많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악의적 산물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저항력이 약한 이들은 쉽사리 여기에 물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일부는 이 흐름에 동조·호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문, 라디오 등 미디어가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매체가 주는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이론은 '탄환 이론(bullet theory)'입니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대상을 즉시 파괴해버리는 것처럼 미디어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이죠. 미디어를 통해 획일화된 의견을 만들 수 있으며, 단번에 대다수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이론의 설명입니다.
히틀러가 그 많은 독일인을 선동해 유태인을 학살한 게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그가 해왔던 행동들은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능력만을 봤을 때 그는 탁월한 선동가였습니다.
그는 연설과 미디어를 최대치로 활용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을 현혹시키고, 그들에게 특정 프레임을 씌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이를 해냈습니다. 국민 전체에게 한 민족을 경멸하도록 세뇌시켰습니다.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물론 탄환 이론이 설명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는 이론도 등장했지만 미디어는 분명 대중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고는 이런 영향을 활용한 미디어 장치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의도를 전하고자 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광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염증을 느낄 만큼 거대한 광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거리거리마다 광고판이 가득하고, 길거리에는 전단지가 난잡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방송사들은 중간광고를 도입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한 편을 보더라도 시청자가 광고에 노출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동영상 한 편을 보더라도 의무적으로 광고를 봐야 합니다.
이렇게 광고가 계속되는 이유는 반복 노출이 수용자에게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광고의 핵심인 반복 노출은 학자들의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된 탁월한 선전 기법 중 하나입니다.
반복 노출은 '누구나 대상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자주 접하게 되면 호감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자주 보면 정이 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효과라 할 수 있죠.
폴란드 출신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자욘스(Robert Zajonc)는 단순한 노출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실험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어릴 적 나치의 침공을 받아서였을까요? 그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노출과 심리의 연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욘스는 피실험자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 터키어를 발음하게끔 했습니다. 어떤 단어는 더 자주, 또 다른 단어는 빈도수를 줄여 반복시켰습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자주 노출된 발음에 호감을 드러냈습니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자욘스는 "자극에 대한 반복되는 노출은 그 자극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이끌어 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성적인 비판의식을 겸비한 채 특정 자극에 반복 노출됐을 때 그 영향력은 미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방에서 정보가 쏟아지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비인격적인 단어 'ㄱ'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처음 접속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처음에는 분명 거북스러울 겁니다. 부정적인 단어를 대면했을 때 기분 좋을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ㄱ'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이를 그 의도에 걸맞게 맹폭하는 데에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격 대상을 희화화하면서 쓰는 이용자도 있을 겁니다. 이렇듯 다양하게 활용되는 단어를 보다 보면 경계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 게시물을 보다가 실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 사람은 'ㄱ'에 익숙해져 갑니다.
익숙해진 'ㄱ'은 일상에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ㄱ' 속에 잠재돼있던 그릇된 가치관이 스며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억측이나 허황된 소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현상입니다. 유사한 연구를 하나 더 살펴볼까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동조, 복종에 관한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한 실험 중 많이 알려진 건 '하늘 바라보기' 실험입니다.
도심 한 복판 횡단보도에서 많은 사람이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인파 중 사전에 계획된 3명이 하늘을 바라봅니다. 갑자기 이들은 하늘에 뭔가 떠 있는 것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먼 곳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3명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국내 방송에서도 이를 실험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거대한 변화는 어려울 수 있지만, 간단한 자극을 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처럼 생각과는 다르게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선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단 2~3명만으로도 대다수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염된 단어들로 이뤄진 악플, 그리고 부정적인 의도가 가득한 신조어들. 누가 만들어 배포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출처 불분명한 커뮤니케이션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행동과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아직 가치관 정립이 채 되지 않은 청소년들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청소년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래집단 내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할 만한 단어들을 매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창 달아오른 학폭 릴레이가 결코 이 현상과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겁니다.
가치관 붕괴 이전의 문제도 있습니다. 신조어, 줄임말 등을 비판의식 없이 그저 재미로 쓰는 만큼 순수한 언어 능력마저 저하되고 있습니다. 기초적인 학습에 장애가 생길 만큼 온라인 언어에 익숙해져 버린 겁니다.
EBS에서 이를 조명한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과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단어(학습도구어)를 중점으로 어휘력 평가를 실행했는데, 스스로 교과서를 학습할 수 있는 학생 비율이 단 9%에 그쳤습니다. 날짜를 표현하는 기본적 단어인 '사흘', '글피'조차 낯설어했습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온라인 언어에 얼마만큼 노출돼있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마냥 긍정적인 요소로만 가득하다면 우리가 우려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결코 깨끗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미 몸소 겪고 있듯이 말이죠. 어른들조차 부정적인 영향력에 휩쓸리는 상황인데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떨까요? 이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려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