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몸이 가장 유연한 순간!
내 35년간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본다.
여러 장면들이
추억이 되어
방울방울 맺힌다.
그중 한 장면이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다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활어처럼
내 기억에서
활개 치기 시작한다.
유치원 시절,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린 나라는 '아이'는
엄마한테
삐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나를 달래준다고
"엄마가 발레 시켜줄까?"
라는 제안을 했지만,
그 '아이'는 자존심을
부린다는 이유로
그것을 거절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발레를 하겠다고 했지만,
'기회는 찾아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
이었다.
나에게 발레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때뿐이었다.
사실
'과연 그때 발레를 시작했었더라면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었다.
그 생각은
주기적으로
나에게 찾아와서
나를 여러 번 춤추게 했다.
초등학교 때
학예회에서도 그렇고,
중학교 수련회 때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는 축제까지
나가 춤을 추었다.
안무를 외워
몸에 익히는 시간이
남들보다 배로
많이 들었지만
춤에 대한 열정과 흥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
그것이
항상 무대에서
가장 크게 표출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연습 때보다
무대에서 좀 더
좋게 비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대학교 때 한 선배는
'춤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M.T 가서 미친 듯이 춤추며
노는 나를 향해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춤리'라는 사명감에
또다시 발동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나의 젊음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춤을 추고 싶어
축제무대에 올라갔다.
당시 4학년이었던
나를 보러 온 친구는 없었다.
원래 바쁜 4학년에게는
축제를 볼 여유도,
흥미도 좀처럼
찾아볼 수 가 없다.
무대에 오르기 전,
우연히 만난 전역한 동기가
'나이 먹고 뭐하는 짓'
이냐고
핀잔을 주기나 했었다.
우리는 그때 똑같이 24살이었다.
(24살이 나이를 먹은 거라니ㅋㅋㅋㅋ)
누구에게는 철없어 보이는
나의 무대는 다행히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환호의 대상이 되었다.
그 함성의 짜릿함은
연습하며 몇 주 동안 마주한
좌절의 순간들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후로
내가 춤을 간간히 만나는 곳은
빵빵한 사운드로
내 영혼까지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클럽 스피커 앞일뿐이었다.
27살에 다시
춤을 배우고 싶어
동아리에 가입도 해보았지만,
그때 내가 지고 있던
삶의 무게가 무거웠었는지
그 압박감에 춤은
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덕분에 내 몸은
평범한 30대의 모습인
뻣뻣함으로
그렇게 굳어 가고 있었다.
예전에 엄마와 관상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도사님께서
엄마한테 말하기를
내 인생의 방향성을
잘못 잡아줬다고 했다.
"이 아이가 예체능 쪽으로 갔었다면
지금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거야!"
그 얘기를 듣자마자,
'춤을 췄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즐겁게 살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나를 향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발레의 기회를
놓친 것은
그 '아이'였다.
진짜 발레가 하고 싶었으면
아무리 '아이'였을지라도
엄마를 설득해서
시작했어야 했다.
기회를 놓친 그 '아이'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5년 숙성시킨 뻣뻣한 통나무'
가 되어 버렸다.
엄마가
내 삶의 방향성을
잘못 잡아준 것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때 바로 방향을
틀어 주면 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야 말로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다.
춤리의 귀환.
이것은
내 인생에서 다시 찾아온
둘도 없이 감사한 기회이자,
내가 가장 젊었던 순간에
선택한 삶이 될 것이다.
그렇다.
35살 나는
아직도 이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