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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Aug 25. 2022

아침이면 건너는 다리

아침시간 가끔은 무언가에 꽂힌 듯 무작정 현관문을 나선다. 한번 시작하면 또 몇 달은 열심히 공원을 걷는 시간들로 채워내겠지만 때로는 무거운 몸이 그 마음을 이기고 책을 펼치고 의자나 소파에 눌러앉아 버린다. 아니면 누운 채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으로 책을 본다거나 무언의 계획들로 매일을 채워 가던 어느 날, 워킹 메이트가 나타났다.


“같이 공원이나 걸을까?” 한 마디로 만들어진 워킹 메이트, 사실 같이 공원을 걷자고 말하는 순간까지의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둘이 같이 이 아침을 즐길 메이트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했을뿐더러 그 덕에 즐거움이 쌓여 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운 요즘이다.


한 동안 책 읽는 재미에 빠져 공원을 걸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늦게 빠진 독서에 재미를 빼앗기고는 내 몸이 아파하는 걸 뒤늦게야 감지할 수 있었다. 눈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그러던 중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고서야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이렇게는 안 되겠는데…” 그러던 중 그녀가 나타났다.


매일은 아니지만 틈틈이 그녀를 만나러 공원으로 나선다. 아침에 눈을 떠 세수로 부운 눈을 가라 앉히고 메시지를 보낸다. “일어났어?”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나서야 이어폰을 꽂고 메시지를 확인하며 집 밖으로 나선다. 제법 시원해진 날씨에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을 나서도 될 법 한데 꼭 지현 씨의 연락을 기다린다. 함께 공원을 걷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고 나면 항상 마음이 양갈래로 나뉜다. ‘그냥 집에서 책이나 볼까? 그래도 나가서 걸어 볼까?’ 그 마음을 다잡고 공원으로 향하면 뿌듯하면서도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를 채감 한다. 기분 탓 일지도 모른다며 걷고 또 걸으면서도 어느새 둘이었다는 익숙함에 마음이 허전해진다.


이유야 어떻든 나는 공원을 걷겠다고 집 앞 사거리를 지나 작은 공원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다 보면 결국은 도서관 뒷 길을 따라 걷게 된다. 도서관 뒷 길이 있음에도 그 길을 걷다 호수를 바라보는 나무 계단으로 자리를 옮긴다.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오면 공원 산책길로 이어지는 낮은 다리가 가늘고 길게 호수 가운데를 지나가게 된다. 산책 길까지 질러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길을 참 좋아한다. 내가 공원을 걸었다는 증거가 될 만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고 그곳에 설 때마다 바뀌는 하늘의 모습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반복해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단 하루도 어제와 같다는 기분은 느껴본 적 없는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풍경을 마주 하며 내 안에 폭발하는 감정과 기분이 나를 꽤나 설레게 한다.


그곳에서 짧게나마 나의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그다음에 만나는 지현 씨와의 만남이 그렇게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같이 걷다 보면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나와 아이들 혹은 가족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오고 가고 힘든 육아,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 요즘 고민거리 정말 많은 이야기를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하고 들어주다 보면 ‘이 시간이 참 좋구나!’라는 마음의 싹을 틔우게 된다.


문득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져 느려지는 걸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빨리 걷자!’ 재촉하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염연히 따지자면 워킹 메이트가 아닌 내 인생의 한 점을 찍는 듯한 인연을 만난 듯 한 기분까지 든다. 그 아침만 되면 나는 인생의 고통과 쾌락 고충, 목표, 희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도 하다.


어느 날 지현 씨가 말했다. “같이 걷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언니와 삶에 대한 이야기 또는 별일 아닌 일상 얘기를 나누는 것도 나에게는 참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이 시간들을 함께 하며 늘 결이 비슷하다고 느끼던 나의 감정과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나 역시 이 시간이 너무 좋고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나 역시 너무 즐겁고 좋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도 같은 길을 걸어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나 혼자 쏟아내던 감정과 기분을 이제는 그 다리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외롭지 않았다. 혼자 뛰고 걸을 때 보다 소비하는 칼로리는 비록 적더라도 내 삶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소중한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공원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다리를 건너며 나의 생각들을 정리한다. 다리 위에서 스마트폰 속에 남겨놓은 하늘 사진과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의 워킹 메이트를 만났다. 앞으로는 워킹이 아니라 러닝 메이트가 되어 보자는 큰 꿈을 안고 오늘도 우리의 이야기들로 한 시간을 함께 걸었다. 이 시간이 꽤 오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오늘도 함께 해준 지현 씨에게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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