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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텐 Jun 05. 2021

순례의 시작이자 끝, 바티칸


로마는 정말이지 단 며칠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내가 감히 하루 이틀에 어찌 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그 첫인상은 정말 강렬했다. 도시를 가득 채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바조, 베르니니 등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전설적 인물들이 남긴 그림, 조각, 건축 등의 역작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너희들이 감히 판단할 존재가 아니야. 세월을 먹으며 더욱 위대해지고 있다고.


파괴되지 않는 이상 불멸할 이런 예술품들 앞에서 내 마음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단 한 작품 앞에서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느끼고 깨닫는다. 하지만 시간은 짧고 작품은 너무 많고, 사람 또한 너무 많아 당황스러운 이곳 로마는 잠시 제쳐 두고, 그 시내에 위치한 바티칸 시국에 이제 들러 보아야지. 그곳이야말로 내가 여기에서 가장 궁금하고 가고 싶었던 곳이니까.


바티칸 박물관의 한여름 오전 시간  기나긴 줄은 로마의 강렬한 태양 아래 정말 잔인할  있다. 그래도 숙소에서 만나게  천진난만하고  통하는 동행과 함께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짜증 대신 설레는 맘으로 바티칸 박물관에 끈기 있게 입장. 그리고는 교황님의 아파트에서 역시나 미술사 책에서 가장  부분을 차지했던 작품의 하나인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바라보며 천재들의 지기에 기가 죽을 새도 없이 기뻐하고, 미켈란젤로조차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며 반성하게 했다는 어마어마한 기원전 작품인 <라오콘> 바라보며 경탄하고, 시스티네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만났던 참으로 아름다운 지도의 방을 함께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젠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시스티네 성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떠밀리는 인파 속에서 그때 그 시절의 모든 것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지라도 어쩌겠어. 하나 입구 쪽으로 발을 들이미는 순간. 아! 아!


출처: wikipedia.com


파랗다. 천국의 파란색이다. 어찌 보면 하늘은 박제될 수 없고, 그런 식의 표현은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이 벽을 통해 가장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천재들의 파란 프레스코에 둘러싸여 “천지창조”의 순서를 하나씩 짚어가고 예수님의 생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동행과 함께 경이에 찬 눈빛을 교환하며 목이 꺾일 듯 천장을 뒤진다.


작은 창조의 결정체 안에서 모든 걸 아주 간결하나 간절한 맘으로 복습을 한 후, 이제는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몸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괜찮다. 온갖 신경을 한 곳으로 모아 나는 몇 백 년 전으로 살짝 시간 여행을 했다. 그곳에는 팔레스트리나가 있고, 그의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곡>이 당당히 흐른다. 16세기 바티칸에 드러난 푸른 장엄한 빛과 이 음악의 경건하면서도 하염없이 밝은 폴리포니의 하나 됨은 진정 경이로움 그 자체다. 당시의 예술가들이 자신을 낮추면서도 형식적인 틀에만 갇히는 것이 아닌, 하늘로부터 온 진정한 영감을 표현하려는 그 진정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 결과는 이렇듯 불멸하고.     


https://youtu.be/EJj0as_Mic4



이거구나, 당시의 그림과 음악에 대해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니 뭉클해지며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음에 하염없이 감사하게 된다.


공간의 장엄함과 벽화에서 드러나는 각 묘사의 세세함에 감동한 후, 제대 뒤편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을 만난다. 그림을 바라보며 음악사의 어느 순간부터 이 성당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떠올린다. 이 작품은 시스티네 성당 성가대가 오랜 시간 성 금요일에 연주하던 곡으로, 수많은 고전, 낭만주의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에 이 성당을 다녀가며 작품을 감상했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윗 왕이 밧세바를 간음한 후 예언자 나탄을 만나며 자신의 죄를 깨닫고 참회한 내용을 담은 묵상곡인 <미제레레>. 미켈란젤로나 팔레스트리나의 다음 세대에 태어난 알레그리의 음악은 선배들의 르네상스 작법을 따르면서도, 단선 성가와 두 개의 성가대가 다성 음악을 주고받는 작법으로 더욱 다채롭고 화려한 음향을 자랑한다. 이 음악을 떠올리며 프레스코를 바라보니 구원을 향한 인간의 절실함과 삶과 죽음을 통찰하게 하는 신비감이 배가 된다. 이 공간에서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전례 중 이 음악을 듣는다면 그야말로 신의 마음에 압도되며 나 스스로의 순간순간을 되짚어 떠올리며 가슴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https://youtu.be/THU9zfWCUr0

알레그리 <미제레레>




당시의 예술가들과 종교인들은 이 성당에서의 미사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종합하자면, 이렇게까지 압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의견으로 양분된 것이다. 여하튼 이 모든 것들은 최상의 것을 드리고 지키려는 노력으로 남게 되었으니 이젠 내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그뿐이다.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게.


무언가 깨끗이 씻긴 기분으로 시스티네 성당을 나와  베드로 성당으로 향한다. 광장에 들어서자 베르니니가 둥글게 감싸도록 만든 기둥 안에 세계의 수많은 신자들과 여행객들이 빼곡하다.   없는 역사의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순례를 시작하고 마치던 이곳.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생각하고 동경하는 곳일 것이다. 물론 내게 있어 성전이란 이제 건물만의 개념이 아닌,  안의 성전, 그리고 서로 다른 우리가  몸으로 모인다는 의미로 남게 되었지만, 이제 베드로 성당은 일치와 화합의 상징이라고, 아니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유지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성당의 상상보다도 훨씬 더 큰 그 압도적인 크기에 깜짝 놀라고, 그 큰 공간의 구석구석이 전부 세기의 예술로 채워져 있다는 것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음과 동시에, 이 큰 곳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희생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이곳은, 그러나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여기를 찾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고 감싸주는 큰 사랑의 여운이 감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으로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참 감사한 일이다.


사랑. 그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잠깐 지친 다리를 쉬어가게끔 앞자리에 앉아 살짝 눈을 감으니, 대리석의 찬 기운이 한 여름의 열기를 단번에 식혀 준다. 저절로 나오는 기도 속에는 삶의 중요한 이 시점, 나만의 순례의 길에 서 있음에 감사하면서, 기억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담긴다. 나는 그렇게 나직이 중얼거리며 일어나 촛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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