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언니 간병기2)
병실은 아침 7시면 부스럭거리기 시작하고 8시가 되면 아침을 먹을 준비를 한다. 모두 일어나 앉아 간이식탁을 펴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식사가 배달되자 다섯 명의 환자들이 조용해졌다. 내 앞에 환자는 환자대로, 간병인은 간병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식사했다.
나는 커튼을 치고, 언니의 밥그릇을 열었다. 흰죽과 부드러운 생선조림, 나물 무침, 물김치 등이 나왔다. 열사병 때문에 언니의 운동 신경에 더 무리가 갔는지, 수저를 든 언니의 팔이 후들거렸다. 언니는 조심히 죽을 떴고 나는 간간이 반찬을 날라 언니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면 언니는 제비 새끼처럼 얌전히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식사를 시킨 후 물을 떠다 언니의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니의 양치질은 한 시간을 넘기기 때문이다. 언니는 아기처럼 입을 벌리고 앉아 양치질을 받았다. 칫솔질을 한참 하고 나면 언니는 물을 물고 부글거리며 입을 한참 움직인 후 뱉어냈다.
그러는 동안에 이웃한 환자마다 담당 의사의 회진이 있었다. 둘째 언니의 담당의를 기다리다 간호사께 얘기하고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내려가 김밥을 사 먹고 올라왔는데, 때마침 언니의 담당의가 도착했다.
“선생님~ 언니, 설사가 심해요. 어젯밤에도 네 번이나 있었어요. 가만히 있다가도 간혹 왼팔을 심하게 떨어요”
의사는 지사제를 처방하면서, 열사병이 많이 좋아졌으나 어떤 문제는 없는지, 신경외과와 협진을 한다고 했다.
언니가 입원한 403호실은 대체로 정형외과 수술과 관련된 환자들이었다. 그 안에도 어디서나 그렇듯 센 캐가 있었다. 그녀는 75세였고 가장 연장자였음에도 목소리가 우렁차고 말이 많았다. 옆에 끼고 있는 20대 여성 환자에게도 이것저것 코치하는 것을 보면 어딜 가나 마당발 역할을 할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가능한 없는 듯이 조용히 지내려 했으나 그 아주머니 쪽에서 간병인을 통해 먼저 삶은 달걀을 돌렸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안면을 텄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환자와 어떤 사이냐며 호구 조사에 나섰다.
“둘째 언니예요. 어젯밤엔 밤늦게 수건 빠느라 물소리를 내서 죄송했어요.”
허리 굽혀 인사하는 나의 태도가 만족했는지 아주머니는 기분 좋게 한마디 했다.
“병실은 늘 9시면 불 끄고 자.”
점심 후 마당발 아주머니 친척이 문병을 왔다 갔다. 아주머니가 간병인을 통해 떡을 돌렸다. 할 수 없이 떡까지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65세 때까지만 해도 신나게 에어로빅을 할 정도로 잘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해야 했다며 나이가 들어가니 병원비가 만만찮게 들어간다고 한다.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라며 어떤 간병인은 말을 잘 듣지 않아 해고해버렸다고 했다. 지금 간병인과 코드가 잘 맞아 일부러 불렀다며 마치 둘 사이가 친자매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그러다가 던진 그녀의 말이 내게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전에 입원했을 때 옆에 할망이 있었는데, 내가 주는 물건을 한사코 안 받아먹겠다는 거야. 글쎄, 아들이 약국을 운영하며 돈 잘 벌면 뭐 하나? 자기 어멍 위문도 제대로 안 하고......”
그러니까 병실 안에서 뭔가를 받으면 돌려야 하는데 그걸 잘못해서 아들이 욕을 먹고 있는 거였다.
둘째 언니의 저녁을 끝낼 즈음, 셋째 언니가 병실로 들어왔다. 밤새 잠을 못 잔 내가 걱정되어 대신 병실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나는 물휴지며 소소하게 살 것들을 적어서 언니와 함께 슈퍼로 내려갔다. 작은 슈퍼에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뭘 사서 돌려야 할까? 고민하다 불가리스를 집어 들었다. 간호사들을 위한 음료는 유기농 요구르트를 골랐다. 셋째 언니가 사 왔다며, 불가리스를 2개씩 돌렸다. 마당발 아주머니가 대개 흡족해했다.
셋째 날이 되니 언니가 휠체어에 앉는 게 수월해졌다. 드디어 오줌 줄을 빼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간호사들, 특히 간호과장이 매우 친절했다. 그녀는 먼저 환자를 알아보고 다가와 눈을 맞추는 게 기본인 사람이다. 언니를 보더니, 운동을 자주 시켜야 빨리 좋아진다고 내게 워커를 권했다. 나는 조금씩 자주 워커에 주사약 주머니를 매달고 둘째 언니를 운동시켰다.
처음엔 휠체어의 정지 버튼을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베드에 있던 주사약 주머니를 어떻게 해야 잘 빼내는지, 어떻게 해야 환자를 잘 눕힐 수 있는지 모든 게 서툴렀다. 내가 하는 걸 보고 앞에 있던 간병인이 내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역시 전문적으로 일하던 사람이라 환자를 다루는 솜씨가 달랐다. 첫날 신경질적이던 반응은 사라지고 도와주려 해서 고마웠다. 단 며칠이라도 잘 사귀어야 하고, 뭐든지, 배워야 되는구나.
그날 저녁, 셋째 언니는 서울로 올라가고 나만 병원에 남았다. 결국, 간병인은 내가 구해야 했다. 어떻게 구해야 할까? 걱정했으나 전화해보니 생각 외로 대기 간병인이 꽤 있나 보았다. 특히 내가 걱정했던 간병 시작시간은 환자 측에서 요청하는 대로 맞춰준단다. 앞에 앉은 마당발 아줌마가 아무나 구하면 안 된다고 겁을 잔뜩 주었는데, 도착한 사람을 보니 야물딱지게 일 처리를 잘할 사람이었다. 게다가 셋째 날은 그럭저럭 잠도 잘 잤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게 맞다. 앞에서 코 골며 자는 마당발 아주머니도 오랜 적응의 결과겠지. 새로이 맞는 일이라고 너무 긴장하지 말자.
둘째 언니를 끌어안아 작별인사했다. 언니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나서 간병인에게 언니를 신신당부하고 병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센캐 아주머니가 얼굴 가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