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다는 말을 평소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역시 내 객관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시시각각 생각지도 못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 벌어지지도 않는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사람들, 평소답지 않은 리액션 등을 마주할 때 “귀여워!”라는 말을 가볍게 내뱉곤 한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느끼겠지만 정말 귀여운 모습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이제 초3인 첫째 아들마저도 귀여움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으니 이제 막 5살이 된, 실제로 네 돌도 안 지난 막내들은 귀여움을 뚝뚝 흘리고 다닌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귀엽다는 말은 덤이다. 그 표정 안에 사랑과 애정과 내 안의 모든 행복을 꺼내어 “귀여워!”라는 한 마디 말로 모든 것을 다 한다.
친구 중에 ‘귀여워!’라는 말을 달고 사는 친구가 있다. 그냥 모든 일상이 그 친구에게는 귀여운 일이다. 공감도 되지만 역시나 귀엽다는 표현을 모든 것이 써 버린다. 그렇게 귀엽다고 말하는 그 친구가 너무 귀여울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자녀들 모두 엄마와 같은 표정과 말투로 주변에 ‘귀여워!’라는 말을 흘리고 다닌다. 참 귀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흘리고 다니는 모습은 언제나 내 두 눈에도 귀엽기는 마찬가지다.
‘귀여운 순간들’을 고민하다가 최근에 본 책이 있다. 마스다 미리의 ‘귀여움 견문록’이라는 책을 찾아보았는데 순간순간이 귀여웠다. 기억에 남는 일은 고무줄이 귀엽다고 표현한 작가의 마음이었다. 한 번도 귀엽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노란 고무줄도 작가의 표현을 통해 귀엽다라도 단정 지어 버렸지만 귀여운 건 역시나 귀여운 거였다. 우연히 지나친 메론빵의 추억 또한 비눗방울처럼 방울방울 올라와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귀엽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만 그 안에 담긴 내 표정은 온 우주의 사랑과 애정과 행복을 품고 있다 생각해 본다면 사실 종종 만나는 그런 일상의 순간순간이 귀여움으로 가득 머금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귀여움 역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꽤나 위대한 결과물이라는 걸!
그래서 결론은 나의 그 위대한 결과물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같이 글을 쓰는 멤버인 상희님이 ‘남들이 몰라서 나도 모르는 거 같아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문득 친구가 “귀여워!”라는 말을 던지고 나면 ‘아… 그래? 귀여웠나?’하고 웃어 보일 수 있을 텐데 그렇다. 나는 나에게 한 번도 귀엽다고 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니까 사실은 내가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남보다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모닝 페이지는 왜 쓰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돌아본 오늘의 아침 풍경이 떠올랐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졸려서 뜨지도 못하는 우진이가 어기적어기적 이불을 가르며 내 옆으로 다가온다. 귀엽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한 이불을 덮고 이불속에서 나는 아이의 발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뽀뽀를 한다. 그렇게 이불속에서 아이와 함께 단잠에 빠져 30분을 자버렸다. 헐레벅떡 일어난 나는 푸석해진 머리를 쓸어내리며 노트와 펜을 식탁 위에 던져두고는 어제 먹다가 노란 고무줄로 꽁꽁 동여맨 과자봉지를 풀어 식탁 위에 나란히 올려놓는다.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이것저것 눌러 보지만 결국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아, 비행기 모드…” 그러며 정신 차리자고 마음을 다잡고 또 과자를 우물거린다.
펼쳐놓은 책에 마음이 닿질 않아서 일까? 하고 싶은 게 많아 서 일까?
오늘은 집중하지 못하고 손톱깎이를 찾아 어느새 길어진 손톱을 잘라내고 손을 깨끗이 닦고 와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탈탈 털어 넣고는 봉지를 버리러 갔다 오는 그 짧은 길에서 다시 아몬드 통을 주어 들었다. 아몬드 세 개를 오물거리다가 닫는가 싶었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몇 개의 아몬드를 먹어치운 건지도 모르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때 마침 방문을 열고 나오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굿모닝!”하고 아침인사를 건넨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면 이렇게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들여다보면 귀여운 모습이 꽤 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했겠지만(주제에 맞게 그러길 바란다.) 눈뜨면서 부터 멍 때리고 있는 모습이 나는 귀엽다. 아침에 할 일이 많다며 전날 밤에 오들 갑을 떨며 잠들었는데 아침이 되어서는 뭐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로 멍 때리고 있다. 자고 있는 가족들을 훑어 보면서 ‘아! 그냥 자버릴까?’라는 내면의 속삭임과 싸움을 시작한다. 그 적막한 싸움 가운데에서 공기를 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통은 막내들이 찾는 소리이다. 그러고 나면 정신을 좀 차리는데 역시 눈을 뜨면 먹을 것부터 찾기 시작한다. 어제 보게 된 요시타케 신스케의 ‘살짝 욕심이 생겼어’ 책 속에서 귀엽게 스케치된 그림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어디서든 과자를 먹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문장을 보며 나도 모르게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그런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귀엽네’라는 생각을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자꾸 딴짓을 하고 있는 나를 다독이며 뭐 하고 있는 거냐고 핀잔을 준다. 내가 결정해하고 있는 일들을 딴짓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혼을 내고 있는 모습도 어쩌면 꽤 귀여운 모습이다. 요컨대 어렵게 생각했던 귀여움도 엎어서 생각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귀여운 모습 하나쯤은 아니 수백 개쯤은 다들 장착하고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귀엽다는 말이 무척 더 좋은 이유는 부담감이 덜하다. 예쁘다는 말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멋지다는 말처럼 무게감이. 있지 않다. 그냥 귀엽다는 표현하는 것 만으로 표현을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부담 없이 칭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바라보면 문뜩 ‘귀엽다’는 말이나 생각을 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뭐야! 귀엽잖아…’라는 말 한번쯤은 일부러라도 표현해 봄을 의식해 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본다.
나 스스로에게도 부담스럽지 않게 나 스스로를 무척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마저 너무 귀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