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파노 Sep 12. 2019

보츠와나를 색으로 말 해 보자.

하늘색, 갈색, 보라


 오늘은 보츠와나의 색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한국의 하늘도 이렇게 맑으면 좋으련만...


 디자이너나 화가처럼 색에 민감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중이 지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색을 감지하고, 더 구체적인 이름으로 색을 구분 짓는다고 들었다. 이들과 거리가 먼 나는 색에 민감하지 못해서 바다도 파란색, 고등어 껍질도 파란색, 경찰차도 파란색이라고 부른다. 파란색에 흰색이 적당히 섞여있으면 '그건 하늘색이야'라고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복잡한 이름을 써 가며 파란색을 말하는 경우는 적다. 그러니 내 심상에 맺힌 색을 무엇이라 설명한다 한들 그 색이 타인에게도 분명하게 떠오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실체가 없는 주관적인 인식일 뿐이고, 그 주관적 인식을 부족한 언어로 설명하는 것일 뿐이니, 오늘 하는 이야기들은 얼럴뚱땅 뭉개지고, 경계가 불분명한 것들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두 가지 색으로 간추릴 수 없는 복잡한 대상에 대해서도 한두 가지 색으로 간추려버리는 과감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국의 색이 어떻다는 둥, 서울의 색이 어떻다는 둥 떠들어 대는 것도 그렇고, 스마트폰용 필터 앱에 도쿄, 파리 같은 도시의 이름이 인기리에 다운로드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상당히 추상적인 작명 센스인데 이걸 보고는 사람들은 또 공감을 하는 것 같다. 또, 마블 영화에서 각 영웅들은 자기만의 색을 갖고 있었고, 인사이드 아웃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각 감정은 자기만의 색상을 갖고 있었다. 감정에는 색이 없는데도 우리는 색만 보고도 그 감정의 이름을 알아맞출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색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은 공감대를 얻기는 쉬우나 본질적으로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도대체 무슨 색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서울은 무슨 색으로 표현할 것인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 낸다. 나의 경우 서울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채도가 낮은 하늘과 칙칙한 빌딩들 덕에 회색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서울에 어디 회색빛뿐이겠나. 야경을 생각하면 주황과 노랑이고, 관악산과 북한산을 보면 초록이다. 지하철역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대체로 검은색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들 중에 검은 옷을 위아래로 입은 색은 아주 드문 편이다. 오히려 한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화려하고 과감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은데, 도대체 검은색이라는 이미지는 어디서 얻어온 것인지 모르겠다.


 눈으로는 빤히 다른 색을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엉뚱한 색을 추출해 내니 당연히 오류를 포함할 수밖에.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을. 그러니까 오늘은 조금은 무책임하지만 보츠와나에서 몇 가지 색을 추려본다.




하늘색

보츠와나의 국기

 첫 번째는 단연 하늘색이다. 보츠와나의 국기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이 색은 과연 보츠와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 국기가 걸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도로가의 쓰레기통에도 국기를 형상하는 색이 입혀져 있다. 학교에도 벽면에는 큼직하게 보츠와나 국기가 그려져 있고, 건물 곳곳에도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몰레뽈롤레 교육청 출장 갔다가 찍은 사진. 공공 기관의 건물 벽에는 이 그림이 꼭 하나씩은 있다.
언제나 맑음.


 2년인가 3년 전에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60주년을 맞아(식민지가 아니라 보호령이었다), 마을 곳곳에 국기에 사용된 색들로 페인트 칠을 했다고 했다. 심지어 돌무덤 같은 것을 쌓고는 거기에 흰색과 검정, 하늘색으로 페인트를 칠했다고 한다. 덕분에 하늘색 페인트가 품절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흰색이나 검은색과 달리 하늘색은 물량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보츠와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색에 특별한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하늘색 비슷한 것을 보면 보츠와나의 국기가 떠오른다. 이를테면 지나가는 자동차가 하늘색이면, '아, 보츠와나 국기색이네'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국기에서 하늘색은 비(뿔라)를 상징한다고 한다. 뿔라라는 낱말은 기본적으로 비를 뜻하지만, 행운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돈이다. 한국의 화폐단위는 '원'이고, 보츠와나의 화폐단위는 '뿔라'다. 뿔라에는 만세라는 뜻도 있어서, 큰 야외 행사의 막바지에선 '뿌울라!'를 외치고 마무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아침 하늘.
학교 운동장


 푸른 하늘은 정말이지 일관되다. 비가 오는 날도 드물고, 흐린 날도 적기 때문에 대낮의 하늘은 매일 푸르다. 한국에서도 날씨가 맑은 때는 파란 하늘이 예쁘지만 '오늘 하늘 예쁘다' 하고 감탄하던 날은 며칠이나 되었던가? 취미로 달리기, 자전거, 등산 등을 즐겨하는 만큼 누렇거나 뿌연 하늘을 보고 계획을 취소해야만 했던 날이 많았다. 어렸을 때는 비만 안 오면 나가 놀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비가 안 와도 대기질 예보를 확인하고 나가야 하니 번거로운 것이 하나 늘었다. 물론, 보츠와나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커튼을 살짝 젖혀보고 밝으면 그냥 나가면 된다.




