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한 가지의 결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탐험이, 누군가에게는 휴식이, 누군가에게는 다음 여정을 위한 선택의 통로가 된다.
그리 오랜 시간을 산 게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너무나 많은 질문을 껴안고 살고 있었다. 고요한 겉모습 안으로 매일 이는 풍랑은 스스로를 조금 더 용기 있게 날것으로 맞닥뜨리며 삶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동요였다. 멀리 홀로 여행을 떠나와 며칠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지만, 아직 스스로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그날만큼은 순간의 이끌림에 충실하고 싶었다. 지도를 펼치고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낼 도시를 살피다 번쩍 눈에 띈 한 장소. 아씨시다. 프란체스코 성인과 키아라 성녀가 나고 자란 곳이자, 그들의 성덕(聖德)으로 인해 내 마음엔 평화와 동급으로 저장된 도시. 이곳이라면 나의 하루를 온통 걸으며 생각하며 보내기에 안성맞춤이겠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역으로 달려가 표를 사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선로를 달리는 동안 진정 혼자라는 설명할 수 없는 자유의 감정이 기쁨으로 꿈틀거린다. 내 느낌과 생각이 그 어떤 것에도 지배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그 거리를 걸어 나갈 것이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전해 줄 것이다.
기차에서 내려 도시로 첫걸음을 내딛자, 준비되지 않은 순전한 탄성이 절로 쏟아져 나온다. 햇살에 누렇게 익은 들판과 짙푸른 숲. 세월을 이겨내기보다는 잠잠히 견디어냈음직한 든든한 아름다움. 아, 이런 곳도 있구나. 그냥 기분 탓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들과는 또 다른 따뜻함과 평화로운 공기가 그 누가 이곳을 방문한다 할지라도 슬며시 안아줄 것 같은, 분명 처음 온 곳인데 처음 온 것 같지 않은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진입하여 이 도시의 중심인 ‘피아자 델 코무네 광장’에 내렸다. 이탈리아 도시의 공통점은 언제나 광장 중심으로 설계가 되어 있고, 그 중심엔 하루의 더위를 다 데리고 가 줄 것 같은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한나절을 그곳에 앉아서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근처 가게에서 젤라토를 하나 사 입에 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앞에 걸터 앉아 잠깐 여독을 풀었다. 그들의 옅은 미소가 내게도 금방 전염이 되는구나. 여유 있게 자리를 지키다 보니 정말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이 자리에서부터 이 도시를 든든히 지켜온 성 ‘로카 마죠레’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문자 그대로 ‘대 요새’라는 뜻의 그곳에 올라 내려다보면 도시가 한눈에 잡힐 것 같아서이다. 혼자 천천히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가 당도한 그곳엔 나와 영국인 가족 네 명만 입장권을 사고 있을 뿐. 깜깜한 내부를 더듬더듬 벽을 짚어 올라가는데, 겁이 많은 내 손을 영국인 가족이 잡아주어 무사히 꼭대기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 서서 구석구석 마을을 바라보는데, 이렇게 뭉클할 수가. 땅에서 뿜어 나오는 인자함이라니. 이런 감동은 어디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다. 다행히 이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닌가 보다. 옆의 영국인 아이들 역시 자극적인 놀잇감 하나 없어 보이는 이 마을로 이사 오고 싶다고 부모님을 연신 조른다. 부모님들도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아랫마을을 연신 아쉬움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감동의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뿐. 아씨시는 그런 곳. 하염없이 기대고 싶고, 품어줄 것만 같은 곳. 그곳에서 내려다본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앞에 새겨진 평화(PAX)라는 문구가 내 마음에도 크게 박힌다.
천천히 요새를 빠져나와 마을로 내려와 프란체스코 성인의 유해 위에 세워진 성당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규모에 비해 넘치게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천국의 평화란 이런 것인지 가늠케 하는 차분한 색조의 푸른 아름다움이 넘친다.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고 천천히 내부로 걸음을 내디뎌 보았다. 이것이 미술사 책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죠토와 화가들의 그 벽화구나. 그들만의 부드러운 색감과 붓터치를 통해 탁월하면서도 누구에게나 다가가기 쉬운 스토리텔링으로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엮어낸 바로 그 벽화가 이 성당 상층의 전체를 감싸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르심으로 자신이 가진 걸 모두 버리고 복음과 청빈의 삶을 산 사람. 가난한 이들의 성자이자 자연을 사랑하여 새들에게조차 설교를 하던 모습이, 수백 년이 지난 작금의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대비가 되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것이 이 땅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용의 오라의 이유겠구나. 자연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이 세대 모두에게, 그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프란체스코 성인을, 아씨시를 보여주고 싶다. 그는 분명 내 안의 부끄러운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아씨시가 나를 부른 이유는 분명하다.
역으로 내려가는 길은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나만의 여정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수많은 순례의 발자국이 새겨진 이 길은 인스턴트식이 아니다. 몇 백 년 전 성인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며 걸은 역사의 길이고, 그들을 지금까지 따르는 이들의 삶을 이끌고 빚어낸 빛나는 성스러움이 그대로 서려있는 길이다. 뿐만 아니다. 이 길 위에서 만난 태양과 공기와 자연과 그들의 오랜 집들은 한 덩어리처럼 그렇게 어울리며 모두 친구가 된다. 여기에 내 작은 발자국마저 포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이곳에서는 머무르자. 이곳에서는 내 몸과 맘이 허락하는 한 기도를 하자. 마지막으로 들른 키아라 성당 내의 성 다미아노의 십자가 아래 눈을 감아 본다. 성 프란체스코가 그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 후 모든 걸 내려놓고 다음을 내디뎠듯, 나 역시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한다.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예술만을 바라보며 한 길을 걸었던 청년은, 맘 속 묵묵히 잠거 놓았던 영원한 삶의 방향을 끄집어내어 생각한다. 예술을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예술을 하자고. 그리고 이왕이면, 나만이 아닌 우리의 삶을 위해서, 영원한 방향으로 하자고.
그렇게 나만의 다짐을 하며 석양을 기다리지 못한 채 이곳의 자리를 뜬다. 그것이 또 한 번 아씨시를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https://youtu.be/8hdWWCHyr_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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