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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Jul 21. 2019

보츠와나에서 지역 교육청 출제위원이 되었다.

나름 숙원 사업이라 뜻깊은 일이지만...

 지난 1학기 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학생들이 공부를 못 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충격이고,

둘째는 선생들이 무능하고 게으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게으르고 무능한 줄은 몰랐다는 충격이었다.




 학생들이 공부를 못 하는 거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공부를 해야 할 까닭도 없고, 잘하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는 탓에 공부는 언제나 뒷전이기 때문이다. 경제 사정도 안 좋고 공부해봐야 대부분 대학 진학도 못하는 등 어쩌면 공부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제자들의 부모들 중 상당수는 제 아들 딸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거나 복습을 하는 일을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케틀로 함께 나가 소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거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골로 갈수록 학업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린다. 부모부터 학업의 중요성과 학벌과 직업 또는 소득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탕이며 과자로 유혹을 해도 숙제를 해오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 탓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선생들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나라에서 공인하는 양성 과정을 거쳐서 교사 자격증을 얻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무지하면 안 되는 거다. 초등학교 선생들이 사칙 연산 순서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애들을 가르친다는 거냐. 이들은 사각형의 포함관계를 이해하지 못해 사다리꼴과 마름모,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을 명확하게 분류하지 못하였다. 또 명왕성이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10년 넘게 알지 못하고 있었고, 물속에 들어 있는 못이 어째서 녹이 스는지 설명하지 못했으며,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이 지역 교육청에 모여 시험지를 만들고 각 학교에 뿌리는데, 이런 사람들이 만든 시험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가 없다. 보기 중에 답이 없는 건 자주 있는 일이고,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써놓는 일도 종종 있다. 물론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50문제 중 15개가 오류를 보인다면, 이를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출제자가 의도한 바가 명백하게 오류인 경우도 많다. 아까 예로 든 사칙연산에 대한 오류나, 과학에서 보여준 오개념들도 출제자는 분명 이게 사실이라고 믿고 출제한 것들이었다. 일례로 70-5+3을 70-(5+3)으로 계산하고는 62가 정답이라고 답지에 적혀있는 식이었다. 이것이 틀렸다고 설득하는 과정은 지루한 다툼이었고, 이 과정에서 한두 명의 출제자가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니라 교육자 집단이 전체적으로 자질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위 예시에서 62가 아니라 68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두 시간을 넘게 설전을 벌여야 했고, 동학년 교사들, 교장, 교감 모두와 맞서야만 했다. 다행히 제대로 알고 있는 교사 한 둘이 있어 힘겹게 힘겹게 설득을 해나갈 수 있었다.

전학년 과학과 수학 시험지를 검토하고 결과를 메모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인 편이다.


 이런저런 일 덕에 지난 학기에는 내가 소란을 피우게 된 셈이 되었다. 동료 교사들 입장에서는 혼자 헛소리 하는 애였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장과 교감에게는 도대체 누가 이딴 시험 문제를 만드느냐며 따졌는데, 꽤나 무례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고 보니 교감단이 모여서 시험문제를 만들기도 한다더라. 교감은 많이 불쾌하셨겠지.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는 이번 학기는 어차피 끝났고 다음 학기에는 내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장에게 다음 학기 시험 문제 만들 때쯤에 꼭 내 얘기를 해달라, 나를 출제위원으로 넣어달라고 반복적으로 부탁했었다. 학교장께서는 흔쾌히 ok 하셨고, 나의 노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리고 중앙 교육부에 우리 사업 담당자에게도 메신저로 상황 설명을 하고, 이메일도 보냈다. 이 분 역시 나의 계획에 환영해 주셨다.





 그렇게 2학기가 되었다.

