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르텐 Jul 15. 2021

예술을 향한 전설적 사랑, 퓌센-슈방가우


나의 삶의 3년의 여름은 개인적인 일정으로 이탈리아에서 보냈다면, 이후의 3년은 독일어권을 오고 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듣는 즉시 심장을 바로 꺼내서 건네받는 것 같은 이탈리아의 음악과는 달리, 때론 곱씹어야 하는 독일의 음악. 어찌 보면 시간을 들일수록 더욱 몰입하게 되는 그 매력을 직접 만나 느껴보고 싶었다.


이날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적 흔적을 만나기 위해 독일 남부의 끝자락, 슈방가우 지역으로 향했다. 아니, 실은 바그너가 아닌 그의 최상의 후원자,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를 만나러  것인지도 모른다. 왕으로 태어난 것이 아쉬웠던, 차라리  자신이 예술가 신분으로 태어났어도 좋았을 사람.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왕의 신분을 가진 예술가라는 사실이 주는 어긋남, 또한 여기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편 안쓰럽기도  사람. 어마어마한 심미안과 예술적 취향을 가지고 바그너의 음악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가 최상의 환경에서 음악을   있도록 도왔던 그는, 예술가의 입장에서참으로 고마울 수밖에 없지만, 정치가의 신분으로 바라볼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런 루트비히 2세의 걸작, ‘노이슈반슈타인  슈방가우 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대중교통으로 다다르기 위해서는 바로  동네인 퓌센  기차를 타야 한다. 퓌센은 고대로부터 독일의 , 남부를 관통하는 교역의 역할을  로만틱 가도의 남쪽 끝에 위치해 있는데, 현재  길에 걸쳐진 도시들은 모두 아름다운 경관과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최고의 관광지들이다. 나는 뮌헨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역 기차를 타고  소소한 창밖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앞으로 우리가 만날 지역에 대한 기대를 더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기차에서 내리자 말로 다 할 수 없는 꿈같은 풍경이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진짜 동화 속에 발을 담근 기분인 것이다. 투명한 하늘 곳곳에 담긴 뭉게구름.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호수와 이를 감싸는 신선한 공기. 오밀조밀 듬성듬성 놓여 있는 붉은 지붕의 집들. 이 느낌을 잊지 않으려 그 어느 때 보다도 깊은 숨을 뼛속까지 들이쉬어 본다.



아마 루트비히 2세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낼 때마다 동화 같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예술적인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 이런 곳에서 성장하게   받았을 자극은 불을 보듯 당연한  아니겠는가. 먼저 그의 어린 시절을 가까이 만나기 위해  시절의 별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있는 ‘호엔슈방가우  발을 디뎌 보았다. 이곳은 원래 12세기부터 성이 있던 자리였으나, 나폴레옹에 의해 파괴된 이후 루트비히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1836 다시 완공한 것이다. '호엔슈타우펜의 ' 놓인, 한때 바그너가 뮌헨에서의 소요를 피해 이곳을 방문하여 연주했다는 하얀색 피아노를 바라보며 루트비히 왕이 어린 시절부터 탐닉했을 바그너의 영웅적 사운드를 마음에 떠올리기도 하고,  건너편 산허리를 바라보며 펼쳤을 그의 시각적 상상력을  눈에도 실어 본다.



  어린이의 마음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탄생한  아니겠는가.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비현실적인 성은 극도의 상상력과 예술적 취향을 갖춘 루트비히 2세와 같은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도저히 나올  없는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건너편 산등성이를 오르며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중턱에 저런 규모의 화려한 성을 쌓아 올릴 생각을 했지. 물론  자리에도 과거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성이 자리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새가 필요하던 당시와 루트비히 2세가 개인의 별장처럼 사용하려던 상황은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다. 정말이지 정치는 뒷전이고 이런 곳에 막대한 돈과 시간을 쓰는 그를 대신들이 참지 못한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물론 수많은 오해와는 달리, 대부분 그의 사비를 털다 못해 빚을 지고 이런 일들을 벌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다다르니 그 그림 같은 모습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중세로부터 아이디어가 오긴 했어도 건물 자체의 외관은 1886년에 완공되었기에, 세월의 흔적이 크지 않아 더욱 현실 같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성의 진가는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는 저 내부는 정말 충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왕가의 흔적은 거의 없고 오로지 바그너로 장식된 내부... 세상의 어느 성이나 궁전에 왕가의 초상화 한 점 없이 음악가의 흉상 하나를 먼저 세워놓겠는가.



게다가 오로지 바그너의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수의  바그너 오페라의 테마로 이루어진 여러 방의 프레스코화라니. 침실에 그려진 <트리스탄과 이졸데>, 응접실에 그려진 <로엔그린>, 서재에 그려진 <탄호이저> 이곳의 벽면에서 전부 만날  있는 바그너 오페라의 배경이자. 독일의 전설이다.  성이 정말 본인을 위해 꾸민 것인지, 혹은 작곡가에게 헌정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상상할  없는 아름다움이자 광적인 사랑이다.


https://youtu.be/QBNCRpLuBLs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O du mein holder Abendstern)"


그런 장식으로 대부분의 방을 꾸미고자 했던 왕의 의지는, 외관 완성 후 3개월이 지나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는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겨진 채 일단락되고 말았다. 대신들에 의해 정신과 진단을 억지로 받게 된 그는 결국 ‘망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채 왕위에서 폐위되고,  며칠 후 어느 호수 위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루트비히 왕은 정말 미쳤을까? 사실 이렇게 한 가지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언제나 미친 종류의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의 삶은 여러 모로 미스터리한 결말로 남게 되었다.



만약 이곳의 내부가 다 꾸며졌더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도대체 루드비히 2세의 예술과 바그너에 대한 사랑은 어디까지인가, 그는 이곳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혼자 즐기려고 했었지만, 그의 사망 직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외부에 입장료를 받고 공개가 되어 빚을 서서히 갚아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면, 의도치 않게 그의 속살이 만 천하에 공개가 된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며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떠나 마지막으로 마리엔브뤼케 다리에 올라 그 환상적인 외관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게 산골짜기에 걸린 흔들다리는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앞에 보이는 성과 마을의 경관은 이를 잠깐이나마 잊게 할 정도로 장관이다. 루트비히 왕은 분명 정치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운 사람이지만, 그의 흔적을 이렇게 바라보니 나는 이만큼 어떤 존재의 전부를 깊이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를 자문하게 한다. 결국 현세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그의 최후는 그토록 허무했던가. 눈앞에 놓고도 현실 같지 않은 그의 마지막 역작이 그 불가능함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루트비히가 그토록 사랑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루어질  없는 사랑을 죽음으로 묘사한, 그러나 마치 죽음이  끝이 아닌 완성처럼 묘사한 작품이다. 루트비히는 결국 자신이 사랑한 오페라를 닮은  우리에게 남아  아름다운 마을을, 아니 예술을 추구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전설처럼 맴돌며 질문하고 있다. 당신의 사랑은 어디까지냐고.


https://youtu.be/J8UzmAgGdlU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Liebestod)"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



#독일 #로만틱가도 #낭만가도 #퓌센 #슈방가우 #노이슈반슈타인 #호엔슈방가우 #루트비히2세 #리하르트바그너 #바그너 #여행 #여행에세이

이전 16화 도나우 강의 선물, 멜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