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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May 24. 2021

내가 아닌 나

언제부터 였는지

나는 돼지갈비찜을 참 잘 만든다.

뭐 난다긴다하는 사람과 견줄 바는 못되더라도 여느 손 맛있는 경력의 주부만큼은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가 결국 정리를 하고 그럭저럭 적응이되었다. 가족들은 엄마가 거의 혼자 하던 명절음식을 각각 나눠서 하기로 했는데 우리 집이 맡은 게 갈비였기 때문이다. 11년, 1년에 2번 그렇게 나는 꼬박 갈비를 했다. 6남매와 그 아래 달린 식구들이 먹을 갈비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고기를 10kg 넘게 사곤 했으니까. 그래도 명절이면 참 외로웠다. 아빠는 수고했다고 가끔 용돈을 쥐여주기도 했지만 나는 손주도 며느리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항상 명절이 너무 서글펐다. 친척들도 만나고 그런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늘 조마조마 하면서 지루하고 따분한 명절을 보내고 작은엄마들이 친정엘 가면 우리도 칼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다. 미웠다. 엄마는 결혼하고 20년을 친정 한 번 간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는 차 막히기 전에 어서들 가라면서 아빠는 더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내게 명절은 늘 서글프고 쓸쓸한 생각이 박혀 이제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시간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내 사정을 누가 알기라도 할까 어느새 나의 이미지는 누구보다도 밖에선 항상 적극적이고 명랑하며 착한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때론 여유와 위트를 가진, 때론 친구들에게 귀염도 떨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티를 많이 내곤 했다. 청결과 행실을 어느 정도 바르게 이어나갔고 늘 내 겉모습에 많은 신경을 쓰거나 거절도 못 하고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내가 하기 벅차더라도. 힘들더라도. 



그래서 듣는 소리는 이런 것들이다.



'너 집에서 막내야?'

'여자친구가 애교가 많아 좋겠다'

'우주샘은 엄마께서 옷도 잘 관리해주시나 보다. 다림질도 깔끔하고 스웨터는 늘 보면 보풀도 하나 없고'

'선생님 우리 아이가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데 소우주 선생님처럼 되고 싶대요'



기분 좋은 소리. 내 힘듦을 보상받는 소리. 하지만 다시금 초조해지는 소리. 체력의 한계가 오고 정신력으로도 어떻게 안되면 어디 구석에 처박혀 펑펑 울거나 혼자 차를 타고 아무도 안 보이는 데서 그저 몇시간이고 짐승처럼 울기도 했다. 



집에서도 집안일은 거의 내 몫이었다. 힘들게 퇴근을 하고 쌓인 빨래며, 설거지며, 성격상 특히나 싫어하는 머리카락. 이따금 동생이 도와주거나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는 늘 버려주었지만, 빨래를 빨고 널고, 집을 청소하고 티도 안 나는 짓을 해댔지만, 나에겐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기에 밖에 나가서 후줄근하게 보인다거나 홀아비 소리를 듣는다거나 하는 것을 내가 듣는 것만큼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만큼 살림도 억척스럽게 해냈다. 특히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기에 손님이 오면 특유의 개 냄새가 나진 않는지 가끔 묻곤 했다. 

 


동생과 아빠랑 많이도 싸웠다. 이유도 별것 아니었고 대부분 감정싸움이거나 내가 너무 지쳐 참을성을 잃을 때. 아빠랑 싸울 때는 오죽하면 부부라면 이혼이라도 할텐데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마음은 피폐해져갔고 광대처럼 항상 웃고 다니다가도 마음이 터질 것 같은 때 나는 몇몇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내 사정을 아는 극소수의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거나 우리 오빠와 언니에게 기대어 많은 고통을 함께 나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빠와 엄마 모두 재가를 끝내고, 그 이후 동생은 다른 지역으로, 나는 교통사고 이후 명절은 가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갈비도 잴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아빠가 재가할 때 나는 나와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말도 탈도 많았지만 쓰고싶지 않다. 지금까지 떠 올린 것만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투 베이에 방을 잡고 셀프로 이사를 하고 아빠와는 왕래가 끊기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났고 병원에 다시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자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결국 우주씨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던 겁니다.

이 무슨 허망한 소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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