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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Aug 24. 2019

죽음의 민낯, 한국에는 없고 보츠와나엔 있는 것.

집에서 소와 개가 죽었다.


 한국에는 있지만 보츠와나에 없는 것이라고 하면 대체로 없어서 불편한 것들을 꼽게 된다. 스타벅스, 베이커리, 빠른 인터넷......

 반대로 한국에는 없지만 보츠와나에 있는 것들도 있기 마련인데, 몇 가지를 차례로 적어보려고 한다.



<한국에는 없지만 보츠와나에 있는 것, 죽음의 민낯>


#1

 장 보러 가는 길에 무언가를 보았다. 길 한복판에 큼직한 무엇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죽은 송아지였다. 머리통이 배구공 크기쯤 되었을까, 길바닥에서 눈도 감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

 비포장 도로이기는 했지만 제법 차가 다니는 길인데, 어째서 여기에 쓰러져 있는지 의아했다. 차에 치어 죽었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가스가 터져 나온 건지 장기들이 항문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어제도 차를 타고 이동했던 길인데 하루 저녁만에 이렇게 부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어딘가에서 죽고 방치되다가 여기로 옮겨진 것 같아 보였다. 주변 목장에서 죽은 뒤 차로 옮겨지다가 차에서 떨어져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모래, 손대지 마.


 사람들이 꽤 다니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내일이면 나도 이용해야 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큰 사체가 현관에서 빤히 보인다는 점도 신경 쓰였다. 누군가 치우겠지 싶었지만 이렇게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어쩐지 미안한 일이었다. 내가 미안해할 까닭은 없는데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 위생장갑을 꺼내 들고 다시 나왔다. 앞뒤 다리를 붙들고 질질 끌었다. 멀리 끌고 가기엔 너무 무거웠고, 이미 죽은 동물에게 손을 댄다는 게 썩 기분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길가 담벼락으로 빠짝 붙여 놓고는 바로 장갑을 벗었다. 소독약으로 손을 씻었고, 비누로도 또 씻었다. 손을 씻으며 이렇게 두면 동네 개들이 뜯어먹겠지 싶었다. 작은 개들도 뜯어먹게 칼로 사체를 갈라두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엽기적인 모습일 것 같아 상상으로만 그쳤다.



 다음 날 송아지는 그 자리에 누운 채 배와 엉덩이가 뜯겨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검게 마른 거죽만 남았다. 이제는 한 달쯤 지났을까 흔적 없이 사라졌다.





#2

 학교 울타리 내에 관사가 5채쯤 있는데, 각 관사에 사는 동료 선생님들은 개를 키운다. 적어도 한 집에 한 마리, 많게는 4~5마리까지도 키우곤 한다. 개가 많은 경우는 다 성견이지는 않고, 두 마리가 짝을 짓고는 새끼를 낳은 경우들이다. 개는 새끼를 보통 4마리 이상은 낳는다고 하던데, 1~2마리를 남겨놓고는 누군가에게 분양 보내거나 장에 내다 파는 것 같아 보인다.

 그중 한 집에, 교무실에서 가장 가까워서 창문을 열면 내다 보이는 그 집에 개가 새끼를 낳았다. 2학기에 새끼를 낳았으니 이 강아지들은 4개월쯤 될 것이다. 총 4마리를 낳았는데, 어미 개가 젖 물리기를 거부할 만큼 크자 개 주인은 2마리를 남겨두고 2마리는 자기네 케틀(소 목장)로 옮겨놨다고 했다.

젖먹이 시절에는 모두 통통하고 건강했다.
쉬는 시간마다 쪼르르 가서 놀았던 녀석들인데.


  

 관사에 남은 2마리의 새끼 개들은 젖을 떼자마자 갈빗대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비쩍 골았다. 한창 젖을 잘 먹을 때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더니 어쩐지 빠르게 말라갔다. 개 주인은 그러니까 동료 교사는 개밥을 제때 챙겨주지 않는 것 같았다. 방학이 지나고 학교에 다시 와 보니 2마리 모두 바싹 말라 있었다. 날이 갈수록 개들은 말라갔다.


 3일 전, 한 마리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거나 만져도 짖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불쾌한 냄새가 났고, 귓속에는 진드기들이 새까맣게 들어 차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데려다 키우겠다 말하고는 종이 상자에 개를 담아 집으로 데려왔다. 우유를 억지로라도 먹여야지 싶어서 주사기 없는 바늘을 사고, 분쇄 고기와 소 간을 샀다. 모래가 가장 좋아하는 게 소 간이라 소 간을 잘라주면 먹겠지 싶었다.

건드려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죽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이 개는 차에 혈변을 봤다. 설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색이 검붉었고, 비릿한 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하는 동시에 불길한 예감을 주었다. 현관에 내려놓고 우유를 그릇에 따라 주었다.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간 고기며 소 간을 코 앞에 두어도 코를 몇 번 움찔할 뿐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주사기에 우유를 담아 입에 흘려 넣어주어도 반대쪽 입으로 흘러나왔다. 자꾸만 쓰러지는 몸을 억지로 세웠다. 벽에 기대어 서게 하고 고개를 위로 들게 했다. 어미젖 빨 때 모습을 갖추게 하고는 주사기에서 우유를 천천히 흘려보냈다. 꼴깍꼴깍 소리를 내며 삼켰다. 그래도 삼키긴 하는 구나하고 약간은 안심을 했는데, 손을 놓자마자 코부터 땅에 처박으며 고꾸라 졌다.

