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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Oct 06. 2021

안 변할 것 같은 아이가 변하는 방법

내 아이를 부르는 축복의 이름

부르는 이름이 그 사람이 된다

"장희빈."

엄마가 어렸을  (커서도 종종) 나를 불렀던 이름이다. 천성적으로 경쟁적인 면이 있기도 하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그것이 샘이 많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그렇게 불려졌다. 인현왕후 같은 동생에게 무언가를 흔쾌히 나눠주지 않았을 .  것을 먼저 챙겼을 . 장난인  장난 아닌 "하여튼 우리  장희빈이라니까"라는 말은 나에게 주홍글씨 같은 딱지를 남겼다. 그렇게 표독스럽고 질투 많은 여자가 나라니. 농담일 테니 웃어 보였지만 매번  이름을 들을 때마다  뿌리가 남았다.   집에만 오면 장희빈으로 불리는지  억울하기도 했으나 그럴만하니 그렇게 불리지 싶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좋은 마음이  때도 오히려  그러면 안될  같은 마음조차 들었다. 되려 밖에 있으면 편안한데 집에만 들어오면 "장희빈"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행동이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하니 이름이 가진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나는 "장희빈"같이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 나는 사실 좋은 아이라는 . 나는 무엇이든 시간을 들여 충분히 잠겨 누리고 싶어 했던 아이이고 그것이 충족되었을  누구보다 풍성히 나누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서른이 훌쩍 넘은 어른이 되어서나 알게 되었다. 그건 부모나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어서가 아니었다. 매일 반복된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 당신은 저를 어떻게 보세요?"




오랜 시간 "장희빈"이라는 별명(?)이 준 거짓의 족쇄에 매여 있다 자유 해지는 과정 중에 있다 보니 나 또한 내 아이들을 부를 때 어떻게 부르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둘째는 예민하고 짜증이 많았다. 좋은 건 미치게 좋고, 싫은 건 죽어도 싫어했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이 아이의 페이스에 휘말려 짜증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빠지기 십상이었다. 아이에게 어떤 특정한 이름이나 별명을 대놓고 부른 건 아니었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소근소근 하는 말들을 아이는 늘 귀를 쫑긋 세워 듣고 있었다.


"얘는 왜 이렇게 예민한지 모르겠어."

"먹기는 또 얼마나 안 먹는지, 내 피가 다 마를 지경이야."

"껌딱지잖아, 엄마 껌딱지."


그러다 아이는 나에게 지나가듯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엄마, 나는 안 먹고 짜증이 많은 애지? 그래서 내가 작은 가봐."
"난 혼자서는 못하는 애잖아."


자신에겐 우주와도 같은 엄마가 자신에 대해 내린 정의. "예민한 애. 작은 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애." 아이는 이런 정의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 그 어떤 저항도 없이 -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나를 그렇게 부르니, 그럼 그게 나인가 보다'하는 거였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그제야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아이를 어떻게 보세요?"




둘째를 임신한 걸 알게 되기 전 어느 날 밤,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다. 어찌나 생생한지 아직도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꿈속에서 맡은 향기까지 기억날 정도다. 꿈에서 나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처럼 온 세상이 공기마저 꽝꽝 얼어버린 듯한 시리고 추운 한겨울의 눈폭풍 속에 서있었다. 살을 저미는 칼바람이 불고 양 길가에 쌓인 눈더미는 성벽처럼 높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눈들이 단번에 사르르 녹더니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들이 초스피드로 쑥쑥쑥 자라서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일순간 만발한 꽃들과 나비들, 지저귀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아주 생명력 넘치는 봄이 된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이 모든 광경이 어리둥절하면서도 그 따뜻한 온기와 빛과 생명력에 압도되었다.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태몽이란 걸 알았다. 마침 읽고 있던 이사야서에 나오는 포로 된 나라의 해방. 어둡던 땅이 밝아오며,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는 날.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며,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이 다시 흘러오는 그 시온성의 회복의 모습과 내가 꿨던 꿈의 장면이 너무나 흡사해서 나는 그 꿈을 붙들고 아이의 이름을 '시온'으로 지었다. 이 아이의 탄생과 함께 메마르고 매여있던 우리 가정의 삶에 그 회복이 도래하길 소망함으로.


