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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Sep 30. 2023

어쩔 수 없는 우울과 불안

작가 지망생의 우울에 대하여

  나는 원래도 좀 우울한 인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박남정보다는 양수경을, 김원준보다 김현철을,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윤상을 좋아했다. 영화도 액션이나 코미디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같은 단조로운 서사를 선호했는데,  이런 취향이 우울의 증거는 되지 않겠지만 안으로 침잠하는 나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그 시절부터 우울과 불안의 그림자를 달고 살았단 것만은 확실하다.


  작가 지망생이 되기 전에도 자주 우울감을 느꼈지만, 망생이 되고 나서는 적금 통장에 월 납입금을 붓듯 정기적으로 우울이 찾아왔다. 공모전 결과 발표일보다 대략 2주 정도 앞선 기간. 그러니까 당선자에게 연락이 돌 무렵. 이번에도 안 됐구나, 또 안 됐구나, 나는 안 되는 인간이구나를 확인하는 시간.

  그 기분이 너무 개떡같아서 나중에는 응모 자체가 하기 싫어졌다. 어차피 떨어질 건데 투고는 뭐 하러 하나 하는 심정이 돼 버리는 거다. 언제고 당선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십 년을 기다려도 불안하지 않을 텐데. 당장 다음달에 데뷔를 한다 해도 현재의 나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2년쯤 전부터 그런 인간이 되었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면 불안과 우울이 본격적으로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안개처럼 스멀스멀, 사라지지도 않고. '아, 올해도 끝나가는구나. 이번에도 빈손이구나.' 하는 아쉬움과 남은 몇 달, 신춘문예를 비롯해 하반기 공모전에서는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뒤섞여서 더 안 써지고 더 못 쓰는 못난이를 만들어 낸다. 이제부터는 마음은 급한데 되는 건 없는 혼돈의 시간과 싸워야 한다. 그래도 이 우울은 원인도 있고 해결 방안도 있으니  착한 우울이라고 불러도 될까. '망생이' 이전의 우울은 밑도 끝도 없이 찾아와 속수무책으로 나를 버릊어 놓았지만, 망생이가 된 후로는 어찌되었든 쓴다. 울면서도 쓰고, 화를 내면서도 쓰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도 쓰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도 쓴다. 쓰다 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우울과 불안이 물러가 있다.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나는 실제로 가뭄 때 우울을 더 많이 경험하고, 반대로 비가 오는 날엔 이 세상 어떤 근심, 고민도 그리 대단치 않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비를 상상한다. 돌멩이로 먹구름을 터트려 이윽고 큰비를 내리는 상상 같은 것.  이제는 웬만한 장대비로는 안 되고 하늘이 폭삭 내려앉을 만큼 큰비를 상상해야 한다는 게 문제이지만. 그렇게 해도 평상을 찾을 수 없을 때면 물속에 들어가 오래 머무른다. 나에게 있어 수영은 운동의 측면에서보다 우울을 현저히 잘 '관리'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생존 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영인들 사이에서 '우울은 수용성'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져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인간 중 하나이다. 그래서 죽을 것 같을 때는 수영복을 챙겨서 수영장으로 간다. 세상이 나에게만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며 찔끔찔끔 눈물 흘리며 들어갔던 내가 '세상은 정말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면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얼마 동안 개인적인 이유로 수영장엘 못 가면서 고질적인 불면증도 심해졌다. 그 틈을 메워 보고자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했는데, 어째 신통치 않다.

  

  망생을 벗어나게 되면 이 지긋지긋한 우울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작가가 되어서도 기어이 우울의 망토를 덮어쓰고 있을 내가 그려진다. 그때가 되면 '왜 난 잘 나가는 작가가 안 될까' 혹은 '두 번째 책은 어떻게 내는 거지?' 따위의 이유를 붙이고 있을 테지. 서평을 읽고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그런 것에 비하면 망생이의 비애는 출판사나 독자와 얽힌 것 없이 지극히 내 마음만 다스리면 되는 일이니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내 방 창 너머로 기찻길이 보인다. 우울을 기차에 실어 되도록 멀리 떠나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절대로 왕복 열차여서는 안 돼.




                                              김김

                                                                                                                    우울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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