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파노 Jun 18. 2019

자전거를 타다 코끼리를 만나면?

코끼리의 나라 보츠와나에서 자전거를 타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보츠와나의 상징은 코끼리여야 한다.

 전 세계에서 코끼리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곳이 보츠와나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있는 코끼리 중 2/5가 보츠와나에 있다는 통계치도 있다(어떤 데서는 1/3이라고도 하더라). 육상 동물 중 최대, 최강이라는 코끼리는 한 나라의 상징으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보츠와나는 얼룩말을 국가 상징으로 삼고 있는데, 어째서 얼룩말을 선택했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못했다. 검색을 해도 잘 나오지 않고, 동료 교사나 교장선생님 등께도 여쭤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보츠와나 국가 상징이다. 맛 없는 얼룩말 따위. 난 코끼리가 더 좋더라.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라는 동요 가사는 코끼리의 독특한 신체 구조를 잘 짚어낸 구절이다.

 이 노래가 유명한 만큼 한국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코끼리의 독특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 이래'라고 흥얼거리는 와중에도, 코가 손인 동물은 매우 희소하다는 점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코가 손인 동물이 또 있던가?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범주 내에서는 없는 것 같다. 코가 발달한 짐승은 개를 포함해 정말 많다. 하지만 코를 손으로 사용한다니, 코끼리의 코는 정말 독특한 사례다. 냄새를 맡고 숨을 쉬는 기능 말고 또 다른 기능들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런 경우가 또 있던가? 이것 말고도, 어마어마한 덩치와 높은 지능, 강한 모성애 등 코끼리만의 독특한 특성이 많다.


보츠와나가 코끼리 천국이 된 지는 오래지 않았다.

 보츠와나 정부의 상당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코끼리 천국이 되었다고 한다. 현 대통령 말고, 전 대통령까지 코끼리를 보호하는 일은 국가적 사업이었다. 사냥은 당연히 금지되어 있었고, 사파리 하러 갔다가 코끼리 사체 중 일부를 갖고 나오기만 해도 처벌했다. 외국의 동물 보호 단체와 협력해 밀렵꾼들을 추적하고 소탕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이 덕에 지난 몇십 년 간 보츠와나 내 코끼리의 개체 수는 급증했고, 지금은 독보적인 개체 수를 자랑한다.

 문제는 현 정부가 얼마 전 코끼리 사냥을 허가했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코끼리 개체 수가 지나치게 늘어서 생태계에 불균형을 가져왔고, 인근 주민들이 인명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코끼리가 농작물을 망쳐 경제적 피해도 막심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동물 보호 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체 수가 지나치다고 판단할 근거가 빈약하고, 현 대통령이 농민층의 인기를 얻어 재선을 노리는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보츠와나 내에서도 코끼리 때문에 사람이 죽는데 사냥을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과 코끼리는 보츠와나를 먹여 살릴 관광자원인데, 이를 사냥해서는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 등 의견이 많이 엇갈리는 모양이다.

 한편, 아래 표에서는 critical poaching level이 8을 넘어서면 코끼리 개체 수가 줄어든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번 사냥 허가 조치로 8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개체 수의 감소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정책의 변화가 보츠와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좀 더 기다려볼 일이다.

출처: https://www.statista.com/chart/15345/elephant-poaching-in-botswana-shoots-up/







 이런 말을 늘어놓으려고 글쓰기를 누른 게 아니었는데... 아, 그래. 보츠와나에선 자전거를 타다가 코끼리를 만날 수도 있다. 카사네와 마운에 특히 코끼리가 많은데, 지난 방학에 이쪽을 여행하다 자전거를 탄 채로 코끼리를 만난 일이 있었다.


카사네와 마운에 코끼리가 특히 많다.