하지만 아기 시온이를 낳고 키우는 시간은 그 꿈처럼 향기롭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엄마 이전에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도 잘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오롯이 나의 경력과 실적으로만 스스로를 증명해 내려던 우격다짐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설익은 엄마 노릇까지 하려니 당연히 무엇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경력단절이 되고 뒤쳐질까 봐 두려워 연구실을 계속 나가면서도 아이들 또한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가중되었다. 내 향방 없는 욕망을 쫓느라 나 대신 아기 봐주실 분을 급하게 구했지만, 불행히도 그분은 매정하고 차가운 분이셨고 그분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로 인해 아기 시온의 분리불안과 밥을 안 먹는 패턴은 심화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라는 자책과 실패감이 오랜 시간 나를 짓눌렀다. 내 입에선 "너무 힘들어. 못하겠어. 쟤는 왜 저러지? 난 나쁜 엄만가 봐"라는 절망과 원망의 언어가 더 먼저 튀어나오기 다반사였다. 나도 모르게 지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넌 대체 누구니.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하니.'라고 불안과 두려움의 언어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정확한 음성이 내 마음 한가운데에 날아와 꽂혔다.


"시온이는 Game Changer야."


게임 체인져.

어느 스포츠 시합이나 게임을 봐도, 경기가 지고 있을 때 어느 한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고는 하는데, 그 전세를 역전시키는 선수를 '게임 체인져'라고 부른다.


경기의 공기.

그 흐름.

그 atmosphere를 바꾸는 사람.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사람.

전세를 뒤집는 사람.


"Wherever he goes, he will shift the atmosphere into my presence"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가 속한 모든 곳의 분위기를 나의 임재 속으로 전환시킬 거야."


나의 생각과 마음과 뜻에는 전혀 없었던. 전혀 몰랐던 그 아이의 진짜 정체성에 대해 알려주시며 내 불평의 입술을 막으신 순간이었다. 내 아이가 그런 아이란다. 그런 큰 용사란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부르란다.


그 후로도 아이가 당장은 변한 게 없어 보였지만, 내가 보지 못했던 아이의 진짜 정체성을 알게 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아주 조금씩. 미세한 각도의 변화가 관찰되었다. 엄청난 껌딱지와 불안증이 한순간에 사라진건 아니었지만, 아이를 볼 때마다 진을 빼는 어려운 아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를 역전시키는 게임 체인져로 대하기 시작했더니 오히려 변화는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났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한 꺼풀 걷히는 느낌. 아이를 바라보는 렌즈가 바뀐 느낌이었다. 저렇게 껌딱지가 사람 구실은 할까. 앞으로 학교는 제대로 다닐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마치 잘못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끊임없이 아이를 살피고 스스로를 쥐어짜며 자책하던 나의 모습에서, 아이를 큰 용사로 바라보는 눈으로 시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 더 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혼자 스스로 해내게 하고 작은 승리를 맛보도록 격려하는 내 모습 속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밖으로 보이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비슷했을지 몰라도, 그 행동의 동기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육아책에서 그렇게 하랬으니까, 오은영 박사님이 그렇게 하랬으니까 변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진짜 내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믿어져서 할 수 있는" 그런 육아가 되었다. 답을 알기 때문에 담대해질 수 있는 육아 말이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자책감이 아이의 운명을 막지 않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내 육아의 터닝포인트가 되고 있다. '넌 누구니?' 하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근 마흔 살이 되도록 머뭇거리며 하지 못했던 대답을 아들은 활짝 웃으면서 한다. '난 게임 체인져예요!'



올해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등교 첫날 과연 이 아이가 울지 않고 잘 들어갈 것인지 반신반의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쳐다봤건만, 이 아이는 "엄마, 나 스쿨버스 타고 집에 갈 거니까 데리러 오지 마"라며 쿨내 진동하는 모습으로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학교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그 나이 먹고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건 우리 아들의 옛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시온은 전세를 뒤집고 시류를 바꾸는 아이가 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아직 그 아이가 보지 못하는 본모습을 계속 바라봐주고 말해주는 일. 그리고 믿어주는 일일 테다.




아이의 진짜 정체성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 또한 첫 번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

'하나님, 당신은 저를 어떻게 보세요?'


"너는 장희빈이 아니야.

너는 사랑하는 내 딸.

내 작은 씨앗. 내 귀한 종자.

내 나무. 내 동산의 시작.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단다.

내 안에 있는 너에게는 두려움이 없어.

네 스스로 강한 뿌리를 내리려고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의 뿌리란다.


그리고 있잖아

너는 정말 좋은 엄마야. 진짜 좋은 엄마.

너라서 그 아이들을 맡긴 거야.

고맙다."



그게 나라고 하신다. 그게 나다.

그렇게 되려고,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러한 나의 모습을 취하고 누리며, 살아야겠다.



• Soli Deo Gl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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