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차들은 고장 났어야만 했다!
"이따가 용대 오빠도 온대!"
"용대 오빠?"
"응. 너희 사촌오빠 친구 말이야."
브리즈번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났는데,
골드코스트에 사는
사촌오빠 친구도
이따 저녁에
합류한다고 한다.
나는 용대 오빠를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문이었다.
동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이 사실을
말레이시아에 있는
사촌오빠에게 전달했더니
오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따가 용대가
너 밥 사준다고 그러더라?"
너무 웃겼다.
나만 빼고 모두가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자
친구의 남편분과
용대 오빠 부부가
합류했다.
어떻게 보면
어색했던 조합이었기 때문에
서로 불편한 시간들을
보낼 법도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들의
관심사가 같았다.
그것은 바로
자동차 배터리였다.
친구네 자동차가
방전이 되었는지
갑자기 오늘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필 주말이라
바로 고칠 수도 없었다.
마치 이것은
지난주 한국에서의
나의 상황과 같았다.
오랜만에 뵌
친구 남편분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식당에 들어선다.
그 표정을 보니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매일 신었던
신발과 같은 존재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차를 고칠 때까지
떨쳐낼 수 없는 감정이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급속도로 남편분과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서로의 차가
멀쩡했었다면
과연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을까?
아마 형식적인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헤어지지 않았을까?
이 만남의 즐거움이
절정이 되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각자의 차가 고장 났나 보다.'
라고
말이다.
즐거웠던 시간들은
쏜살 같이 지나갔고
우리에겐 작별할
시간이 찾아왔다.
"열심히 일해서
우리 곧 새 차 살 거니깐
또 놀러 오세요.
그땐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 가요."
차만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나를 근사한 곳에
데려가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친구 부부는
못내 아쉬웠나 보다.
먼 곳에서 팔 벌려
환영해준
친구 부부에게
나는 말한다.
"다음번에는 둘이 올게요. 안녕."
이 부부가
결혼하는 날
친구가 던진 부케를 받은 것도
언 3년이 지났다.
아직은 혼자가 좋다며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지만
낯선 환경에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브리즈번 부부를 보니
'서로에게 의지 할 수 있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을
내가 못 만난 것뿐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언젠가 나에게도
부케뿐 만 아니라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희망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