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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Sep 19. 2023

정말 9년 동안 떨어지기만 하셨어요?

9년 동안 공모전에서 낙방만 하고 있다고 하면 이런 질문이 돌아온다.

정말 작은 데라도 하나 붙은 거 없냐고.

상금이 없더라도, 아니 상금이 뭐야, 참가상이라도 받은 적 없냐고.


예, 없습니다.


이쯤되면 상대방의 얼굴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게 느껴진다.

이 정도 떨어졌으면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혹은,

정말 독하군, 하는.


다른 공모전은 모르겠는데, 동화는 공모전이 정말 많다. 이름난 굵직한 공모전만으로도 거의 매달을 채울 수 있다. 출판사가 아닌, 이러저러한 단체에서 주최하는 것까지 치면 훨씬 더 많다. 그러니까 어쩌다 한 번 있는 기회를 못 잡아서 세월이 가버린 건 아니다. 나 같은 경우, 두 달에 한 번 꼴로 응모하고 두 달에 한 번 꼴로 떨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동화를 쓴 건 아니었다. 시작은 소설이었다. 소설 역시 소설을 쓰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첫 소설을 썼을 때가 2015년. 이때는 그렇게 치열하진 않았다. 조금 진지한 정도랄까. 공모전이래 봐야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게 고작이던 시절이었다. 떨어진 이유도 명확히 알고 있다. 내가 쓴 소설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니, 자기가 써 놓고 자기만 재미있으면 어떡하냐고요. 퇴고하겠다고 펴놓으면 고칠 데가 없었다. 처, 천잰데?

2019년까지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고, 내 얘기는 남이 읽었을 때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게 증명된 거다. 내가 무슨 소설이냐, 관두자, 생각할 무렵 동화를 만났다. 소설을 쓸 때와 동화를 쓸 때 크게 달라진 게 있는데,


소설은, 쓸 때는 힘든데 읽을 땐 즐거웠다.

동화는, 쓸 때는 즐거운데 읽을 땐 괴로웠다.


아마 읽을 때 괴로운 건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였으리라. 이제 알게 된 것도 많고 눈은 한껏 높아졌는데 내 글이 거기에 못 미치니까 퇴고할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게 긍정적인 변화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내가 글 쓰는 걸 반대하던 남편은 가끔 아들 보기 창피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 질문에만큼은 당당할 수 있었다.


"아니. 안 창피해.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은, 엄마가 끝까지 노력했다는 것. 그걸 삶으로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꼭 해내는 모습도 보여 줄 거야."


그 말은 진심이었다. 첫 소설을 쓸 때 다섯 살이었던 길동이는 밤늦게까지 서재방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모습부터 당선을 알리는 전화일까 봐 전화기를 가지러 뛰어가다 넘어지는 모습, 기대했던 공모전에서 떨어져서 질질 짜는 모습까지 온갖 나의 추한 모습을 다 보면서 6학년이 되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너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가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제 중학생이 되어서 어떻게 해. 중학생이면 동화책 잘 안 볼 텐데." 하고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길동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자식이 초등학생이 될때까지는 되겠죠 뭐."라고 했다. 그래, 저거! 내가 우리 아들한테 저런 마인드를 물려줬다니까? 여보?


내년이면 글쓰기 제목도 바꿔야 한다. 10년째 떨어지기만 하는 작가 지망생의 수다로. 제발 그런 일만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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