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나라로 떠난 지 근 십 년 만에, 대서양을 넘어 또 다른 큰 발걸음을 옮긴다. 50일이라는 긴 여정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보기로 한 것이다. 학부 때 배운 이탈리아어는 음악 공부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지만, 실제로 현지에서 부대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낯선 곳으로 홀로 움직일 생각을 하니 출발 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새로운 울렁거림이 전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긴장감이다.
하지만 여행은 준비과정이 제일 설렌다고 했던가. 오랜 시간 마음에 둔 그곳을 상상하며 사방에 전화를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행서적을 읽으며 보고픈 곳, 하고픈 일을 마음에 저장하고, 가방에 꼭 필요한 짐만을 가려 넣는 일은, 그동안 묵혀둔 상념을 차근히 정리하는 것과 같은 청량감을 선물해 주었다.
"너는 이탈리아에 한번 가 봐야 해."
"선생님. 본고장에 가서 공부를 해 보아야 한단 말씀이시죠?"
"아니, 그런 것 말고. 그냥 만나라구. 사람들을, 음식들을, 그 사람들의 문화를.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이 떠드는 것만 보고 들어도 알 거야. 그걸 하라구."
사람의 삶에서 찰나의 순간조차도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가? 수년 전 존경하는 선생님과 나눈 짧은 대화는 내 맘 속에 자동으로 새로운 꿈과 여정을 심어 주었다. 그곳엔 있나 보다, 내가 찾던 본질적인 것들이. 바람이 바로 현실이 될 수는 없었지만, 결국 오랜 시간 이를 위한 노력을 하고 기회를 찾게 된 것이니. 결국 그 자리에 가방 하나, 편한 신발 하나, 작은 사진기 하나, 노트 하나, 그리고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이 범벅이 되어 그렇게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여정은 페자로에서 시작했다. 중요한 동부 해안도시인 앙코나와 리미니 사이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뜨거운 공기를 느끼며 로마 땅을 밟은 후 바로 환승하여 앙코나 공항에 도착하니, 페자로의 음악원에서 가르치시는 지휘자 선생님께서 나를 마중 나와 계셨다. 선생님은 본가가 앙코나에 있어 방학이 되면 이곳으로 내려와 계시므로, 학기 중 페자로에서 지내시는 방을 내게 한 달 동안 빌려주시기로 한 것이다.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셨지만 영어라고는 ‘헬로’밖에 할 수 없는 분과, 더듬더듬 이탈리아어를 끄집어내는 한국 여자의 대화는 산으로 가기 일쑤였다.
선생님의 차에 동석하여 어색한 자세를 취하며 내가 왜 또 이런 모험을 강행하고 있는지 두려움이 슬슬 엄습할 때쯤, 차창을 타고 전해 오는 바깥의 풍경. 아. 이곳이 이탈리아인가. 내가 그토록 와 보고 싶어 하던 그 나라인가. 수년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그리워하던 그인가! 눈 뜨고 사방을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번뜩이는 햇살 아래, 어느 순간 차창 한가득 메운 해바라기들이 줄지어 나에게 화답한다. 네. 저예요! 환영해요! 창문을 살짝 열어 더운 공기에 범벅이 된 그 살가운 내음과 함께 이탈리아와 수줍게 첫 포옹을 나눈다.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은 미국과는 다르게 좀 더 눈에 친숙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 같다는 생각이 들게도 할 만큼 섬세한 모습이다. 산골짜기 숨은 계곡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들도 보이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열심히 밭일을 하는 일꾼들도 보이고. 나도 모르게 단단히 무장할 뻔한 마음이 슬슬 풀리는 것을 느끼며, 이곳으로 처음 향하게 되었던 나의 설레던 첫 마음이 소환됨을 느낀다.
이렇게 차로 약 30분 정도 북으로 올라가니 어느덧 해안가의 절벽이 줄줄이 보이며 푸른 바다를 만난다. 바다는 어디에서 만나든 낯설지가 않고 고향 같다. 해변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그렇지? 같은 반도국가여서일까? 역시나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 바다를 바라보며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절벽 위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지금도 입안에 그 짭조름한 신선함이 맴도는 홍합 스파게티도 먹고, 커피를 처음 맛본 사람처럼 놀라워하며 카푸치노를 마신 후 숙소로 향했다. 아, 이곳에 파바로티의 별장이 있다지. 오감을 자극하는 이탈리아 바닷가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흘러간다.
페자로는 많은 외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음악인들에게는 의미 있는 장소다.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죠아키노 로시니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도심으로 들어서니 로시니가 마치 이 아담한 도시의 모든 것인 양 골목 구석구석을 장악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로시니 음악원은 당연히 이탈리아 내 주요 음악원의 하나이다.
또한 로시니를 기념하는 동명의 페스티벌도 이 도시의 자랑이다. 평소 조용한 이곳이 매년 여름 페스티벌 시즌을 만나면, 거리마다 로시니의 얼굴과 이름으로 더욱 가득 채워지고, 그의 오페라가 현란하게 울려 퍼진다. 유럽에서 로시니의 위상은 그가 살아 활동한 약 200년 전 더 대단했고, 19세기 벨칸토 오페라의 아버지로서 이탈리아의 음악 역사에서 그의 역할은 큰 나무 기둥과도 같으니, 그의 고향이 그로 인해 영원히 찬란하게 빛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https://youtu.be/Ur7-OAJwvCE
하지만 기대감 넘치던 첫날과는 달리 초반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들도 경험하며 가까스로 적응을 한 후, 수일이 지나 로시니 음악원을 찾아가 사전에 소개받은 친한 언니의 은사님을 만나 느린 의사소통으로 레슨을 받았다. 노래. 그래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원동력이 또 그거였지. 원어민 선생님 앞에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는 건, 미국에서 노래하던 상황과는 또 다른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준다. 다행히 선생님의 의견은 그동안 내가 지켜왔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용기를 주었다.
행복한 마음으로 벨칸토 음악의 한 프레이즈 씩 꾹꾹 감당하고 난 후, 선생님께서는 더욱 반가운 말씀을 해 주셨다. 이곳에 한국인 피아니스트 유학생이 있으니 그가 내 체류 동안 반주 및 여러 가지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존재만으로도 반가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시내 어느 노천카페에서 만났다. 나보다 몇 살 어린 동생인데도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외모에는 어딘가 모를 듬직함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머나먼 타지에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공통점이 있어서였을까, 도저히 처음 만난 것 같지 않은 그는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당면한 내 문제들을 삽시간에 해결해 줌은 물론,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의 긴장은 어느새 다 풀리고, 오래 기다린, 꿈에 그리던 이곳에서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만이 남았다.
여행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떠나 휴식을 선사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나 내게 이 여행은, 이 여행만큼은 꿈의 본향을 찾아온 순례의 과정이다. 그저 빈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걷다 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을까. 역사의 거리에 구석구석 숨겨진, 내가 찾아온 그 보물들이
#이탈리아 #페자로 #로시니 #로시니페스티벌 #여행 #여행에세이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