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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Oct 29. 2019

천둥 번개가 치면 설레는 이유

6개월째 비가 안 온다.

 이제 10월 중순. 몰레뽈롤레는 오늘도 조용하다. 보츠와나에서는 3번째로 큰 지역임에도, 한국으로 치면 '읍'이나 '리' 정도 되는 규모밖에 안되기에 오늘도 따분하다. 해외 파견을 준비하며 어느 나라를 갈 것인지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보츠와나로 지원해 선발된 이후 지역에 대한 선택권은 전혀 없었다. 1월 출국을 앞두고 11월인지 10월인지 느지막하게 발령지를 통보받았을 뿐이었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3번째이며, 마트가 3~4개쯤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마트가 아니라 동네에 있는 조금 큰 슈퍼마켓쯤 된다.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 만큼 한국이 추워지고 있을 요즈음 이곳은 햇볕이 아주 끝내준다. 너무 뜨겁고 건조해서 땀이 나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분명 땀이 날 것인데, 옷을 만져보면 뽀송하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어 빨래 통에 던져 넣다 보면 뒤늦게 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1월에 보츠와나에 처음 도착했을 땐 우기였다. 가장 더울 때 이기도 하지만 비가 많을 때이기도 했다. 해가 지면 낮 동안 데워진 공기가 응축했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길어야 한 시간, 짧으면 수 분 내로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쏟아져 도로가 삽시간에 잠겼었다. 몇 시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마르긴 했지만.



 10월인 지금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가는데 아직 비가 오질 않는다. 건조함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년 내내 건조한 나라지만 건조함이 극에 달했던 건 겨울이다. 그러니까 7월쯤, 습도계는 10% 미만을 가리켰다. 자고 일어나면 코가 아프고 혀가 바짝 말라 까끌했다. 한국에서 몇 년 동안 꾸준히 쓰던 로션을 챙겨 왔는데, 이걸 발라서는 얼굴이 당기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꾸덕한 바디 로션까지 얼굴에 한번 더 덧발라줘야만 했을 정도. 샤워를 할까 말까 망설일 만큼 피부가 건조했었다. 설거지와 빨래를 하느라 손은 매일 허옇게 터 있었고,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나기도 했다. 팔 안쪽이나 허벅지처럼 예상 못한 부분이 건조해져 거칠거칠하게 변하더니, 가려웠고, 벌겋게 부어 올라 따갑기까지 했다. 바디 로션을 치덕치덕 발라가며 가라앉히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8월, 9월, 10월이 되며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데 비는 아직 멀은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새는 구름이 보인다는 것. 7, 8월에는 구름 한 점 없을 만큼 건조했지만 요즘은 하늘엔 구름이 어지러이 떠 있다. 겨울보단 덜 건조해졌다. 습도계가 못해도 20%는 가리키게 되었다.

모래, 넌 코가 항상 촉촉하더라. 좋겠어, 코딱지 안 파도 되고.

 게다가 어젯밤에는 강풍과 함께 천둥 번개도 쳤다. 비가 올 것 같다! 비 좀 와라! 하고 어젯밤 마당에서 서성이며 센 바람을 맞아가며 나 홀로 기우제 아닌 기우제를 지냈다. 어쩌다 천둥 번개가 치는 걸 보며 기뻐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건조함에 대처하는 자세>


 1. 물수건

 퇴근하고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수건에 물을 적셔 널어두는 것이다. 얼굴 닦는 수건 말고 비치 타월 같은 걸 세장을 흠뻑 적셔서 널어놓는다. 이걸 자기 전에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몇 시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건 세 장이 모두 말라버리기 때문.

 보츠와나라는 나라에서 습도계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습도계를 팔만한 매장이란 매장은 모조리 모두 뒤졌지만 결국 사지 못했다. 그러다 여행을 갔다가, 정말 뜻하지 않는 곳에서 습도계를 발견하고는 바로 결제해 버렸다. 40% 정도는 되어야 쾌적하다고 하는데, 40%를 넘기는 건 어려웠다. 비치 타월을 널어 두고 빨래 건조대까지 동원해야 40%를 간신히 넘었다. 매일 빨래를 하는 건 어려워서 매일 비치 타월 세장을 널어 두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2. 신발 털기

 온 동네가 모래 천지인만큼 신발에는 언제나 모래가 한가득이다. 개들과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서기 전 하는 일은 신발을 터는 일.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기 전에 하는 일도 신발을 터는 일이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양말을 벗어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고는 욕조에 올라서서 발을 헹군다.


 3. 로션

 한국에서 가져온 로션이 다 떨어졌다. 현지 매장에서 파는 걸 써야 하는데 한 번도 안 써본 것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에서 처럼 후기를 찾아본 뒤 구매할 수도 없었다. 일일이 하나씩 사서 써 보는 수밖에.

한국에서 쓰던 피지오겔 로션이랑 가장 비슷한 느낌이 났다. 내년도 이것만 믿고 간다.


  보츠와나 화장품 가게에서 느끼는 특이한 점이라면, 매트한 로션의 비중이 높다는 점. 현지인들과 우리의 피부 타입이 다른 건지 이곳에서 파는 대부분의 로션은 피부를 당기게 했다. 사놓고 몇 번 발라보고는 피부가 더 땅겨서 도저히 쓰지 못하고 버린 로션들도 몇 있다.




 열 달쯤 살아보니, 뿔라(pula, 비(rain))가 왜 화폐단위로 쓰이는지, 왜 행운이라는 의미로까지 쓰이는지 알겠다. 심지어 보츠와나에서는 만세 삼창 할 때 '뿔라'라고 외친다.

 보츠와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이 매우 드문 편이지만, 베시헤드 라는 분의 소설만큼은 국제적으로도 그 지위를 인정받는 편이다. 그녀의 작품 중 '비구름이 모일 때'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는데, 한국인의 정서로는 '비구름이 모인다고? 뭔가 불행한 일이 벌어지겠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이겠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제목은 희망적인 미래가 도래할 것임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여기서 비가 온다는 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인 것이다. 그만큼 비가 귀하다. 어째서 비가 온다는 게 희망이며 축복인지 이제는 알겠다.

 그러니까... 비 좀 와라! 어떻게 6개월째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리는 거냐.... 요즘 코가 아플 지경이다.




http://kopanobw.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watch?v=pfLksBfs9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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