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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Jul 17. 2021

진실과 거짓 사이의 육아

선택은 나의 몫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 기를 쓰고 열심히 달려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그 뜀박질의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소스라쳐 멈칫할 때가 있다. 목표가 있어서, 꿈이 있어서, 재미가 있어서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우리의 쉼 없는 뜀박질의 가장 강력한 엔진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이다. 남들도 다 하니까. 이 시기에 이만큼은 해야 하니까.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닐까? 내가 더 해줘야 하는데. 더 챙겨줘야 하는데. 더 막아줘야 하는데. 더 밀어줘야 하는데. 숨 쉴 수 있는 한계치보다 더 높은 곳에 보이지 않는 기준점을 세워 넣고 숨을 헐떡인다. 나 때문에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불안해서. 아니, 사실은 내가 그 모습을 인정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불안은 나의 힘?

우리 안에는 다양히도 슬픈 엄마의 모습들이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까지 고대로 빼닮은 아이에게 벌써부터 연민과 근심에 사로잡히는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에 몇 곱절은 더 아파하고 밤잠을 설치는 엄마. 아이를 너무 잡으면 잡아서 미안하고, 너무 놓으면 놓아서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것 같고 열심히 해도 결과가 없는 거 같아서 힘이 빠지는 엄마. 백 미터 달리기 하듯 온 힘 다해 아이들을 다 키웠는데, 이제와 모든 것이 허망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엄마.


'왜 아이들이 네 맘대로 착착 커줘야 하는데? 왜 네 계획대로 다 따라줘야 하는데? 왜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답은 하나다. '엄마인 내가 편하고 싶으니까.' 팩트가 뺨을 때린다.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란 말인가. 아이들이 잘 크면 내가 편하고 내가 자랑스럽고 내가 엄마로서 좋은 성적표를 받은 거 같으니까. 그 이기심에 상응하는 두려움은 어마어마한 동력이 되어 우리의 발에 빨간 구두를 신긴다. 잘라내기 전까지는 멈출 줄 모르고 미친 춤을 추게 만드는 빨간 구두 말이다.




나에게 있어 육아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은 아이들을 온전히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나의 오만한 통제 기제에 있다. 창피하지만 솔직히 그렇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고, 아닌 , 엄청 자애롭고 현명한 엄마인척 가면을 쓰고도 싶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아이를 나에게 종속된 인간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 보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  육아의 가장  도전과제이다.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인생의 가장 효율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주고 싶고, 내가 보기에 좋은 친구들을 붙여주고 싶고, 내가 보기에 실수나 실패, 어려움이 될만한 장애물들은 진작부터 불도저로 밀어주고 대신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싶다. 이렇게 '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육아를 하고 있을  하나님은 나에게 브레이크를 거신다.


"네가 아이의 하나님이 되고 있구나."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게 뭔지 알고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로 하여금 이것저것 더 들었나 놓았다 하며 하염없이 귀를 팔랑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하나님, 제 안에 왜 이렇게 많은 불안들이 있을까요? 왜 두려움이 저의 동력이 될까요?'

덧없이 달려가기만 할 때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하나님은, 내가 멈춰서 주저앉으면 늘 변함없이 말을 거신다.


"하엘이와 시온이는 네 아이들이 아니야. 내 아이들이야. 네가 아이들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가 진짜 아빠가 되기 때문이란다. 진짜 아빠는 나니까, 그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지. 매 순간마다 네가 내게 묻기만 한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최선이 뭔지 알려줄 수 있단다. 이 아이들은 내가 키우는 내 아이들이고, 너는 이 아이들을 잠시 맡아주고 있을 뿐이야. 이 아이들을 통해 너 또한 훈련을 받는 중이거든."


맞아. 내 아이들이 아닌데. 하나님이 진짜 부모 되시고, 나는 그냥 잠시 맡고 있는 것뿐인데.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보러 집에 올 때, 베이비시터는 아이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밥을 먹일 때도 혹시 먹으면 안 되는 건 없는지 친부모에게 물어봐야 하고, 액티비티를 시킬 때도 아이가 뭘 하는 게 좋을지 친부모에게 물어봐야 한다. 모든 것을 일일이 다 물어봐야 한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베이비시터가 아니라 친부모이기 때문이고, 베이비시터 마음대로 아이를 돌볼 때 그것은 아이에게 가장 위험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하나님의 베이비시터에 불과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오너쉽이 없다. 아이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부모 인척 하는 베이비시터만큼 정신 나간 사람도 없을 테다. 잡혀갈 일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아닌 내게 "맡겨주신 아이들"이라고 해서 맘 편히 방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내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들을 모든 순간에 물어보고 부지런히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실수와 시행착오가 적은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가 아이들의 하나님이 되지 않는 것. 진짜 아빠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는 것. 그리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


아이가 와서 말할 때가 있다.

"난 정말 멍청해. 이런 것도 못하고."

그럴 때 아이에게 말한다.

"정말? What's the truth here? 하나님이 지금 하엘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같이 물어보자."


잠시 후 아이는 속삭인다.

"내가 충분하다고 하시는 거 같아."

"맞아, 그럼 그게 truth야. 하엘이에게 멍청하다고 하는 소리는 거짓말이야. 우린 거짓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


이런 연습은 실제로 나에게도 매 순간 필요한다.

'진짜 왜 사니, 왜 살아. 난 정말 끔찍한 엄마야.' 이 음성에 스스로 동의하는 순간 모든 생각의 끝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그럴 때는 일단 생각을 비우고 무엇이 truth이고 무엇이 lie 인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함 없고 사랑스러운 딸이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는 좋은 엄마라고 하셨어. 우리 아이들에게는 내가 최고의 엄마라서 나에게 맡겨주신 거라고 하셨어. 그게 변함없는 진실이야. 내가 끔찍한 엄마고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은 들을 필요가 없어.'


이렇게 분별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명료해진다. 이것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놀라운 건,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기뻐하신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내 의지대로 아이들을 열심히 키운다고 해서, 하나님이 떠나지는 않으신다. He doesn't walk away.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진실에 귀 기울이고 거짓을 떨쳐낼 때 하나님은 몹시 가까워지신다. He only moves closer.




아이들이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놀랍게 자유해진다. 모든 의무와 책임에서 자유해진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내 아이들을 더 사랑하시고, 더 잘 아시고, 죽기까지 책임지시는 진짜 아빠가 계시다는 것. 그 진리와 나 자신을 정렬시키는 것만으로도 내 짐은 한껏 가벼워진다. '아이의 앞길에 그 어떤 어려움도, 장애물도, 슬픔과 아픔도 없게 해 주세요'라는 지극히 기복적이고 두려움에 기초한 기도에서 '이 어려움을 통해 아빠 되신 하나님을 더 찐하게 만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극복하고 성장하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그 길을 함께 가는 저에게도 용기를 주세요'라고, 확장된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내 두려움이 하나님을 앞질러 가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고, 또 자책할지도 모른다. 점점 더 커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라 마음이 또 요동 칠 수도 있고,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을 보며 한없이 무력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거짓이 내 삶을 전복시키지 못하도록, 득달같이 진실을 붙들 것이다. 진실은, 믿는 만큼만 힘이 생기니까.





• Soli Deo Gl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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