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제약회사 다닐 때 동료 일곱 명이 서해 바다 서포리 해변에 놀러갔다. 우리 일행 중에 키가 가장 큰 언니는 수영을 잘했다. 검은 큰 타이어로 만든 튜브를 빌려 물놀이을 했다. 언니는 나에게 따라오라고 하면서 바다 깊이 들어갔다. 물이 허리쯤에 닿으니 무서웠다. 언니는 괜찮다면서 더 들어오라고 했다. 두세 걸음 더 들어가자 발목에 미지근한 물과 찬물의 경계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바닥이 확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커다란 튜브가 내 얼굴을 가렸다. 순간 두려웠다. 언니는 저 멀리서 수영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파도에 끌려갈 것 같았다. 튜브를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몸에 중심을 잡으려고 발가락을 꼬물거리면서 모래에 발가락을 묻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파도의 리듬이 느껴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중심을 잡을 수 있겠다 싶을 때 오른발을 살며시 들어 뒤로 한걸음 뗐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왼발을 뒤로 한발 뗐다. 숨을 죽이면서 한발 한발 뒤로 걸었다. 어느 순간 찬물과 미지근한 물의 경계가 사라졌다. 검은 튜브 위로 얼굴 전체가 나왔다. 마지막 걸음까지 조심조심 걸어나왔다. 동료들에게 돌아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호랑이굴에 둘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 며 무용담을 전했다.
이때 일로 나는 물 공포증이 생겼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심장이 빨라지는 느낌이다. 바다에 들어갔을 때 찬물과 미지근한 물의 경계를 느꼈기에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집중할 수 있었다. 놀라 허우적거렸다면 경계를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이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놀랍고 나 자신이 대견하다.
지난 주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 갯벌 걷기를 하러 세 번째 다녀왔다. 두 번은 나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친한 언니가 데리고 가서 놀다 왔다. 두 번 중 한번은 1박을 하고 왔는데 며칠 동안 피로했다. 말복이 며칠 지난 때라 무척 더웠다. 이백 미터쯤 걸어 들어가는 동안 종아리까지 닿는 물은 목욕탕 온탕 정도로 뜨거웠다. 바닷가 모래밭은 맨발로 걸을 수 없을 만큼 따가웠다. 파라솔을 빌려서 그늘 아래서 햇볕을 피했다. 더운 바람과 시원한 바람이 사이 좋게 나누어 불어줬다. 작은 보냉백에 시원한 음료를 챙겨서 잠깐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물속에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남편을 쳐다보면서 발로 물장구를 쳤다. 잠시 파라솔 아래서 쉬었다가 한번 더 얕은 물속을 걸었다. 느리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나를 위해서 억지로 참아주는 얼굴이었다. 밀물과 함께 천천히 밀려오면서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두 세 시간 바다멍을 하는 것은 놀라운 체험이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다시 한번 바다 걷기 물멍을 하고 싶을만큼 두 번째 체험이 좋았다. 친구들과 놀러올 때 더 편하고 즐겁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억지로? 기꺼이 와 준 남편에게 정말로 고마웠다.
sns를 보면 세상이 휙휙 도는 기분이다. 다들 얼마나 열정적인지 나만 멈추어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어지간히 힘주지 않으면 주위에 휩쓸려 버릴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가 극도로 예민해져서 멈추지 못하고 뱅글뱅글 돌듯이 멈춤이 필요하다. 기쁨이가 불안이의 손을 낚아채 혼돈을 멈출 수 있었다.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가끔 생각하고 상기해야 폭풍속으로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발꼬락에 힘을 주자. 바다속이든, 책상 앞이든 발꼬락에 힘을 주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 우리 엄마도 발꼬락에 힘을 주어 중환자실에서 죽지않고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