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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Jul 11. 2022

수영은 못 하지만 괜찮아



주변이 시끄럽다. 다른 지역보다 늦게 시작하는 생존수영 수업도 그렇고 여름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수영 수업의 소식들이 들린다. 배워두면 살아가면서 참 유용하다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영이다. 하지만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난 물을 상당히 무서워하던 사람이다. 수영을 못 하면’서도 당당히 ‘무서워하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예전처럼 공포스러운 정도의 감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 다행이지 싶다.


얼마 전 제주 여행에서 비 오는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해변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왔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아이들 시중드느라 물을 챙기고 수건을 챙기고 돗자리에 아이들이 쉴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자리 옆으로는 모래놀이 바구니를 풀어둔다. 정작 내가 생각해 오던 제주바다의 감성을 많이 누리지는 못 했지만 즐거워하는 아이 넷을 보고 있자니 그 마저도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던 6월 이기에. 그 바다의 풍경에 빠져 사진도 찍고 신발을 벗고 걸어도 보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어머, 저기 지우 아닌가?’ 가슴 위로 올라오는 바닷물을 넘실 거리는데 겁도 없이 저 멀리 까지 나가 버린 첫째 아이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배에 힘을 주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지우야!”라고 연신 이름을 불렀다. 지우는 계속 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며 괜찮다고 신호했고 나는 계속해서 깊은 것 같다며 해변 쪽으로 다시 돌아오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지우는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왜 자꾸 부른 거냐고 물었고 나는 너무 위험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지우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발도 닿고 파도가 세지 않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내 어린날의 기억이 무서워 아이에게 겁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가족들과 바다에 갈 때면 늘 튜브와 함께 였다. 허리춤에 튜브를 두르고 바닷물에 들어간다거나 튜브 위에 엉덩이를 집에 넣은 채 파도를 느끼며 둥둥 떠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마저도 튜브에 엉덩이를 끼워 넣고 파도를 즐기다가 그만 저 멀리 나갈까 무서워 누군가 옆에 없을 때면 늘 허리에 튜브를 돌리고 놀았다. 초등학교 3, 4학년쯤이었을까? 평소처럼 허리에 튜브를 끼우고는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내 기억에는 해변 끝자락에 불뚝 올라온 돌 위에서 점프를 하고 놀았던 것 같다. 들어가도 튜브 때문에 금방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발도 물론 닿았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돌 위에서 힘차게 점프를 하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튜브가 발에 걸렸고 튜브가 걸고 있는 발만 바다 위에서 동동 거릴 뿐이었다. 잠수도 잘 못하는 내가 당황한 나머지 숨을 참으며 말만 구를 뿐이었다. 숨을 참고 있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함부로 입을 열어 엄마, 아빠를 부를 수도 없이 손과 발만 허덕이는 찬라에 누군가 내 발에 튜브를 빼내고 번쩍 안아 해변가로 데리고 나왔다. 물을 토해내며 모래밭에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엄마 아빠는 놀란 듯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울기만 했다. 옆에 아저씨가 튜브가 발에 걸러 위험한 거 같아서 데리고 나온 거라고 했고 엄마와 아빠는 영문도 모른 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내가 발에 튜브가 걸려 일어날 수도 없고 엄마, 아빠를 부를 수도 없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냐고 숨을 참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팔다리를 거칠게 흔들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울면서도 할 말을 차근차근 해댔다.

엄마와 아빠는 어리둥절해하며 놀고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엄마 아빠는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 딸 잘 노네!”라며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 점프하는 나를 보았고 지켜보는 중에 일어나지 않고 허덕이는 나를 보며 놀라 달려와 구해 준 그 아저씨가 안 계셨더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물에서 무섭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난 바다에서 타는 바나나보트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했다. 물속으로 친구들과 풍덩 던져질 때면 난 그때의 기억처럼 팔다리를 사정없이 흔들고 무언가 손에 잡히면 온 힘을 다해 물고 늘어졌다. 옆에 있는 친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지는 내 손길에 불편해했다.

하나같이 구명조끼를 입고도 왜 그리 무서워하냐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물놀이를 갈 때면 서로 장난치듯 내 옆에서 떨어지려는 친구들에게서 상처를 받곤 했었다. ‘나 진짜 무서운데…’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이 공포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결심을 했다.


사무실 앞에 있는 충무아트홀을 찾아가 수영강습 초급반을 등록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정말 큰 결심이었다. 사실 수영을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그냥 물을 좀 덜 무서워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초급반 수업은 6개월 동안 변함이 없었다. 강사님도 음파만 3개월 넘개 하고 있으면 어쩌냐고 중급으로 올라가라고 왕왕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도 6개월 동안 자유형과 배형을 연습하며 가장 오래 동안 연습해 온 것은 음파로 숨쉬기였다. 조금만 숨이 고르지 못하면 자유형을 하다 꼬르륵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기 일수였고 고개를 돌려 숨을 쉬고 다시 물속으로 얼굴을 넣기 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난 여전히 배형이 무서워 물 위에 맨 몸으로 뜨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제 수영장에서 걸어 다니지 만은 않는다. 숨을 참고 음파만으로도 짧은 거리는 자유형을 가장한 모습으로 뜨기도 하고 또 구명조끼와 함께 라면 제법 힘을 풀고 뜰 수 있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마 이 기분은 나만큼의 공포감을 갖고 시작해 구명조끼에게 신뢰를 할 수 있는 순간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있었는지 나 말고 몇 사람이나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사실 그러거나 말 거나 나 스스로 충분히 만족한다. 6개월의 노력 끝에 중급반으로 올라가자마자 이 충분함으로 가슴이 벅차 그만두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수업이라 생각했고 중급이라는 이름이 걸맞게 수영을 뽐내는 수강생들과 다르게 속도와 모양을 따라갈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수영 수업을 그만두었지만 아쉬움도 속상함도 없다. 나는 지금으로 충분하다.


물을 좋아하는 첫째를 보며 놀라웠다. 누굴 닮아 저리 물을 좋아하는지 3살이 될 때부터 튜브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해서 조끼를 사줬는데 그 마저도 7살이 되면서부터는 조끼를 벗어두고 잠수에 수영까지 짧게 한다. 마흔이 넘은 나도 아직 못하는 물놀이를 즐긴다. 둘째도 마찬가지다 발만 닿으면 바다든 수영장이든 물안경을 끼고 잠수도 하고 뜨기도 한다. 너무 신기해하며 수영을 가르칠까 생각도 해 보지만 배우는 건 싫고 자유롭게 놀고 싶다는 대답뿐이다. 그러나 이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을지 나는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 배우고 싶어 할 때 까지는 재미있고 무섭지 않다는 나와는 다른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늘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바록 나는 수영을 하지 못 하지만 이대로 충분하다. 나도 아이들도 지금 이대로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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