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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양푼이 Sep 22. 2021

결혼이 하고 싶은 이유

내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하여!

수면부족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를

 엄마가 새벽부터

깨우기 시작한다.


몽롱한 상태로 눈을 뜨니

 “폭스바겐 사려고 하는데
어떤지 한 번 봐줘봐.”


 라고 엄마가 말한다.


? 갑자기 
폭스바겐을 산다고?
우리 집엔 차가 3대나 있는데
 무슨 차야? "


라는

생각에

갑자기 

의아했다.


거실로 나가보니

텔레비전에서는

여우  조끼를 

팔고 있는 

홈쇼핑 채널이

틀어져 있었다.


폭스 퍼 베스트(Fox Fur Vest)라는

품명으로 광고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귀여운 엄마는

‘폭스’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나에게

 ‘폭스바겐’이라고

말한 것이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검정색이 괜찮은지,

회색이 괜찮은지

엄마에게 어울리는

‘폭스바겐’을 골라주어야 했다.


 옷만 놓고 봤을 때는

검정색이 예쁜데,

엄마한테는 회색이

어울릴 것 같았다.


카멜 색도 있었는데

저걸 샀다가는

정말 개장수 같을 것 같았고

검정색을 엄마가 입으면

시장 가서 콩나물 값 100원, 200원에

목숨 거는 아줌마 같은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는

나의 조언대로

회색을 사기로 결심하고

전화 주문을 한다.


나는 한 번도

홈쇼핑에서 물건을

구매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실에서 들려오는

전화 주문 방식이 참 신선했다.


상담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는

ARS를 향해 주소를

녹음시키는

접수 방법이었다.


기계가 제대로

목소리를 인식해야 하니

엄마는 거기다 대고

또박또박 주소를 이야기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느껴지던지

딸인 내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다시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 든다.


 우리 남매에겐

엄마라는 존재는

누구보다도 끔찍했다.


엄마는

당근과 채찍을 잘 휘두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와 내 동생은

엄마라는 ‘대국’ 아래에서

‘강경책’과 ‘회유책’에 따라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두 개의 ‘속국’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그 대국이 지배하고 있는

 아무 힘도 없는

백성이 아니라

비록 속국일지라도

각자의 나라에서

 주체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끔찍한 엄마의 내리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안 하려고

다분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엄마는

서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우리를 단단한 끈으로

묶어 놓았다.


어렸을 적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장면 속에서 우리 셋은

눈 내리는 남태령 고개를

함께 걷고 있다.


버스를 타고

다 같이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기도 과천에

살고 있었던

우리는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가

눈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질 않자

남태령에서 하차했다.


지금은 넘어질까 봐

눈을 밟기도 싫어하는

 내가 그때는

 눈이 좋았던

순수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엄마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해

신나게 걸어갔다.


그때 엄마 나이는

지금 내 나이와 같았는데

아무도 없는

무서운 밤길에

혼자 두 아이를 책임지고

걸어가야만 했던

삶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의 삶은

우리 때문에 치열했다.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도 않았던

두 남매를 위해

집 안팎으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엄마 덕분에

우리 둘 다

유전적 요인을 물리치고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키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인을 희생해가며

우리를 키워내던

 우주와 같았던 엄마가

내 추억 속에서

남태령 고개를 걸어가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소녀와도 같다.


 사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갈구하는 것도

엄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제나

내 옆에서 모든 인간이

느낄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고독이란 것을

무색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엄마 역시도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세상에

내가 없어지면

엄마는 살아갈

이유를 잃을 것이다.


2019년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던

설리와 하라와

작별해야만 했다.


그렇게 예쁜 청춘들이

떠나갈 때마다

엄마는 딸을 잃은

부모 심정에

감정 이입했다.


나에겐

딸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공감할 수가 없었지만

반대로 엄마가

나를 떠나간다면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 같았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 순간이 오게 되면

과연 나는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엄마는

당신이 떠나갈 때

내가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아픔에

괴로워할 것을 안다.


그것이 엄마가

이 세상에 미련을 두는

이유라고 했다.


나중에

엄마가 슬프지 않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나도 엄마의 부재에

덜 슬플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다.  


내가 엄마의

존재의 이유가 되었듯이

결혼을 하면

나에게도 또 다른

존재의 이유가 생긴다.


그 존재만이

엄마와 나의

이 끔찍한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으리.


항상

내 곁에 있는

엄마가

언젠간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나에게

당위성이 없었던

결혼은

해야 하는

그런 것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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