갈색

 하늘이야 세계 어딜 가든 비슷하겠지만 바닥은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한국 안에서도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된 곳, 시멘트로 무성의하게 포장된 곳, 고운 모래가 가득한 해변, 부엽토로 폭신한 등산로 등 바닥의 색은 천차만별이다.

출근길.


 그럼 보츠와나는? 포장도로가 아니면 모래 밭이다. 바싹 마른 모래 색이라고 해야 할까? 어딜 가든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면 밝은 갈색이 지배적이다. 비가 드문 나라다. 오죽하면 비(뿔라)가 곧 돈이며, 행운이겠나. 덕분에 모든 것이 건조하고, 바닥엔 모래 천지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모래 밭이다. 출근이라도 하려면 아스팔트가 깔린 큰길까지 나가기까지 한참을 모래가 수북한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한다.

발이 백개라 센티 핏이라 불리는 벌레.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레렌틀레


 우연찮게 같이 살게 된 개에게도 모래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많이 컸다. 쪼꼬미였는데...


 츠와나 개(tswana dog)라고 하는 종으로 남부 아프리카에 널리 사는 토종개다. 보츠와나를 포함해 남아공, 짐바브웨 등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모래는 똥개다. 아직 어려서 잘 뛰지도 못하던 시절에 어쩌다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오더니 그 길로 눌러앉아 버렸다. 스테이크를 구워 먹고는 환기를 하겠다고 현관문을 열어 두었는데, 겁도 없이 거실로 들어와 먹다 남은 고기를 얻어먹었다. 낮잠까지 자길래 저녁이 되면 쫓아내야지 했던 게 시작이었다. 거실에 똥을 싸지르길래 소리를 질렀더니 무서워서 도망은 가도 문 밖으로는 나가질 않았다. 현관문 밖에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갔더니 거기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동네에 큰 개들이 많아 물어 죽이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 거실로 들였다. 그렇게 벌써 6개월째 같이 살고 있다.

얜 도대체 왜 여기서 자는 거야 싶었는데, 이렇게 눌러앉았다.
모래 컬렉션. 뼈들도 누렇게 갈변했다.

 얼마 전에는 학교 내 관사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굶어 죽어 가는 개가 있어 데려왔다. 사실 한 마리를 먼저 데려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혈변과 구토를 하고는 30분 만에 죽었다. 다음 날 학교를 떠돌던 이 놈을 데려왔다. 4남매 중 둘은 일찌감치 죽었고, 하나는 우리 집에서 죽었고, 나머지 이 놈만 살았다. 성깔이 있는 놈이라 '욘두'라고 부르기로 했다.

욘두




보라색

 한국에서도 해 질 녘은 예쁘다. 불타는 석양이라느니, 환상의 노을이라느니 한국인들도 모두 다 아는 것들이다. 하지만 건물에 가려서 혹은 산에 가려서, 바다나 산에 가지 않으면 온전히 감상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운 좋게도 여기는 사방이 탁 트여있고, 산도 없는 동네라 한국의 석양과는 확연히 다르다. 보라색이 특히 도드라지는데 남색과 노란색으로 기억하는 한국의 해 질 녘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해가 질 시간에 맞춰 개들과 산책을 간다. 산책이랄 것 까지는 아니고 앞마당에 잠시 나가 어슬렁 걷다 오는 게 전부긴 하다. 밤에 나가면 위험한 동네니까. 해가 땅에 가까워지고, 저 멀리 언덕 너머로 해가 조금씩 모습을 감출 때, 해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어두워졌을 때 하늘은 분홍과 보라 사이의 어떤 색으로 물든다. 평소에도 보라색을 좋아했던 만큼 보라 빛으로 물든 하늘은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매일 한 번 찾아오는 시간이지만 매번 짧아서 아쉬울 정도다. 하루에 30분도 채 즐길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하늘이 핑크 빛 보라 빛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건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바로 달이 뜬다.

이건 보라가 아니라 검정이려나?





   정리를 해 보니, 보츠와나의 색으로는 3가지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8개월 가까이 살며 형성된 이미지이니 이곳에 살아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보츠와나는 아직도 낯선 나라인지라 '내가 살던 곳은 어땠는데, 여기는 어떻구나'라는 생각이 매일 새롭다. 색깔마저도 새롭게 보였도 이번 주 상념들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http://kopanobw.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watch?v=OJxgcyVzuwk


이전 09화 죽음의 민낯, 한국에는 없고 보츠와나엔 있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