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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종영 Mar 23. 2021

악플러와의 전쟁, 지금이 적기(適期)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

지금까지 언급한 근거들 이외에도 악플과 이를 생산해내는 악플러를 뿌리 뽑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피해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진실'만큼 중요한 이유는 없습니다. 내일의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는 시대적 당위성이 우리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성 상실의 극단적 사례, 사자명예훼손


악플과 오염된 가치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이들, 그들은 인간성이 결여됐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범죄를 저지르곤 합니다. 이 행위가 얼마나 파렴치한지 알지 못한 채 말이죠. 그들에겐 이것이 그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피해자가 등장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익명의 압박으로 인해 숨조차 쉬기 버거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까지도 악플러들의 타깃이 되곤 합니다. '사자명예훼손'은 극단적으로 치닫은 악플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사자명예훼손이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형벌 중 극악무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뒤에 큰 죄가 밝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묘를 파헤쳐 시체를 훼손했던 형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벌한다는 목적을 제외한다면, 반인륜적인 행태라는 점에서 둘은 유사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이 사자명예훼손이 부각됐습니다. 최악의 인재(人災)로 불렸던 세월호 침몰 당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비아냥거리며 조롱한 악플러들이 있었습니다. 조롱과 동시에 등장한 유행어는 일부 커뮤니티에서 삽시간에 번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를 즐기던 누리꾼 중 상당수는 동년배인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도덕성 결여, 인간성 상실 그 어느 것으로도 쉽사리 정의 내리기 어려운 기이한 현상입니다. 수년 전에 대중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일이지만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사자명예훼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악플로 인해 세상을 등진 이들은 아직까지도 악플러들의 타깃으로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려 할 때마다 고인(故人)의 이름이 언급되곤 합니다. 악플러들은 지치지도 않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부정적 언어들을 난사하고 있습니다.


괄목할 변화는 없었지만, 기회는 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 세월호 참사도 무려 7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자명예훼손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 당시에도 악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었습니다. 아쉽게도 변화는 없었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보다 나아진 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되기만 했죠.


과거보다 악랄한 단어들이 즐비하며, 수많은 범죄 시도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붕괴를 맞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희망의 빛줄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이 빛을 따라 모두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 변화는 우리에게 더욱 안락한 삶을 선사할 것이며, 삶의 질도 높여줄 겁니다.


특별편이나 논의 중간중간 언급했던 '신호'들을 놓치면 안 됩니다. 기회는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한 번 다가온 기회를 저버린다면 그다음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기류를 타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의 댓글창 폐쇄.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반작용이 더 컸지만, 악플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당장 탁월한 대안은 없더라도,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는 걸 우리 모두에게 알린 겁니다. 


그 이후에 국내 대표 IT 기업 중 하나인 카카오가 천명한 혐오발언과의 전쟁. 우리 사회 도처에 집단, 가치, 인종 등에 근거한 혐오가 존재함을 각인시켰습니다. 더 이상의 분열과 반목, 갈등을 좌시한다면 이 사회가 악화일로를 걷게 될 거라는 걸 암시한 겁니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힘겨워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악플로부터 지켜달라고, 악플러를 온라인 공간에서 추방시켜달라고.


한 사람의 큰 노력보다는 모두의 '아주 작은' 동의가 필요한 때


연재 시작부터 강조해왔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 병세는 누구 하나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장애물이 아닙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도, 혹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도 바꿀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당면한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거기에 아주 조금의 관심을 보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심각한 범죄라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해결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노인 우공이 산을 옮기려 했던 그만큼의 각오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만 하면 됩니다. 한 번쯤 고민하고, 그 고민에 걸맞은 행동을 하면 될 뿐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오피니언 리더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평범한 시민은 평범한 시민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일을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제안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 챕터에서는 악플 문제와 관련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행동으로 옮겨줬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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