 설 힘 조차 없는 바싹 마른 개에게 휴식을 줘야 하나 음식을 줘야 하나 고민했고, 우유를 더 먹이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사기로 두세 번 우유를 먹였으니 20ml쯤 먹은 것일까. 숨소리가 더 커졌고, 낑낑대는 소리도 냈다. 뭐라도 먹으니 기운이 나는가 보다 했다. 마지막으로 먹여야지 하고 개를 일으켜 세우는데 오줌을 지렸다. 색이 너무나 진한 것이 혈뇨가 아닐까 싶었다. 가망이 없구나 싶었고, 우유 먹이기를 포기하고 다시 눕혀 놓았다. 잠시 장갑을 갈아 끼우러 방에 들어갔다 나온 사이, 정말 1분도 안 되는 사이, 개는 혈변을 쏟은 채 죽어있었다.

 우유를 먹어서 기운이 난 게 아니라 억지로 무언가를 먹어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몸은 우유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괴사한 장 조직이 우유와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내 무지가 개를 죽인 것일까 싶어 괴로웠다. 더 일찍 데려오지 않은 게 후회되었고, '당신네 개 어제 죽었어'라고 말해도 신경 쓰지 않을 개 주인을 생각하며 화도 났다.

 생명이 있음과 없음은 표정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진 뒤 잇몸을 드러내고 입을 벌린 채 쓰러져 있는 개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개를 담아온 박스와 개를 만진 장갑, 주사기 등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멀리 내다 버렸다. 개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한참을 걸어 부시로 들어가 봉투에서 꺼내 나무 밑에 버렸다. 이 쓰레기봉투도 둘둘 말아 멀리 내다 버렸다

 개가 흘린 피와 오줌을 물로 씻었다. 물청소를 하고 소독약을 뿌려가며 또 닦았다. 혹시나 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사망이라면 모래나 두키가 옮을 수도 있으니까. 한참을 청소했다. 씻겨나간 물을 핥아먹던 모래에게 심하게 소리를 질렀다.

 죽은 개의 마지막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고, 불쾌했다. 일찍 잠들고 싶었고, 술을 사다 마셨다. 나머지 한 마리, 그러니까 죽은 이 개의 남매를 데려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관사에 남아있던 나머지 강아지도 데려왔다. 이 놈도 비쩍 말랐지만, 제법 짖을 줄도 알고 우유며 고기며 주는 대로 잘 받아먹었다. 모래는 처음 왔을 때 사료가 단단해 먹지를 못했고, 그 덕에 소고기만 먹였던 기억이 있다. 이 놈은 사료도 잘 먹었다. 많이 굶주렸음은 엷은 뱃가죽으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면 주는 대로 쉬지 않고 먹었고, 쬐끄만한 주제에 더 큰 개한테 겁도 없이 짖어가며 제 밥그릇을 챙겼다.

너도 좀 더 일찍 데려왔어야 했나 보다.


 또 다음 날, 즉, 어제는 개를 씻기고 진드기를 잡았다. 이 놈도 귀에 진드기가 한가득이라 잡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물이 무서운지 징징대는 걸 고기로 달래 가며 씻겼다. 시커먼 땟국물과 털도 많이 빠졌다. 아마도 영양 부족인지 털이 푸석하고 풍성하지 못했다.

 모래도 그랬듯 소고기와 소 간을 사다 먹이니 잘 먹었다. 당분간 살이 오르고 덩치가 커질 때 까지는 잘 챙겨주려고 한다.

성깔이 제법 있고, 못생겼고, 턱에만 수염처럼 흰털이 나있어 욘두라고 부르기로 했다.




#3

 보츠와나에서 여행을 간다 함은 사파리를 하러 간다와 동의어인 경우가 많다. 보츠와나에도 유적지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실망스러운 것들이고 장거리 운전을 무릅쓰고 가야 할 까닭은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방학이면 대체로 사파리를 하러 가는데, 그곳은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인지라 동물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꼭 공원 내부로 들어가야만 죽음을 직면하는 것도 아니다. 사파리 가는 도중에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에서 내장이 다 파 먹힌 버펄로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길가에 죽어 있는 당나귀를 파먹는 새 떼며, 로드킬 당한 개와 염소들도 흔하다. 이때 여행객들은, 그러니까 우리들은 '아 역시 자연이야'라고 말하고는 한다.


 낳고,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누가 모르겠냐마는 한국에서의 나는 이 당연한 섭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았다. 어쩌다 로드킬 당한 개나 고라니를 보며 불쾌하다, 왜 빨리 안 치우냐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한국과 같이 발전한 나라에서 죽음을 처리하는 건 우리들과 동떨어져 있는 일이다. 죽음은 그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누군가에 의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집 앞에 죽은 소가 버려져 있고, 내 집 내 현관에서 개가 죽어나가니, 죽음 또한 우리 삶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죽은 소를 치우는 일처럼 해 본 적 없는 일을 하고 있자니 낯선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가도, 죽음에 대해 경건해지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도 싶다가도, 평소에 종교도 없고 그깟게 다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도 든다.

 죽은 소와 개를 보며 이들을 더러움과 질병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실용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면, 이런 행동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과 또 다를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이런 자각은 또 난 어찌 이렇게 무정한가?라는 자아비판으로 이어지는 등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한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낯설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겠지만, 요 며칠 죽은 개의 얼굴이 계속 떠 올라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날 술을 많이 마셨고 해도 지기 전에 잠에 들었다. 새로 데려온 개를 씻기고 잘 먹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지만 지 형제처럼 갑자기 똥오줌을 지리다 죽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세상 우울한 이런 글은 그만 쓰는 게 좋겠지만, 때때로 감정을 글로 풀어보면 도움이 된다길래 써 본다...... 효과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https://youtu.be/Vi2etzqGhZE


http://kopanobw.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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