어제 꿰넹(Kweneng) 지역 5학년 수학 시험 문제 출제를 마쳤다. 추측컨대 교육부 담당자가 지역 교육청에 연락을 넣은 모양이다. 5학년 수학만 콕 집어서 우리 학교 보고 출제하라고 한 걸 보면 말이다. 아직 시험 문제 출제 시스템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아무래도 예외적인 일이라고 본다. 우리 학교 동료 교사 중에는 수학 출제 위원인 사람이 한 분 있다. 이 분이 전체적으로 시험 문제를 만들었고, 나는 이 중에서 잘 못된 문제를 찾아 지우고, 새로운 문제를 그 자리에 끼워 넣었다. 몇 차례 의논이 오갔고 오늘 지역 교육청에 넘겼다.


 많은 걸 바꾸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 시험지를 살펴보다 보면 오류는 아닌데 출제 의도가 무엇일까, 혹은 이런 문제는 도대체 왜 풀어야 하는가 싶은 문제들도 많다. 다 바꾸고 싶었지만 여기까지는 손대면 안 될 것 같았다. 가뜩이나 변화에 둔한 사람들인데, 외국에서 온 놈이 이상한 시험문제를 냈다는 원망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실수 없고 오류 없이 깨끗한 시험지, 학생들이 '오류 같은 건 없겠지?' 하며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시험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오탈자를 여러 번 점검하고, 틀린 답은 없는지, 줄 간격은 적당한지 등을 중점으로 보았다.



아래처럼 손으로 써서 만들고 보조원에게 넘기면 보조원이 타이핑을 해서 전자화한다. 불편하게 뭣 하러 이렇게 하냐라고 따지고 싶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 대부분 컴맹이라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력된 파일도 여러 번 확인하고 오늘 출력본을 넘겼다.

일일이 손으로 써야만 했다. 나로서는 손으로 문제를 만드는 일이 처음이었다.


함께 참여한 선생님과 몇차례 의논을 하고 일부 수정했다.





 컴퓨터로 옮기고 출력한 시험지를 지역 교육청에 넘겼다. 파일로 보내면 되지 왜 출력을 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여기선 파일 채 넘겨주면 이를 편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항의 전화가 온다. 출력한 시험지를 한 문제씩 잘라서 깨끗한 a4 용지에 풀칠을 해 붙이고, 다시 복사를 뜨면 깨끗한 시험지가 완성된다.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이 동네에서는 이렇게 작업을 한다. 심지어 수도에서 고등학교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



 1학기에 시험지가 엉망이라며 누군가를 불쾌하게 했고, 누군가와 설전을 벌였고, 누군가를 비난했다. 덕분에 2학기에 들어 직접 시험 문제를 출제할 수 있었다. 잘하는 짓인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내 딴에는 오류를 교정하려는 노력이므로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 자체 시험지도 아닌 지역 내 모든 학교에 뿌려지는 시험지이기 때문에 이 시험지를 보는 학생은 수천 명 선이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고맙다고 말하는 이 없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동료 교사들은 낯선 외국인이 물을 흐린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윗부분 까지가 두 달 전쯤 써두었던 글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시험지가 잘 뿌려졌을까?

 전혀.


 보지도 못한 엉뚱한 시험문제가 학교로 왔다. 내가 만든 문제는 단 한 개도 포함되지 않았다. 새로 온 시험지가 제대로 만들어지기라도 했으면 덜 화가 날 텐데, 새로 온 시험지는 오류 투성이었다. 50개 중 16개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그중 4개는 오답을 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풀 수 없는 문제도 3개나 있었다.


 하... 이젠 좀 지치는 것 같다. 3학기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의 게으름과 무능력함을 바라보며 사람은 쉽게 고쳐 쓰지 못한다는 걸 아프게 깨닫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를 고민했던 1학기와 2학기를 뒤로 하고, 발전은 커녕 제자리걸음만 치는 것 같아서 나부터 자괴감을 느낀다. 적당히 손을 놓아야 할지, 아니면 깨진 독인 줄 알아도 계속 채워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몰레뽈롤레는 오늘도 화창하지만, 내 마음은 시궁창.






https://youtu.be/RUHtXiSCNPM



https://kopanobw.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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