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도 시간이 흐르면 잔잔한 물결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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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월에 태어난 재현과 12월에 태어난 종현.
그들은 ’아일랜드 쌍둥이‘라 불렸다.
여느 쌍둥이가 그러하듯
그들은 따로 태어났지만 많은 것을 공유했을 것이다.
시간도, 물건도, 부모 역시도.
그런 와중에 재현이 많이 아팠다. 회복될 수 없을 만큼.
부모는 알지 못했지만 종현도 아파했다. 다만 속으로.
이 대목에서 나는 부모로서 한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한 번에 모든 손가락을 깨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므로.
소설은 종현의 마음속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당했지만,
부모인 나는 종현이 아픔을 지니게 된 이유,
그 아이가 겪었을 마음고생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회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해도 다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애초에 다치지 않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허황된 꿈을 꾸면서.
소설 속에 그려지지 않은 부모의 마음도 문득 궁금해졌다.
아들이 열이 펄펄 끓어 상태를 살피느라 잠들 수 없던 밤,
그 짧은 찰나의 순간도 힘들어했던 나인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대체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언젠가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마이 시스터즈 키퍼》였다.
아픈 언니, 그런 언니를 위해 수많은 치료를 견딘 동생,
변호사도 그만두고 자식의 병간호에 인생을 던진 엄마...
아픈 가족을 보살피며 가족이 겪는 슬픔을 다룬 영화.
이 영화의 요소마다 숨겨진 메시지가 버겁고 힘들어서
그 당시에 나는 엉엉 울어버리고 애써 외면했던 것도 같다.
이 소설을 통해 그 영화를 떠올린 건
내가 ’가족‘의 의미, ’부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왔기 때문일까.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부모가 된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어른이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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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건 별것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살아지니까,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리라는, 그런 심정이었다.
P.28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아가지만,
그건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태어나서 죽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허무나 좌절이 아니라
단단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