 보츠와나에 코끼리가 많다고 해서 온 천지에 코끼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 근처에는 코끼리가 없다. 아직도 '야, 너네 집에서 창문 열면 사자 보이냐?'라고 묻는 몰지각한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만, 그런 일은 없다. 보츠와나의 북쪽, 그러니까 오카방고 델타가 있고 초베 국립공원이 있는 쪽에 코끼리들이 많다. 덕분에 지난번 카사네와 마운 쪽으로 여행을 갔을 때 코끼리를 실컷 봤다.

저 뒤에 다 코끼리다
초베 국립공원에서는 차를 타고 사파리를 할 수도 있고, 배를 타고 할 수도 있다. 둘 다 동물 실컷 보기 좋으니 둘 다 추천합니다.
비 오는 날 보트 사파리를 하게 되었는데, 폭우를 배경으로 우람하게 서 있는 코끼리는 장관이었다.
가까이서 코끼리를 만나면 딱 이런 느낌이다. 코끼리는 결코 귀엽지 않다.



자전거를 타다가, 코끼리를 만나면?

 까불면 안 된다. 운전을 하다가도 코끼리가 보이면 멀찌감치서 깜빡이를 켜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경적을 울릴 수도 있고, 차를 들이 밀어 위협을 할 수는 있겠다. 그다음 상황을 장담하지 못할 뿐이다. 절대 자극하면 안 된다.

 보통 새끼를 옆에 둔 엄마 코끼리가 제일 위험하다고 한다. 보호 본능이 강해서 조그만 자극에 쉽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위험한 유형은 혼자 있는 코끼리다. 아니다, 가장 위험한 유형이 혼자 있는 코끼리다. 왜냐면 코끼리들은 무리 지어 생활을 하는데, 코끼리가 혼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문제가 있어 쫓겨났거나 길을 잃었거나 등등의 이유로 이미 '깊은 빡침'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공원 깊숙한 곳에 사는 코끼리가 사람 사는 곳 가까이 왔다는 것 자체가 뭔가 불안한 녀석들이다. 위험을 무릅쓸 만큼 몹시 배가 고프거나, 무리에서 쫓겨났거나, 길을 잃었거나 등 사람에게 호의적인 상황이 아니다.

 새끼를 옆에 둔 어미가 가장 위험하다는 건 공원 깊숙이 들어가 코끼리 무리를 만났을 때나 하는 얘기다. 이때는 보통 전문가를 대동하고 있고, 무리를 지은 코끼리 자체가 워낙 위협적이기 때문에 가까이 갈 엄두를 내는 사람은 없다. 고로, 가장 위험한 놈은 도로가에 혼자 있는 코끼리다.

코끼리가 횡단하는데 방해하다가는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다.


차를 타고도 위험한데, 자전거를 타고 코끼리를 만나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쫓아와도 도망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거리를 두고 기다려야 한다. 코끼리는 상당히 무서운 동물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나 귀엽지,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거대한 덩치 하며, 거뭇하고 주름진 피부까지 결코 귀엽지 않다. 코끼리 눈에 난 속눈썹 조차 무척 억세 보이고 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코끼리를 가까이서 봐야겠다는 욕구는 잠시 사그라들 것이다.


 지난 카사네 여행 때 자전거를 챙겨가서 틈틈이 자전거를 탔는데, 코끼리의 천국답게 도로가에서 코끼리를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보츠와나 하늘은 푸르고 예뻤다. 이때만 해도 길가에서 코끼리를 볼 줄은 몰랐지.


이렇게 거대한 똥을 싸지를 수 있는 건 코형 밖에 없다.
코끼리를 만나면 멀찍이서 숨 죽여 기다리도록 하자.


운전을 하든, 자전거를 타든, 코끼리와 조우하면 숨 죽이고 기다리도록 하자. 지는 싸움은 안 하는 게 상책이다.



https://youtu.be/TpCaMAhJGPE


https://www.youtube.com/watch?v=my6HCnq3tZ0


블로그

http://kopanobw.blogspot.com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