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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Jul 02. 2019

70명 데리고 수학 수업해보셨습니까?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데, 진 빠지는 건 사실.

 요즘 학교에서는 교실 공사가 한창이다. 덕분에 한 학년 당 절반의 학급 정도는 야외 수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5학년을 가르치고 있고, 5학년에는 4개 반이 있다. 2개 반은 야외 수업 2개 반은 실내 수업을 하는 중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학교는 각 교사마다 한 두 개의 과목을 전담하여 지도한다. 담임이 따로 있고, A교사는 수학과 과학을, B교사는 영어와 세츠와나를, C교사는 윤리와 사회를 담당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시간표에 따라 각 교실로 이동하는데, 지금은 교실이 절반밖에 없두 개 반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한 학급에 30~35명 가까이 되므로 거의 70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셈이다. 교실에 들어서면 냄새부터가 다르다. 평소에도 잘 안 씻는 혹은 잘 씻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교실에 들어서면 썩 좋지 못 냄새가 나기는 했다. 이제는 두배가 되었으니, 공기의 밀도부터 다르고 냄새가 훨씬 세다.

동글동글 귀여운 두상이긴 하지만, 며칠 안 감았는지 냄새는 좀 난다,




다행인 건 한 번에 두 배가 되는 학생을 가르친다고 해서 두배로 힘든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두 명의 담임교사들이 한 교실에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학생들은 더 조용히 하는 편이다. 찍소리 했다간 회초리를 맞기 때문이다. 각 반 담임이며 보조교사 2명에, 나까지 있으니 좁은 교실에 선생만 5명이 있는 꼴이어서 교실에는 더 깊은 정적이 흐른다. 70명의 시선에서 쏟아지는 약간의 압박감 교사로서 나쁘지 않다.


정말 꽈악 찬다.
다행인건 수업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각형의 이름을 가르치는 오늘 수업에서 마름모, 평행사변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을 가르쳤다. 욕심 같아서는 각 도형의 포함관계를 가르치고, 각 사각형의 정의를 가르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궁극적으로는. 하지만 내 아이들 상당수는 부진이고, 이런 걸 가르치다가는 기본도 못 건진다. 그저 시험에 매번 나오는 대표적인 모양(?)만 숱하게 그리게 하고 '시험에 이거 나오면 이거라고 써라'라고 가르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선생 양심에 이럴 수는 없다고 저항했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현실에 맞는 수업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비슷한 맥락에서 요새는 기출문제를 카드에 적어서 매일 두 개씩 풀게 하고 있다.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와 답을 외우기만 하면 정답을 맞힐 수 있다. 비슷한 유형이 반복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똑같은 문제가 보기도 안 바뀌어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가 지역 내 22개 학교 중 21등을 했다는 점, 우리 지역의 SES(socio economic status)가 낮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우리 학교 학업 성취도는 결국 보츠와나 전국 최하위권이라고 본다. 바른 이해와 깊이 있는 이해로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것의 가치는 분명하지만, 꼼수를 써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고, 그것으로 학업에 대한 효능감을 키우는 것 역시 상당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본다.

도화지를 오려 문제 카드를 만들었다.
기출 문제를 카드에 적어 매일 두개씩 풀게 한다.




학업에도 심리적 자본이 있다고 본다.

 대학원에서 '긍정조직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관심을 가졌던 주제 중 하나가 '심리적 자본'이었다. 본래, 심리적 자본은 Luthans 나 Seligman 교수 등이 주로 기업 맥락에서 '직장 내 긍정심리학'으로 연구한 개념이다. 직장 구성원의 심리 상태가 곧 자본일 만큼 구성원의 심리 상태 혹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 골자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긍정 심리적 자본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된다. 차례대로 `희망(Hope)`,  `효능감(Efficacy)`, `회복력(Resilience)`, `낙관주의(Optimism)`등이다. 각 구성요소가 모여 `긍정심리자본`이 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상당히 주목을 받은 개념이어서 기업 쪽 연구에서는 구성원들의 이 요소를 측정하고 이것이 조직의 생산성을 얼마나 예측하는지 수치화된 통계치까지 제안하고 있다.

  *물론, 이는 성급한 시도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기는 하다. 교수님도 회의적이셨고...


 다만, 내가 공부한 바로는 심리적 자본이 학교나 교육 상황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학교라고 적용되지 않겠는가. 오히려 더 일찍부터 학습 동기, 효능감, 학업적 회복 탄력성 등 교육학 내에서 꾸준히 연구된 개념들이다. 단지, 장사를 잘하시는 몇몇 교수님들에 의해 패키지로 잘 묶여 크게 히트를 친 것은 아닌가 싶다.


 내 학생들이 초등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효능감을 키워 주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지 교사들은 윽박을 지르고, 다그치기만 하니 성적 향상은 고사하고 애들 기만 죽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업이나 똑바로 하시던가... 앉아서 5분 만에 설명을 마치고 칠판에 교과서를 베껴 놓고는 '너네도 이거 베껴라'가 하는 일의 전부다. 하... 이런 불평불만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쨌든 바른 개념,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최우선의 목표다. 하지만, 약간의 꼼수를 부려서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받게 하는 것이 이 친구들에게는 꼭 필요해 보인다. 학업에 대한 효능감이 바닥을 긴다. 어려운 개념이 아님에도 낯선 것은 이해하려고 들질 않는다. '난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너무나 부족하다.

 지난 1학기에는 학업 부진의 심각함에 충격을 받고는 기초부터 다져주려고 애썼다. 이를 테면 분수와 분수의 덧셈을 가르치는 게 오늘의 학습 목표지만 통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약수를 찾고 공약수를 찾는 일부터 가르치는 식이었다. 이렇게 기초를 다져나가면 결국엔 정규 커리큘럼을 따라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2학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이건 불가능한 계획임을 깨달았다. 이 친구들은 너무나 뒤처져 있고, 학습 속도는 너무나 더뎌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이렇게 기초를 다지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 학습 내용도 이해 못하는데 어떻게 고학년에 올라가서 공부를 이어가겠나. 늦더라도 어쩔 수 없이 완수해야만 하는 과제다.


 다만, 이제는 조금 유연해지려고 한다. 기출문제가 보기 순서까지 거의 매년 반복되는 걸 확인하고, 교사로서의 양심(?)을 살짝 놓았다. 요즘은 수업 끝 부분마다 기출문제를 외우게 하고 있다. 이번 학기 중반부터 시작해 꾸준히 두 문제씩 풀게 하고 있다. 이해를 못 하면 답이라도 외워서 찍게 하려는 심산이다.


 곧 시험이다. 꼼수가 빛을 볼지 지켜보겠다. 이게 성공하면, 적어도 이 친구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공부를 하니 성적이 오르는구나', '나도 성적을 올릴 수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신념이 조금은 생기리라 믿는다.


 깊이 있는 이해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도전해 보자.


관련 영상

https://youtu.be/T5P3d8uNfDk



블로그

https://kopanobw.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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